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14:35ㆍ07-08' 인디언밥
Take the L train
- 카카키오
- 조회수 8176 / 2007.07.11
"넌 여행자라기 보다는 체류자가 어울려"
히말라야의 붉은 산을 보고 온 친구는 내게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한강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창밖 너머로 붉은 도시를 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몇 번의 새벽을 보내고 다시 아침이 오는 찰나 나는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눈을 떴다.
"I'm a legal alien." 그 순간 무언가 멋있어 보이려는 마음에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흥얼거렸다.
난 지독하게 남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는다. 게다가 어느 곳에 가든 낯선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물론 난 종종 길을 잃고 심지어 자동차 표지판을 따라 몇시간씩 걷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 그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체류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곤란함을 피하는 방법은 무작정 그곳에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10군데의 방을 알아본 끝에 조금 눈발이 날리던 4월, 센트럴 파크에서 동쪽으로 2블럭 떨어진 작은 스튜디오(원룸형식의 집을 여기서 이렇게 부른다.)에서 일본풍 나무칸막이를 두고 캐나다 출신의 패션잡지 에디터와 살게 되었다. Roxy Music의 Bryan Ferry, Panic at the Disco, Joss Stone등 알만한 스타들과 작업을 하고 나면 늘 사진을 보여주고 가끔 미팅이 있을 때는 나를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한국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뭐, 쾌적한 동네에 친절한 룸메이트긴 했지만 캠코더와 지도를 들고 타임스퀘어를 헤매거나 스키니진에 헐렁한 나시티를 입고 소호와 첼시를 누비며 간지를 흘리는 것처럼 억지로 맨하튼에 끼워진 느낌은 불편하고 낯설었다. 자, 그래서 또다시 집구하기에 나섰다.
난 남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는 반면 귀가 상당히 얇다. 첫 계약을 마치고 중고 침대소파를 사러간 자리에서 만난 한인 미술평론가가 말하길 "맨하튼 동쪽의 브룩클린의 Bedford나 Williamsburg쪽으로 가지 그랬어요? 거기가 요새 잘나가는데" 맨하튼에 들어온지 2주일만에 나는 다시 한국에서 온 음악가인데 니네집에 살수 있겠냐라는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찌 "뉴욕, 이렇게 하면 짱먹는다."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집구하기'는 낯선 지역속의 '살아간다'란 문장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라고 믿고있다. 그것이 궁금하다면
http://newyork.craigslist.org/를 가보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앞서말한 사이트의 룸메이트 구인광고를 보고 있으면 이곳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게이인지 레즈비언인지 여성인지 남성인지 이야기를 해야되고 9-5직장인인지 밤에 일하는지 프리랜서인지 알려줘야하고 대다수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의 정도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엔 musician, art의 검색어에 따라 100여통의 메일을 내고 매일 지도를 휴대전화기에 다운받아(절대 길물어보지 않는다.) 집으로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집안을 안내 받고 무슨일을 하는지 생활습관은 어떤지 서로에 대해 묻고 일종의 찾아가는 소개팅 내지 뉴욕/브룩클린 예술가 생계 인터뷰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집은 길거리 연주자의 집이였는데, 벨을 누르고 문을 여는 순간 마리화나 향기가 가득했고 그는 늘어지는 목소리로 "왔썹버리"하며 악수를 내밀었다. Neat Freak의 정확한 반대말을 설명해주는 집이었고 고양이가 두마리 있으니 쥐걱정은 안해도 되고 집세만 제때 내기만 한다기에 혹했지만 늘 취해있고 싶지 않아 대충 얼버무리고 나왔다.
아주 가끔 올라오는 아티스트 커뮤니티의 집에서는 세세하게 나의 이력을 적어가며 면접을 보았는데, 그들이 찾는 룸메이트는 단지 방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작업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꿈이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장장 30분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쉬울 기회도 없이 다른 사람이 들어갔다. 미련은 없지만 이따금 그러한 집에서 살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가장 아깝게 놓친 곳은 맨하튼에서 20분정도 거리에 브룩클린의 재퍼슨가에 위치한 로프트였는데, 10미터는 될법한 높은 천장에 60평정도 되는 방이 수도 없이 쌓여있는 공장같이 거대한 건물이었다. 집의 호스트는 잡지 일러스트를 그리는 미술가였고 내 소개를 하며 음반을 보여주자 자기도 음반이 있다며 쓰레기 더미에서 낡은 시디를 보여주며 웃었다. 자기와 같이 살고 있는 2명의 룸메이트 모두 기타리스트라며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음악을 하는데, 스티브 바이에 미친 녀석들이라며 내가 들어오면 신나게 놀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때 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스티브바이에 미친 한 룸메이트는 맥주를 꺼내 왔다. 앞서 말한 맨하튼의 집을 이야기 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해주니 마치 매트릭스에서 인간들이 기계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옮겨 가는 것처럼 자기도 역시 브룩클린으로 왔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오는 길에 공연이라도 보러가라며 팜플렛을 건내주었다. 매우 간발의 차이로 그 집을 놓치긴 했지만 1달뒤 브로드웨이에서 그의 작은 뮤지컬을 보는 기회를 얻었다.
디자이너,영화인,사진가, 미술가,무용수,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한결같이 무언가 멋진 것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 곳들을 방문하니 "어차피 우린 두번째 직업없이는 못살아"라는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적인 물가를 이겨낸 그들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그 뒤로 창문 하나 없이 간막이 방에 한달에 1000달러를 부르는 Bedford근처 로프트에서 지하철에서 20분거리에 묘지공원이 보이는 인터넷/전기세빼고 520달러의 멋진 아파트까지 결코 작은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딜가나 예술가가 살고 있는 브룩클린은 나를 사로잡았다. 사실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황량한 동네같아 보이지만 거리마다 건물마다 예술가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고 그 틈에 치열한 작업들이 펼쳐진다는 상상을 해보니 비로소 입고 싶은 옷이 생겼다.
체류와 여행의 차이라 함은 이웃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따라 내가 어떤 체류자로 살아가는 지 결정될 것이란 약간 터무니 없는 믿음이 들었다. 그래서 브룩클린을 향한 서른번의 시도 끝에 대학시절 마리화나 딜러로 돈을 벌어 스페인에서 2년동안 살고 퀸즈에서 스패니쉬와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디제잉과 트럼펫을 연주하는 선생의 집에 살게 되었다.
낡은 나무 바닥에 앉아 그가 추천한 Gary Benchley,ROCK STAR란 소설을(얼추 내 이야기와 비슷하다. 소설의 주인공 역시 음악하기 위해 뉴욕으로 왔다 브룩클린에 정착하는 녀석이다.) 읽다 잠시 내가 살아온 곳을 떠올려본다. 홍대앞 365거리가 얼마나 예술가들로 가득차 있었고 독립예술문화가 꽃피우는 그 현장이 어떤지 나는 어림잡아 상상만 해보지만 예술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혹은 어쩔 수 없이) 차지한 지역사회는 그 어떤 정책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보충설명
* Take the L trian 1탄
* 카카키오가 2007년 뉴욕으로 날아갔습니다.
홍대에서 음악하기, 브로클린에서 음악하기에 관한 비교분석 에세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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