2014. 11. 19. 11:26ㆍReview
견디는 삶의 대가(代價), 서비스의 추학(醜學)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조혜정, 김숙현, 임샛별
글_정은미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은 조혜정(연출), 김숙현(연출), 임샛별(안무)의 공동작업의 연장선이다. 이번 공동작업은 2013년 <홀드 미>를 시작으로, 2014년 <포트레이트>를 뒤이은 세 번째 작업이다. 작업은 영상설치, 퍼포먼스, 공연, 상영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왔고 그 마지막으로, 전시를 통해 영상작업을 한눈에 펼쳐 놓았다. (스페이스 15번지, 2014년 10월 30 ~ 11월 9일)
<역할 부여>
어두운 배경을 두고 눈, 코, 입이 없는 분절된 마네킹이 조립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네킹에 유니폼을 입힌다. 스타킹을 신기고 셔츠의 단추를 잠근다. 단정한 차림의 유니폼은 오차 없이 마네킹에 입혀졌다. 한 사람의 이름, 한 사람의 나이, 한 사람의 직업. 명시된 활자는 마네킹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동시에 입혀진 유니폼으로 인해 ‘누구’만의 특색은 천천히 덮인다.
<역할극-가식적 서비스>
직종에 맞춰 유니폼을 입은 퍼포머는 정해진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요리사는 탁탁탁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칼질을 한다. 도마 위의 야채는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승무원은 흐트러짐 없는 미소로 승객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사는 기계인형을 연상시킨다. 경호원은 우두커니 선 채 먼 곳을 응시하다가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형의 존재를 보호하는 몸짓을 한다. 간호조무사는 웃는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퍼포머들의 이 같은 왜곡된 재현은 각각의 직업에 요구되는 감정과 행위에 대한 감정적 그리고 육체적 통제를 보여준다.
<역할극-견딜 수 있겠는가?>
이제 퍼포머는 견디기 괴로운 자세를 취하고 2분 30초 동안 지속하는 작업을 한다. 손이 닿지 않는 마네킹의 가발을 손질하려 손을 뻗은 미용사, 인형을 등에 업고 양손을 펼친 후 인형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보육 교사, 주방 기구들이 가득 놓인 테이블을 짊어지고 있는 요리사, 계단 위에서 한발로 버티는 경호원. 좁은 공간에 갇혀 흔들리는 유리잔 속 음료를 바라보며 쟁반을 들고 있는 승무원. 그들은 땀을 흘리고 고통스러워한다.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그 미소는 미약한 경련을 들킨다. 버티는 몸은 바들바들 떨리지만 영상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 그들의 견디기는 계속된다.
감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을 하고 각자의 색깔에 맞게 만들어진 감정은 때로는 그 미묘함에 말로 표현되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알맞게 들어맞아 묘사되곤 한다. “내 느낌엔 말이야, 내 기분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시대에 이런 말들의 쓰임은 비일비재하다. 나아가 몸의 움직임, 표정, 소리의 뉘앙스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은 기호로서 표출되어 수신자에게 다양한 의미를 불러일으키며 상호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표출하는 이와 받는 이의 관계, 그 사이에 오고 가거나 그 언저리에 떠도는 감정은 더욱 풍부해진다.
하지만 이처럼 내면으로부터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주관적인 감정과는 달리, 사회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 구현되어야만 하는 감정이 있다. 이 감정을 표현하도록 요구받고 그에 따라 행하는 것이 감정노동이다. 감정노동은 특히 사람을 상대하는 산업 종사자들에게 요구되는 정서적 노동을 지칭한다.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의 변화는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의 이행과 궤를 같이 했다.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3차 산업인 서비스 노동의 영역이 넓어졌고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부여되는 표현적 규칙은 더욱 확고해졌다. 노동에서 타인과의 교류가 중요해지고 그에 따라 관계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정서에 대한 일종의 지침이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 노동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요구된 감정을 표출해야만 한다.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작업은 감정노동자들을 주목한다. 휴대폰 AS 기사, 스튜어디스, 보육 교사, 간호조무사, 패밀리레스토랑 조리사 겸 서버, 경호원, 콜센터 직원, 마트 캐셔 등 다양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토대로 역할극을 구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퍼포머를 통해 감정노동의 현실은 재조명된다.
감정노동자(퍼포머)는 통제된 육체적·정신적 조건과 내재화된 위계 속에서 감정의 작동을 표현한다. 각각의 영상 작업은 마네킹들에 하나uni-의 형태form를 부여하여 그에 걸맞은 직업인이 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작업환경에서의 반복적이며 ‘가식적’ 행위를 드러내기, 표출되지 못하고 은폐되는 다양한 감정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정지된 행위 속에서 나타내기로 이어진다. 전시는 이 세 가지 영상작업을 비롯하여 무용수의 추상화된 몸 언어를 담은 영상작품도 선보인다. 영상 속 무용수는 한층 더 과장된 몸짓으로 직업적 행위를 표현하였다. 영상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지어내는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어떤 상호작용도 느낄 수가 없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이미 입력된 코드를 체현하는 것 이상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전시실 한쪽에서는 감정노동자의 인터뷰를 녹음한 음성이 흘러나와 사실감을 높인다. 이들의 인터뷰는 주로 서비스 노동의 상황과 노동에서 오는 육체적·심리적 고충,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적 견해를 가감 없이 담고 있다.
전시는 서비스 노동에 대한 담론을 표면화시킨다. 감정이 산업 구조로 인해 물질화되고 노동의 연장선이 되는 시대에 서비스 노동에서 두드러지는 감정노동의 정상화에 대한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다소 왜곡된 묘사가 그들이 처한 현실의 정확한 재현은 아닐 것이다. 또한 모든 서비스 노동자들이 그들이 표하는 감정을 고된 노동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감정노동자들에게 요구되고 통제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비정상적’ 상황은 아닌지 반성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획일적 감정의 양상이 그들에게 납득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역시 던져준다. 주관적 감정과 규율화된 사회적 감정 사이의 틈은 그들로 하여금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일치되지 않는 외적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서비스 노동에 대한 예술 담론은 노동자를 둘러싼 환경과 그들이 관계 맺는 사람들의 인식을 살피고 더불어 그들 자신의 인식 또한 되새기도록 펼쳐진다. ■
*사진 = jin3 / 전시 영상캡쳐 / @스페이스15번지
필자_정은미 소개_내가 누군지 글로 짓고 있는 중. |
■ 감정의 시대-서비스노동의 관계미학展
1.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 영상설치 : 9. 23(화) - 9. 30(화) 11:00 - 18:00 / 퍼포먼스 : 9. 27(토) 18: 30 / 9.28(일) 18:30 2. 스페이스 15th - 전시 : 10. 30(목) - 11. 9(일) 11:00 - 18:00 3. M 극장 - 공연 : 10. 24(금) 19:00 / 10. 25(토) 17:00 4. 스페이스 셀 - 상영 : 11. 1(토) 18:00 ***창작자_미디어 프로젝트 팀 감정시대 - 조혜정, 김숙현, 임샛별 ***작품소개_(프로그램 발췌) ● 오랫동안 노동은 곧 육체노동이었고 구체적인 생산물을 전제로 하였다. 그러나 후기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 역시 물화되면서 교환가치를 낳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감정노동이 주가되는 서비스 업종에서 노동자들은 기업과 사업장의 규범에 따라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며, 주어진 감정의 표현 규칙에 따르며, 또 자신을 감시 및 관리해야 한다. '최저비용으로 최고의 고객만족'이라는 기치 아래, 감정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유연한 노동 조건 속에서 자기 감정을 자본에 저당잡힌 셈이다. ● 감정을 거칠게 정의해 본다면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적인 에너지, 즉 일상적인 기분들, 인지, 정서, 판단, 욕구, 육체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감정을 주로 주관적, 내면적인 경험, 즉 추상화된 상태로 다루어왔다. 하지만 감정은 주관적이고 우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행위자가 당면한 사회적 관계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고 구성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감정들을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사회적인 감정을 재연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안'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밖'에서 구해야 한다.『감정의 시대-서비스노동의 관계미학』은 감정의 '밖'에서 행해지는 담론들, 사회적 위계에 의한 감정의 위계 문제, 나아가 그 감정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배치를 통제하는 사회구조와 노동의 물리적인 조건들을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역할 퍼포먼스'로 표현한다. 예술은 감정노동과 무관한 것일까? 이 프로젝트는 감정 노동자들을 대상화하려는 시도일까? 예술가를 감정 노동자라고 할 수 없지만, 예술가라는 직업군 역시 불안한 노동조건 속에서 자신의 경력, 교육, 능력, 신체 그리고 관계망을 관리해야 한다. 예술가들은 비물질적인 가치와 감정을 재가공해서 파는 감정 자본주의 시대의 일원이며, 심지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된 노동자이다. 그리고 서비스업종 안에서 부수적 수입을 찾는 이 시대의 관계망, 즉 변화해가는 역할 안에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고정된 사람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그 역할은 언제나 전도 가능하다. 즉, 감정의 생산과 소비는 원형을 그리며 우리의 일상을 에워싸고 있다. ● 여기 무대가 있다. 무대에는 얼굴들이 있고, 그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얼굴들은 너와 나의 얼굴이고,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예술가들과 그들이 만난 감정 노동자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무대는 감정이 재화가 된 감정(노동)의 시대이고, 재연된 영상은 서비스 노동의 조건이면서 부여된 역할이며, 얼굴들은 그 관계를 함께 마주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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