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파티 51> 두리반이 재개발에 맞서 홍대에 머물 수 있던 이유를 좇다

2014. 11. 15. 10:03Review

 

두리반이 재개발에 맞서 홍대에 머물 수 있던 이유를 좇다

다큐멘터리 영화 <파티 51>

 

글_시티약국

 

문득, 어떤 ‘맛’이 참지 못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경복궁 재래시장 할머니가 해준 기름 떡볶이라든가, 망원동 허름한 골목에서 먹었던 콩나물 국밥이라든가. 함께 했던 얼굴들과 선명하게 입 안을 감도는 맛의 기억이 되돌아오면 그곳이 사무치게 가고 싶다. 다큐멘터리 <파티 51>을 보는 내내 나는 두리반 맛을 되새겼다. 정갈한 보쌈과 푸짐한 닭 칼국수가 있던 그 곳. 기적과도 같은 두리반의 승리는 ‘맛’을 지키고 싶던 사람들의 끈질긴 싸움이었으며, 재개발 역사에 흔치 않은 ‘을’ 의 따끔한 맛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2009년 1월,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재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하에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며 제대로 보상금도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렸던 철거민 5명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떠들썩하고 비통한 새해의 시작이었지만, 어느덧 용산은 잊혀 갔다. 그리고 그해 12월, 두리반에도 용역들의 무차별한 강제철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리반을 지키기 위해 작가협회의 사람들이 모여 두리반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으며, 홍대를 기반으로 음악활동을 하던 뮤지션들이 모여 축제를 열었고, 신부님의 미사와 영어모임, 강좌까지 다양한 모임이 두리반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2011년 6월 8일, 농성 531일 만에 두리반대책위원회와 남전디앤씨 간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예술가를 비롯해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두리반에 머물렀다. 안종녀 사장님의 말처럼, 두리반은 인복이 많은 곳이었다. 농성은 비명과 절규가 아니라 뜨거운 땀과 공간을 가득 메우는 소리로 채워졌다.

 

 

다큐멘터리 <파티 51>은 두리반을 지켜냈던 한받, 박다함, 회기동단편선, 밤섬해적단, 하헌진을 비롯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다. 음원시장의 급격한 변화와 생산자에게 불합리한 수익구조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잘 나간다고 하는 가수들-심지어 90년대의 문화대통령도 온갖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자신의 음악을 알려야 하는 현실에서 온전히 자신의 원하는 음악을 하면서 사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비주류 음악을 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이며, 음악 이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만의 음악을 지금도 하고 있다. 육아비용을 걱정하는 한받도, 부모님의 반대에 맞서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려는 박다함도, 취직을 걱정하지만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부조리를 노래하는 밤섬해적단도 여전히 음악을 한다.

홍대 앞이 전성기를 누리던 90년대 말을 기점으로 지역에 거대자본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오래 장사를 해온 상인들과 터를 잡고 창작을 해오던 예술가들이 비싼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주변으로 하나둘씩 쫓겨났다. 그렇게 상수동, 망원동, 합정동으로 밀려난 그들은 점점 빠르게 확장해가는 자본 앞에서 여전히 위태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상황은 531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의 지속적인 연대를 가능케 해 주었다. 떠밀리듯 자신이 있던 자리를 놓아버릴 수 도 있었지만, 두리반도 그리고 음악인들도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 두리반의 기적은 혹독한 환경에서 깊게 뿌리내린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음이 자욱한 농성 와중에, ‘노래를 팔아서 먹고살던’ 달빛요정만루홈런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당시 엄청난 붐이었던 싸이월드 측이 음원수익료를 돈이 아닌 도토리로 주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음원수익분배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음악인들의 열악한 환경이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가 더 큰 사건사고들에 조금씩 잊혀졌다. 용산참사가 그러했듯, 한 음악인의 죽음도 언론에서 사라져갔다.

 

 

계속 된 농성 끝에 두리반은 새로운 공간을 찾았고, 51+를 기획하던 일부 음악들이 모여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만들어 음악생산자들이 자유롭게 음반과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만약 두리반이 홍대에 있지 않았다면, 홍대의 가난한 음악가들이 두리반에서 밥을 먹지 않았더라면, 사장님이 작가가 아니었더라면 두리반의 오늘과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만약’을 거쳐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힘이 날실과 씨실처럼 단단하게 엮어져 다른 오늘을 만들어냈다.

철거민, 비주류 뮤지션, 대기업 인턴, 경비원, 취업준비생, 계약직 직원, 용역업체 고용 청소부, 학습지 교사, 등등 각기 다른 이름을 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 이 사회의 ‘을’로서 묵묵히 ‘갑’ 과 싸워나가고 있다. 얻어터지고 비루한 순간들이 더 많지만, 견디는 것이 때로는 소리 없는 농성이기도 한 그런 일상들을 견디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 이 수많은 이름들이 모이면 작은 기적이 될 수 있음을 다큐멘터리 <파티 51> 은 보여주고 있다. 어떤 무대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한 사람이 된다. 세상을 바꾼 무대와 사람들을 보여주는 이 영상을 통해 모든 ‘을’ 이 각자의 방식으로 굳건히 싸워낼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한다.

 

*사진출처_cine21.com <51+> 영화소개 페이지

**영화 <파티 51>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party51docu  

 필자_시티약국

 소개_결혼과 함께 기획자생활을 접고 주재원 아내 생활을 미국에서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매일 게으름 속에서 깨닫고 있는 중. 미우나 고우나 한국이 그립다.

 

 ※전주국제영화제, 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51+>라는 타이틀로 상영되었던 본 영화는 12월 <파티 51>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상영 이전에 영화를 관람했던 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리뷰" 성격의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