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올모스트프린지_마이크로포럼 '예술(가) 지원 어떻게 생각하니?'

2019. 9. 27. 23:52Review

 

 

예술(가) 지원, 어떻게 생각하니?

 

서울프린지페스티벌_올모스트프린지_마이크로포럼@문화비축기지 T5

 

글_성연주

사진출처_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매년 초가 되면 여기저기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가 열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공공 예술지원기관에서 주최하는 ‘지원사업 설명회’가 그것이다. 여기 모여든 예술가들은 연초의 매서운 겨울바람의 끝에 공들여 지원서를 쓰고, 봄에 발표된 결과에 따라 여름 내내 작품 준비를 열심히 하다가 가을에 드디어 작품을 선보이고, 겨울에 접어드는 연말에 정산보고서를 내는, 일(一)모작형 삶의 방식은 이미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익숙해진 지 오래다. ‘지원사업’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지 않고 창작 작업을 하는 예술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원사업은 창작의 제1의 조건과 환경이 되었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지원사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고(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계 제도 개선 공론화 플랫폼, 서울문화재단 THE 넓은 라운드테이블 등), 논의되는 양에 비해 개선되고 변화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인상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지루하고, 상투적이고, 답답한 주제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2019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열린 마이크로 포럼 “예술(가) 지원, 어떻게 생각하니?”는 프린지 참여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예술 그 자체’, 또는 ‘예술가에 대한 지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고루한 이 주제를 여기서 또 선정한 이유는 2018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마이크로 포럼 주제였던 “청년예술(가) 지원, 어떻게 생각하니?”의 연장 선상에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예술지원을 언급하는 것이 시의적절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우리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공연예술 장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공연예술가’라고 부른다. 조각가를 ‘시각예술가’라고 말하는 것도 특정 장르의 예술인을 지칭하는 의미를 가진다. 반면 청년예술가는 어떠한가. ‘청년예술’이란 장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어떤 작품에 한국 청년의 삼포세대, 수저세대론을 주제로 펼쳐냈다고 해서 이 작품을 누구도 ‘청년예술’이라 부르지 않는다. ‘청년예술’은 여기에 예술인을 뜻하는 ‘가’를 붙여 ‘청년예술가’라 칭하고, 연령이 어리거나 경력이 적은 예술가를 통칭할 때에만 그 이름의 힘이 살아난다. 

 

이들은 주로 한국의 일반 청년 담론이 그러하듯 기회가 제한되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기 힘들고, 극도의 경쟁 상황에 놓이고,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세대로 묘사된다. 최소한의 ‘경력’이 있어야 예술지원사업에 지원서를 내밀어볼 수 있는 현실에서 청년예술가들에게 경력을 만들어주는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사업’이 만들어지고, 최소한의 안정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창작의 씨앗을 틔울 수 있는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이 만들어진 것은 모두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러나 청년 시기 이후 예술가들에게 지속적인 작품 활동과 안정적인 수입은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30대 후반-40대 초반, 경력 10년 이상 예술가들의 사망 소식은 특정 세대의 어려움과 고초에만 집중할 수 없는 예술계의 보편적 문제를 잘 보여준다. 결국, 세대를 초월해 한국의 (어쩌면 전 세계의) 모든 예술가에게 지속성과 안정성은 가장 유효하고 중요한 문제이며, 그래서 우리는 오늘, 지금, 여기에서 예술지원 테마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포럼에서 10여 명의 사람들은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창작환경과 예술가의 지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작환경’과 ‘지위’는 공공 예술지원의 궁극적인 목표를 창작환경과 예술가 지위 ‘개선’이라고 가정할 때, 광범위한 예술지원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주기적으로 ‘예술인실태조사’를 실시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 구성을 보면, 공적보험 가입, 수입 활동, 계약 체결, 작업공간 등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환경을 측정하고 평가한다. 

 

포럼을 준비하면서 ‘후레쉬(문화정책젊은연구자모임)’이 의도했던 건 이런 경제적인 부분 중심의 기초적 창작환경 다음 단계에 놓여 있는 창작 아이디어 가지기, 네트워크 구축, 작품의 완성도 높이기 등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실제 참가자들과의 대화는 결국 예술가라는 직업을 단절하지 않을 수 있는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의 안도감에 대한 논의로 귀결되었다. 실제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서울문화재단의 여러 FA(facilitating artist), 서울청년예술단 등 매월 70-120만원의 활동비를 월급여 형태로 지급하는 사업은 최근 몇 년 간 예술가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이 혜택을 받고 있다. 포럼 참가자 중 여기 속한 사람들은 “다음 달에 내 통장에 얼마가 몇 일에 찍힐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오늘의 내가 예술 활동을 하는데 엄청난 차이를 준다”고 언급하며 다른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였다. 

 

사진출처_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일 년 예술지원 예산 총액을 한국의 전체 예술가의 수로 나누어 개개인에게 기초수당의 형태로 제공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형태의 지원, 국제교류를 갈 수 있는 항공비나, 일반 리서치 지원, 공연장 대관료, 이런 것들 말고 그냥 모든 지원금을 전부 현금 형태로 개인 예술가에게 알아서 지출하게 하면 더 많은 다양한 작품이 생산되고 유통될까? 너무 극단적인 질문이기에 누구도 여기에 이런 방식이 좋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예술지원이 변화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전 시작된 월급여 형태 지원사업이 주는 인식적 변화, “안정적인 수입이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을 창작”하게 도와준다는 사실은 이제 최소한 한국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조금은 당연하게 주장하고 싶은 신념이 된 것 같다. 과연 그런 사업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여기에 선정되는 기준은 무엇으로 해야 할지 합의해야 할 지점은 정말 많겠지만, 사실 그런 모든 논의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예술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그 단순하고도 간단한, 익숙하고도 쉽게 답변 내리기 어려운 이 질문에 대한 논의를 축적해 가면서 우리는 언젠가 조금 더 당당하게 예술가의 개선된 창작환경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더 체계화되고 실질적인 예술지원 사업에 대해 요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예술(가) 지원,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이 사유를 잘 정리하고 공표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예술지원의 달라진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성연주_ 어려서부터 음악을 공부했다. 음악에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음악이 음악 안에서만 얘기되는 현실이 갑갑해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올모스트프린지: 마이크로포럼

'올모스트 프린지'는 독립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201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마이크로 포럼'의 형태로 펼쳐지는 '올모스트 프린지'는, 축제 참여 예술가가 직접 포럼의 주제를 제안하고, 진행 방식을 고민하며,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논의를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Section1. "예술(가)지원, 어떻게 생각하니?-예술가 지위에 대한 상상" _ 후레쉬(문화정책연구자 모임) 제안

후레쉬_

"후레쉬-문화정책 연구자 모임"은, 문화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의 느슨한 연구 모임입니다. 모임은 2030세대로 이뤄져 있으며, 청년의 시선으로 문화정책에 접근하고 '후레쉬'한 문화정책을 생산하고 교류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