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촌공간 서로 개관시리즈 2 - 프로젝트만물상 <바야흐로 좀,B>

2015. 9. 25. 09:41Review

 

바야흐로 서촌, 그 곳에서 만난 좀B

서촌공간 서로 개관시리즈 2

서로, 낭독공연 “이른 가을밤, 희곡을 듣다”

프로젝트만물상 <바야흐로 좀,B>

 

글_낭만다혜

 

서촌. 획일화 되어가고 있는 도시리듬에 조금은 비껴있는 곳. 나에게 서촌은 그런 곳이었다. 작년 가을에 한 번, 올 봄에 한 번. 딱 두 번 서촌에 갔던 적이 있다. 계절 탓도 있겠지만, 그 두 번의 경험엔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아늑함과 고즈넉함이 있었다. 보석함에 넣어두었다가 가끔 꺼내 끼고 싶은 반지 같은 곳이었다. 내게, 서촌이라 곳은.

도시의 속도에 흔들리지 않고 홀로 오롯이 존재하는 그런 곳 ‘서촌’에 새로 극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이름하여 “서촌공간 서로”. 서촌에 극장이라니, 입지적으로나 테마적으로나 극장이 서촌의 공간과 어떤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들이 생겼다. 극장이란 공간은 그 주변 환경과의 어우러짐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극장을 떠올렸을 때 그 주변 공간의 분위기가 함께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공생관계랄까.

극장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자아’로서의 호기심이 치솟았다. 개인적으로는 아껴뒀던 공간에 낯선 침범자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9월 가을 밤 서촌으로 향했다. 경복궁역에서 극장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통인시장을 거쳐 극장까지 가는 골목길의 정서는 다정함과 온기로 가득했다. 유유히 흐르고 있던 골목의 정취를 잘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극장 앞에 도착해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애피타이저를 먹고 난 후 다시금 경건한 태도로 메인메뉴를 기다리게 되는 마음가짐이 절로 생겨났다.

 

 

 

그렇게 도착한 “서촌공간 서로”에서는 지난 5월 판소리, 비올라, 노래 등으로 구성된 첫 번째 개관공연들에 이번 9월 <서로, 낭독공연(부제 : 이른 가을밤, 희곡을 듣다)>이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좋은 희곡들을 소개하고 공연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도모하는 ‘인큐베이팅’에 포커스를 둔 프로젝트였다. 이번 낭독공연에는 12:1의 경쟁률을 뚫고 ‘희곡 읽수다 <요정들의 오후>’, ‘프로젝트 만물상 <바야흐로 좀B>’, ‘좋은희곡읽기모임 <만선>’ 세 작품이 올라갔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극장의 로비의 분위기가 보통 어떠했던가. 웅성웅성, 시끌시끌, 다소 정돈되지 못하고 조금 떠들썩하다고 느껴지는 그러 곳 아니었던가. 9월 서촌, 공연 10분전 극장 입구는 조그만 마을 반상회라도 열린 것 마냥 소담스럽다. 공연 관람을 위해 지하극장으로 들어섰을 때, 서촌을 이루고 있는 아담한 공간들의 규모와 유사한 블랙박스형 소극장이 나타났다. 50~60여명의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무척 가까워서 공연자와 관객의 밀도 있는 교감이 가능해보였다. “우리끼리 이렇게 옹기종기모여 재밌는 이야기 하나 같이 들어볼까?”라는 문장에 동의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서촌극장 서로”에서 처음 만난 작품은 ‘프로젝트 만물상’의 <바야흐로 좀,B>였다.

시종일관 (희곡상에서 새롭게 정의내린)좀비에 대하여 B급유머로 양념된 이야기를 좀B급스러운 감성으로 말하는 작품이었다. 우선, 제일 먼저 이것만은 꼭 말하고 싶었다. 주제와 형식을 하나의 코드로(좀비이든 좀B이든)로 풀어낸 것이 정말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다는 점. 흔히 알고 있는 낭독공연이라는 기본방식에 충실하면서도 B급 정서가 충분히 담긴 ‘낭독공연을 위한(?)연출’ 또한 돋보였다. 좀비스럽거나 좀,B(급)스러운 등장인물과 이야기, 그 안에 담긴 B급 언어유희와 B급 유머, 그리고 B급 억지 등 좀비(B)선물세트같은 작품이었다. 다행히 실속이 없는 선물세트는 아니었다.

<바야흐로 좀B>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극 중 등장하는 좀비는 한국사회의 천편일률적인 삶의 방식과 몰개성적인 사회화의 강요속에서 세상과 연결된 영혼을 닫아버린 존재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뉴스리포터는 한국 사회에 이런 좀비 같은 인간들이 확산되는 현상을 일종의 전염병이라며 긴급속보로 알리며 바이러스감염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추파춥스회사에 다니는 2년제 인턴 김아들씨가 끝내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결국 좀비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엔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담겨 있었다. 청년취업, 노동착취, 자살률 증가 등 거시적인 문제들부터 박탈된 희망과 꿈, 획일화되는 개성 등 미시적인 문제들까지 다뤘다.

한강에서 아내가 자살하는데도 ‘살아봤자 희망 없는 인생’이기에 슬퍼하지도 않는 어느 가장의 이야기, 정규직에 대한 목마름으로 2년간 헌신해온 인턴직원의 납득하기 어려운 해고가 자연스러운 사회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B급스러운 상황설정과 무심한 듯 관조적인 태도가 관객들에게 웃음 포인트를 던지지만, 그 안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들을 떠올렸을 땐 결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어진다. 객석에 앉아있는 나 역시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한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면 나 또한 좀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기마련이다.

“전 세상 모든 추파춥스들의 맛을 볼 거예요”라는 대사가 있었다.

내면의 진정한 욕망이 담긴 이런 문장을 내뱉어 본 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내심 부러우면서도 이렇게 발언할 수 있는 영혼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배우들이 우렁차게도 불렀던 ‘추파춥스 환상곡’은 어쩜 그렇게나 환상적이던지. 단언컨대 <바야흐로 좀,B>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면 ‘바야흐로 좀비’라는 곡과 ‘추파춥스 환상곡‘이어야 할 것이다. 50분간 흘러가는 이야기가 그 두 곡의 노래 안에 집약적으로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작가와 음악감독의 혼연일체가 발하는 엄청난 시너지라는게 바로 이런걸까.   

 

 

물론 극의 내용 중 설익은 채 담겨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게이, 레즈비언 등 명확한 삶의 방향과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들을 ‘진짜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간주하여 과도하게 옹호하는 부분들이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다소 계몽적인 이야기들이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너무도 흔한 사회문제여서 자칫 보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자전적 이야기로, “좀비(또는 좀B)”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잘 풀어낸 공연이었다. 어쩌면 공연하는 동안 공간을 감도는 특유의 B급 정서 때문에 우리는 다소 불편한 사회문제들을 조금 덜 경직된 상태로 들여다 볼 수 있었으리라.

낭독공연이란 형태는 소규모 극장이라면 한번쯤은 시도해봤을 흔한 프로젝트이다.

낭독공연은 보는 것보다 ‘듣는 것’으로 오는 상상의 범주가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서촌 공간 “서로”는 타극장에 비해 ‘공연’의 무게감보다 ‘낭독’의 기능이 강화된 ‘낭독공연’을 특화하기에 좋은 구조와 환경을 가졌다. 극장의 규모와 객석 수, 그리고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을 고려했을 때, 예술인들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사용해도 활용도가 높을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예술컨텐츠 탄생을 위한 예술가들의 아뜰리에로써의 “서로”도 기대해 본다.

공연이 끝난 후 극장에서 나온 관객들 대부분이 ‘바야흐로 좀비’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공연의 여운이 가을 바람을 타고 골목길을 따라 솔솔 흐르는 노래와 함께 전해오는 것, 이것이 바로 서촌 어디쯤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공간 <서로>의 매력이 아닐까.

 

*사진제공_프로젝트 만물상

**서촌공간 서로, 웹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spaceseoro.com/

***서촌공간 서로, SNS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spaceseoro

 

필자_낭만다혜

소개_ 무대 위의 낭만에 취했던 어떤 경험으로부터 삶의 의지를 획득. 그 이후로 늘 공연이 있는 곳의 언저리를 맴돌며 ‘낭만’을 찾아다니는, 낭만에 고픈 자.

 

▲서촌공간 서로, 극장내부 모습 (사진출처_http://ohseochon.com)

 

서촌공간 서로는 서촌의 옥인동에 자리한 블랙박스 형태의 공연공간이다. 젊은 예술가들의 공연을 인큐베이팅 하고, 서로다른 장르간 협업 및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할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을 계획중이다. 서로 개관시리즈를 기획하여 <ART FOR ONE>의 클래식 공연, <낭독공연>으로 연극공연을 선보였다. 10월말에 블루스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며, 연말에는 국악공연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서촌공간 서로에서 기획하는 2016년도 프로젝트, 쇼케이스 페스티벌 공모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