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7. 15:25ㆍReview
비둘기 리뷰
글_ 정은호
‘비둘기’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감금되기를 선언한 자가, 그 쇠창살을 뚫고 나와 바깥의 폭풍우와 부딪히는 이야기다. 주인공 노엘은 더 이상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세계를 그저 풍경으로 대하고, 진짜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자살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이 세계 그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고 고독 속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경비원으로 30년 동안 반복된 삶을 살아가면서, 그는 언제나 고독 속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여동생마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그는 자신의 삶에서 철저하게 외톨이로 남겨진다. 결혼했던 여자마저도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그녀를 떠난다. 이런 그에게 타인과 관계한다는 것은 큰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모든 만남에 상처가 있어왔기 때문에, 그는 혼자서 생활하는 삶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은둔자로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의 삶은 타인이 있기에 가능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사는 삶은, 상처도 없지만 즐거움도 없다. 즉 고독의 상태다. 고통을 영위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인간은 살아있음 느낄 수 없다.
극 중에서 그는 노숙자의 삶을 동경한다. 언제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위축되어 살아가는 그이기에, 그가 바라는 것은 사실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삶을 살아가는 노숙자의 인생이다. 소유가 없으니 속박도 없는 것이 노숙자의 삶. 인생을 진짜로 살아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 노엘은 강력한 질투와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이 중요하다. 세찬 비를 맞으며 진정으로 세상과 접하는 순간, 노엘은 고독에서 풀려나고 자유를 획득한다. 그의 삶의 불안이었던 비둘기, 즉 ‘변수’는 사실 도피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주인공 노엘은 자신의 삶에 어떠한 변수도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인물이다. 즉 변화 없이 안정된 삶이야말로 노엘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노동을 하고, 일정한 봉급을 받으며, 반복되는 스케줄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삶에는 고민이 존재하지 않고, 고민이 존재하지 않는 삶이란 고뇌가 없는 삶, 즉 고통이 없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건 언제나 고민의 연속이다. 무슨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할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모든 선택지에 고민은 존재한다. 이런 사소한 고민 자체까지도 기피하게 된 노엘은, 병적으로 삶의 고민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삶에 끼어든 ‘비둘기’라는 변수에, 그가 크게 무서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느 날, 창밖으로 비둘기가 날아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된 노엘은, 비둘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까 그의 삶은, ‘비둘기’라는 외적 요소가 그의 안정된 삶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안전할 수 있었다. 고작 ‘비둘기’라는 사소한 변수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삶. 어찌 보면 이것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 수위가 높을 뿐, 많은 이들이 삶의 변수를 두려워하고 그것을 기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변수란 결국 알 수 없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대상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다주기 때문이다. 노엘은 그래서 타인을 대할 때 유리창을 만든다. 그들이 자신을 상처 주지 않도록, 거대한 막을 치고, 그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노엘이 느끼는 극심한 고독은, 결국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잃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마저 버림받은 기억은 크나큰 상처다. 그것은 그의 강력한 트라우마다. ‘비둘기’가 훌륭한 이유는, 이 연극이 트라우마의 극복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라는 요소가, 사실은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것. 항상 조용하고 말 수 없던 노엘이 폭풍우 속에서 고함을 내지르는 장면은 그렇기에 관객들에게 쾌감을 준다. 유리창을 부수고 진짜 세계와 마주할 때, 노엘은 고독에서 벗어나 상처받기를 각오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노엘이 드디어 타자와 진지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만들어놓은 ‘가짜 세상’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부딪히며 울고 웃는 ‘진짜 세상’에 오게 된 것이다.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노엘은 이제 타자와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타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려 하는 용기를 노엘은 결국 깨닫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로부터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삶, 그것이 이제 노엘이 살아가게 될 삶이 될 것이다.
비둘기라는 작은 존재 하나는,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몰고 온다는 나비효과처럼,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삶의 큰 변화는 사실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빗속에서 해방을 노래하는 노엘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가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어떤 사랑을 할지가 궁금해진다. ‘비둘기’라는 그런 의미에서 프롤로그다. ‘노엘’이라는 사람이 진짜 삶의 서사를 만들어가기 전, 알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그린 연극. 그것이 비둘기였고, 그것은 관객들에게도 용기를 가져다주는 프롤로그였다. 나는 상상해본다. 노엘이 그려나갈 힘찬 서사와, 그가 울고 웃게 될 사건들을. 그것은 분명 무척 잔인할 것이고, 아름다울 것이다.■
* 사진제공_서울프린지페스티벌
필자_정은호
소개_ 시를 공부하고 있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으나 미래에도 계속 시를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마니아라면 주목! 그의 단편소설 <비둘기>가 연극으로 만들어진다. 전세계 매스컴의 주목을 받지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 어떤 문학상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기이한 은둔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습을 빼닮은 조나단 노엘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들고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살던 경비원 조나단 노엘의 집에 비둘기 한 마리가 침입하면서 그의 일상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아티스트 소개
극단 나비플러스는 ‘멀티극단’을 지향한다. 무대공연뿐 아니라 영상, 다큐, 사진, 움직임 등 종합적인 예술 창작을 시도한다. 우리네 삶을 구성하는 ‘사건’과 그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고 재조명하여 재미나게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연극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믿고 있는 극단.
https://www.facebook.com/Naviplus28
출연진 & 제작진
출연진 : 이기용 이혁 유정숙 오민정
제작진 : 김정이 채지선 한원균 윤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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