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 시민 되기, 그 불가능한 연습 <아이 서울 유, 데이 서울 미>

 

 

서울 시민 되기, 그 불가능한 연습

 

 

- 서울거리예술축제 <아이 서울 유, 데이 서울 미: 원의 안과 밖>

@서울도서관, 서울광장

 

 

글_김민조 (연극평론가)

 

 

2015년부터 사용된 서울시의 브랜드 ‘아이. 서울. 유(I. SEOUL. U)’는 이른바 3세대형 도시브랜드라 불린다. 하나의 도시 이미지를 강조하는 1, 2세대 브랜드의 한계를 넘어 ‘비 베를린(be berlin)’,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 ‘앤드 도쿄(&TOKYO)처럼 해석의 개방성을 추구하는 것이 3세대형 도시브랜드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시민들 각자가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첨작하는 열린 브랜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1) 나와 너 사이에 술어의 형태로 삽입되어 있는 고유명사 ’서울‘은 그것을 발화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대관해준다. 그러나 그 의미의 윤곽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한다는 신택스의 형태로 주어져 있다. 마치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형식을 갖춰 대관해주는 서울광장과 기능적으로 유사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출처_서울특별시 홈페이지

그런데 나와 너 사이의 텅 빈 관계에 기입될 수 있는 서울의 이미지란 무엇인가.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관계의 아비투스는 무엇으로 상상될 수 있는가. 근 30년 간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시민으로서 말하건대 서울은 쫓아내는 자와 쫓겨나는 자들의 계층 관계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극심한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이라는 명분 아래 강행되는 재개발, 그리고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이삿짐을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하는 것이 보통의 서울살이이다. 미국이 이민자들의 국가라면 서울은 이주자들의 도시라 불려도 무방하다. 그래서 사당동이나 마장동을 내 고향이라 부를 수는 있어도 서울을 내 고향이라 부를 수는 없다. 

서울시 행정의 역사는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푸코) 인구관리 정치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울시가 신자유주의적 박탈(dispossession)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방조자로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광경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서울광장 대관을 둘러싼 분쟁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가령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 당시 경찰이 광장 전체를 차벽으로 포위했을 때 서울시는 행정안전부의 위헌적인 결정에 대해 침묵했고, 2015년부터는 퀴어문화축제 측의 서울광장 사용 신고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심의에 넘겨 승인 처리를 지연시켜 왔다는 점이 최근 확인되기도 했다.2) ‘모든 시민’의 광장을 자임하고 있는 서울광장은 기실 ‘누가 시민인가’를 두고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다. 그러나 서울시는 종종 그 질문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는 대신 정부의 결정이나 정체가 모호한 ‘시민의 소리’ 뒤에 숨곤 한다. 

‘원의 안과 밖’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된 <아이 서울 유, 데이 서울 미>는 서울이라는 텅 빈 술어의 효과를 ‘안’과 ‘밖’의 시차 속에서 바라보는 공연이다. 관객은 서울도서관 옥상에서 시야 반경에 들어오는 서울시청 부근의 경관을 조망한 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서울시청 내부를 관람한 뒤 녹색 원을 그리고 있는 서울광장으로 나가게 된다. 달리 말해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던 동그라미 안으로 관객이 직접 들어가게 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공연은 서울도서관 건물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1부와 서울광장으로 나가는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 2부로의 이행은 곧 ‘아이 서울 유’에서 ‘데이 서울 미’로 시선을 바꿔가는 과정이 된다.

사진출처_'원의 안과 밖'

1부는 불편하면서도 신선하다. 실제로 정원사와 투어 가이드 일을 해온 퍼포머들의 능숙한 안내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관객은 자신이 공연 상황에 놓여 있는지 실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분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인솔자의 뒤를 좇아 시장실이나 전시실 등 역사성이 있는 장소를 가로지를 때, 서울도서관 내부를 걸어다니는 시민들의 모습과 그들이 내는 소음 속에 경계 없이 섞여 있을 때 관객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 명의 손색없는 ‘서울 시민’이 된다. 시정(市政)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진짜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주어진 관광 루트에 따라 서울을 학습하는 예비 시민으로서 말이다.

관객은 ‘시민 연습’이라 부를 수 있는 일련의 체험을 통해 역설적으로 서울이라는 텅 빈 동그라미의 둘레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는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게 된다. 그 투명하고도 완고한 경계선은 두 번의 참여 퍼포먼스를 통해 보다 뚜렷이 다가온다. 예컨대 시장실 옆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의 실무회의에서 관객은 매년 유지하기가 어려운 광장 잔디를 포석으로 바꾸는 사안이나 서울시청사에 내거는 슬로건 문구를 정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지만, 정작 관객이 제시한 의견은 실무자들이 진행하는 의사결정과정에 의해 손쉽게 묵살된다. 더욱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실제 시민들이 손으로 적어낸 방문 후기들을 떼어낼 때이다. ‘공간을 비워줘야 한다’는 사무적인 요청에 의해 관객들은 게시판에 걸려 있는 방문 후기들 중에서 보관할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맡게 된다. 심지어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는 이유로 선별 작업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어 버리는데, 선별 중이던 종이뭉치들을 박스 안에 적당히 던져 넣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모두가 누구를 위해 굴러가는 일인지 모를 전시 행정에 가담한 듯한 불편한 느낌마저 받게 되는 것이다.  

 

사진출처_'원의 안과 밖'

2부는 1부와 정반대의 색채를 띤다. 서울도서관 건물 뒤편으로 빠져나온 관객들은 갑작스럽게 ‘동그라미를 싫어하는 모임’이 주최하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로 호명된다. 동그라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직접적으로 밝혀지지 않지만, 일차적으로는 서울광장의 형태를 은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그것은 관객들이 1부에서 체험한 몰이상적인 ‘행정’의 사이클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그라미 징그러워!” 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면서 서울광장으로 돌진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어딘지 모르게 아리송한 면이 있다. 1부의 경우 관객이 무슨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제작진이 지나칠 만큼 친절하게 손에 쥐어주는 면이 있었다면, 2부는 반대로 제작진의 의도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액면 그대로 이해하자면 2부를 ‘서울광장에 설 권리로부터 배제되어 온 사람들을 대행하여 정상성의 원 안으로 침입해 들어가는 서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해서 이해하기에는 집단 행동의 성격 자체가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다. 관객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대행하고 있는 것일까? 집회를 주최하는 측은 율동과 구호를 통해 관객들을 선동하는 데 주력하나, 원 밖으로 배제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실제 개인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들려주지는 않는다. 1부에서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공간과 경험의 구체성에 비하면 2부의 집단 행동은 도리어 추상적인 구호가 앞선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스크럼을 짜고 서울광장의 경계 안으로 한 발을 내딛는 시점까지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다소 얼떨떨한 상태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이미 광장에서는 서울거리예술축제 참가팀들이 다종다양한 부스를 차려놓고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기에 서울광장 자체가 진입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야 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묘한 위화감은 광장 한 구석에 원형으로 둘러앉아 술래잡기를 하고 춤을 추고 기타 연주를 들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엔딩에 이르러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원 안으로 난입해 들어온 것일까? 아니면 어떤 매너리즘적인 저항의 제스처를 공유하는 중인 것일까? 혹시 이러한 내용 없는 위로의 순간들 자체가 ‘데이 서울 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공연의 엔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든 수상하게 받아들이든 간에, 광장 저편에서 투어 가이드가 새로운 관광객들을 이끌고 재등장하는 순간은 섬뜩하게 다가올 것이다. 관객은 저항의 행동조차 서울을 구성하는 스펙터클의 일부로 바라보는 어떤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시선을 느낀다. 

사진출처_'원의 안과 밖'

사실 세상은 원의 안과 밖으로 깔끔하게 나누어질 수 없다. 시민-됨을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주체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비틀린 곡면상에 놓이게 된다. 시민의 소리로 시민의 소리를 억압하고, 민원을 근거로 민원을 무마하는 그 이상한 무한대 기호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 서울 유, 데이 서울 미’ 라는 제목은 어쩌면 그 물고 물리는 순환 관계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는 순간에는 잠시 그러한 상념들을 잊고, 이 광장에 진짜로 누워 있어야 할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올해에도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기 위해 혐오세력과 대관 전쟁을 치렀던 사람들, ‘충돌의 우려’를 피해 다른 장소를 전전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1) 음성원 기자, 「서울 새 브랜드 ‘I.Seoul.U’…비판만 받을 일인가요?」, 《한겨레》 2015. 10. 29.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5062.html#csidx4f031e1e437b8878666a82fd7df9bac)

2) 이보라 기자, 「서울시, 퀴어축제 광장 사용신고 처리 5년간 부당하게 늦췄다」, 《경향신문》 2019. 10. 23. (https://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230848001&code=940100

필자소개_김민조

연극비평집단 시선 소속, 연극답지 않은 것과 평론답지 않은 것 사이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사진출처_'원의 안과 밖'

공연 <I SEOUL YOU, THEY SEOUL ME>

너와 나의 서울, 우리를 둘러싼 그 밖의 세계와 만나는 관객 참여형 산책 연극
서울시의 슬로건 '아이 서울 유' 의 패러디, '데이 서울 미' 는 서울시청 이라는 상징적 공간에 대한 탐구와 함께 원형의 광장, 그 안과 밖에 관한 독특한 이야기를 펼친다. 서울의 파노라마를 지나 대기업의 빌딩들 사이로 출근하는 공무원들, 주변을 떠도는 거리예술가, 서울의 풍경 속에서 바라보기도 외면하기도 했던 사람들과 함께 관객은 비로소 한 명의 서울 시민이자 공연의 인물로서 이 연극을 완성한다. 서울 시청 안과 밖을 관객들과 함께 걸어보면서 너와 나의 서울, 나를 둘러싼 타인들의 세계를 발견하는 유쾌한 산책 연극이다. 

- 서울도서관 (서울시청 구청사)옥상에서 선착순 20명의 관객과 출발

*러닝타임 - 60분

*관람가 - 전체관람가

*일시 - 10월 5일, 6일 | 오후 2시, 오후 5시

*장소 - 서울도서관, 서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