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nbob(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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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구멍에 빠진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 : 배선희<구멍난 밤 바느질>
구멍에 빠진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배선희글_박주현 1. 집이라는 극장 〈구멍 난 밤 바느질〉은 배선희가 사전 제공한 수기 약도를 따라 배선희의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약도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관성적으로 카카오맵을 따라가다 불현듯 멈춰 섰다. 확대도 되지 않고 건물명을 속속들이 알려주지도 않는 구멍 난 약도에 의지해 걷다 보면, 지리라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 배선희가 어떤 얼굴로, 어떤 속도로, 어떤 상태로, 어떤 생각에 잠겨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는지 지도는 말해주지 않는다. 반면, 배선희의 수기 약도는 시공간을 압축하여 최적의 지름길로 등 떠미는 대신 여러 경우의 수를 펼쳐 보인다. 지친 배선희, 슬픈 배선희, 기쁜 배선희, 풀 죽은 배선희, 죽고 싶은 배선희, 도망치고 ..
2024.05.02 -
[리뷰]글이 목소리가 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This is what we think> 북토크
글_이청 리뷰에 앞서, 이따금 문화예술 장애인 접근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 참석할 때가 있다. 그런 자리는 대부분 주최 측에서 유의미한 대화를 기대한다며 다양한 인사들을 모아주신다. 모든 자리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열에 일곱은 비장애인들끼리 머리를 맞댄다. 그럼 나는 한껏 눈치를 보다가 결국 슬쩍 손을 들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비당사자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고. 는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두 시각장애인이 경험한 공연과 전시에 관한 생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다가오는 온도가 다르다. 물론 책의 서두에 나온 내용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모든 시각장애인의 견해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절실한 시기에 이 책이 뜨겁고도 찬란하게 그 포문을 열었음은 확실하다...
2024.03.18 -
[인디언밥 2월 레터] 우리 웹진 정상운영합니다.
지난 레터에 댓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이런 글 말고 예전처럼 리뷰를 많이 써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매체가 관리가 안 되는 거냐고 적어주셔서 이렇게 남깁니다. 2023년 리뷰 부족했던 것 알고 있고 매체 관리 더 잘할게요! 우리 웹진 정상 운영합니다!! 세어보니 2023년 하반기에는 리뷰가 6편 정도 발행됐는데, 상반기에는 1편밖에 올리지 못했더군요. 연초에 작품 발표가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기획에 조금 더 신경을 썼던 탓도 같습니다. 매체가 관리가 안 되는 게 아니라 느슨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과정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올해는 저도 글을 다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지난 12월엔 인디언밥 편집위원 셋이 오랜만에 모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너무 많은 이별에 노출되어 ..
2024.02.29 -
[인디언밥 12월 레터]연말 원망 인사
2023년 한 해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같은 인사 너무 지겹지 않나요?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고마웠던 이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각자의 삶에 감사하는 연말의 풍습이 아주 프로파간다 적이었다는 생각에, 저는 제안하고 싶어졌습니다. 연말 감사 인사 대신 연말 원망 인사를 나눕시다. 내가 이렇게나 불행한데, 이런 세상에 마냥 감사할 수 없다! 저는 더 이상 KBS을 좋아하던 고등학생이 아닙니다. 꼬일대로 꼬인 30대가 되어 아주 그냥 원망을 쏟아내 버릴 거예요. 일종의 객기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유난히 작별이 많은 해였습니다. 인디언밥은 라는 제목으로 밀려나는 예술공간들을 다뤘습니다. 플랫폼P, 서울혁신파크, 삼일로창고극장, 원주아카데미극장까지 다뤘던 게 여름이었는데요, 그 사이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2023.12.29 -
[리뷰]향해가는 페이크 : 다이빙라인<단델re:ON>
향해가는 페이크 다이빙라인 글_허영균 re:ON 관람 후의 감상을 적기 위해 한참 후에 책상에 앉았다가 이 공연을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뒤늦게 궁금해하게 되었다. 창작집단 다이빙라인은 2019년을 시작으로 을 제외하고도 일곱 편이 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의 제목을 받아 보고는 한글과 영어를 혼합하여 중의적인 표현을 담아내려는 표기에 재미있는 감상을 품었는데, 이전 작품들에서도 적극적으로 기호를 사용해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떤 동일성이랄까에 반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문구/텍스트지만 기호성을 품고 있는 이들의 제목은 웹에서 무수히 보았으며, 생성하고, 스러진 이미지를 향해가는 어떤 것 같다. 동시에 ‘동시대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아도, 아주 동시대적인, 우리 시대의 것만인 폐쇄된 시간감 또한 느끼게 한다...
2023.12.28 -
[리뷰]기택 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 <故 임기택 님의 9개월이 2023년 9월 14일 00시 00분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기택 님,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글_배선희 ‘그 사람 요즘 어떻게 지내지?’ 연락할 사이는 아니지 싶다가도 문득 소식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올해 내게 기택 님은 ‘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극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 나누던 기택 님이, 인스타를 켤 때마다 프로필 사진의 동그란 테두리가 빨갛게 빛나며 반짝이던 기택 님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나는 그가 요즘 통 안 보인다는 사실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종종 SNS를 지우기도 하니까, 기택 님도 인스타를 지우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아주 오랜만에 DM을 받았을 때, 사뭇 놀라고 당황하였다. “제가 지난 9개월여 동안 잘 못 지냈는데요(?) 다행히 이제 어느 정도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회복이 되어서 가까..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