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인디언밥 오선지(note)] 8월 7일, 내 맘대로 말걸기

2015. 8. 23. 02:27Review

[프린지+인디언밥 오선지(note)]

8월 7일 금요일 "내 맘대로 말걸기"

 

 

유니크 팩터 <포그 피플> @예술경기장 3층 

 

 

<포그 피플>이라는 공연의 제목처럼, 이들은 홀연히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단 15분을 찾아왔다 떠나는 그들의 움직임은 동시대의 불안과 혼돈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화려한 조명이나 무대 의상에 기대지 않는다. 시멘트와 콘크리트가 가득한 월드컵경기장이야말로 동시대의 도시적인 불안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시멘트 위를 달리고, 몸을 비틀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계단을 오른다. 그러한 동작 하나하나가 시의적인 고통을 재현하지만, 그들의 재현은 결코 부담스럽거나 과하지 않다. 음악의 박자와 함께 동작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멜로이즈 <속삭이는 병원> @예술경기장 4층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즐겨 하던 소꿉놀이나 병원놀이는 연극적인 행위였다. 멜로이즈는 놀이의 본분에 충실한 연극이다. 작은 방 안에 속삭이는 병원을 개업한 멜로이즈의 배우들은 각자가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역할을 맡은 채로 환자를 진료한다. 이때 환자는 아무 이야기나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이 <속삭이는 병원>을 빛나게 한다. 보통의 연극에서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하지만, 이 연극에서는 환자의 이야기에 맞추어 의사와 간호사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의 친구들을 불러왔는데, 의사와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는 터무니없는 나의 공상을 듣고도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나와 신나게 놀아주었다.

 

 

 

씨베리안 텐저린 <백야를 걷는 여자>  @예술경기장 4층

 

<백야를 걷는 여자>는 원작 죽음과 소녀에 내포된 젠더 의식은 물론, 한국인의 레드컴플렉스까지 건드린다. 푸르스름한 백야를 상징하는 조명 아래로 세 명의 배우와 한 명의 해설자가 있고, 그들 주변을 둘러싸고 러시아를 상징하는 온갖 오브제들이 늘어져 있다. 그러한 오브제들은 소련이나 북한, 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을 배격하며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던 남한의 지난 세기를 자연스럽게 조롱하는 동시에, 여전히 흑백 논리로 가득찬 현 사회의 폐부를 찌른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만연하며, ‘대의로 치장되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소수자나 여성의 목소리가 억압되는 순간이 발생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씨베리안탠저린의 당찬 시도를 응원한다.

 

* 사진제공
  <포그 피플>, <백야를 걷는 여자>_서울프린지페스티벌
  <속삭이는 병원>_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