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 각자의 베네수엘라를 위하여 <Guayabo(애도 파티)>

 

우리 각자의 베네수엘라를 위하여

 

 

Ania Varez, <Guayabo(애도 파티)>@산돌극장

 

글_우낙원

 

*

 

독재 정권이 28년에 걸쳐 장기 집권을 이어가는 동안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관객들은 <Gayabo>의 퍼포머이자 연출가인 아니아 바레즈(Ania Varez)를 통해 현재 베네수엘라가 처한 상황에 대해 듣는다. TV 스크린에선 영상이 나온다. 영상 속 배경은 베네수엘라의 수도이자 퍼포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인 카라카스다. 그곳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 같아 보인다. 예고 없이 전기가 끊기고, 하루 종일 줄을 서 있어도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살 수 없을 때가 많다. 사과 한 알을 구할 수 있는 것이 기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길을 나선 이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곧이어 관객들은 퍼포머가 쓴 여러 편의 글들을 듣게 된다. 그 가운데는 퍼포머 본인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시도 있고 가족들에게 썼지만 차마 보내진 못할 편지도 있다. 자신의 더없이 고통스러웠던 경험들마저 퍼포머는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읽어나간다. 극장 바닥에 누운 퍼포머가 낭독을 이어갈 땐 관객들도 따라 누워 그것을 함께 듣는다.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 ⓒAlastair Brookes

 

오후 8시 53분, 오픈 채팅방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스탠드를 봐주세요. 아니아의 가족과 연결된 불빛을.”1, “아니아의 가족이 답장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스탠드를 봐주세요.”2, “핸드폰을 머리 위로 들고 화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주세요. 손을 내리시기 전에 극장 안에 자신 말고 또 누가 있는지 봐주세요.”3, “다음 문장을 20번 반복해서 속삭이듯 말해주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안녕하기를 기원하면서요: 언제나 평안하시기를.”4 이때부터 관객들은 점차 공연의 수행자가 되어간다. 사과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적고, 퍼포머의 가족들을 위해 함께 손뼉을 치기도 한다. 곧이어 오픈 채팅방에 베네수엘라의 시위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올라온다. 관객들은 숟가락을 내려쳐 만들어낸 소리로 시위에 동참한다. 

끝으로 관객들은 피냐타(Piñata)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피냐타 게임은 매달아놓은 구조물을 함께 때려서 부수는 놀이인데 운동회 날의 박 터트리기를 연상시킨다. 구조물이 터지면 각종 파편과 전구 불빛이 쏟아져 나온다. 참여 관객들은 그 잔해 위에 사과를 옮겨놓는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퍼포머의 가족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나머지 관객들은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을 살피다가 사과를 집어 든 채 극장을 떠난다. 관객들이 극장을 모두 빠져나간 오후 9시 39분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어머니께서 방금 고맙다는 답을 보내오셨습니다. 다시 한번,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오픈 채팅방은 곧 사라질 거예요. 조심히 돌아가세요.”5

  

*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 ⓒAlastair Brookes

 

이 공연에서 어둠은 단순히 조명의 없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오브제이며 무대 세트다. 어둠은 통상적으로 단절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반대로 이 공연의 어둠은 거대한 전해질처럼 기능한다.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퍼포머의 절실성은 어둠을 통해 한국의 관객들에게 전이된다. 이 공연의 어둠에는 또 다른 효과도 있다. 관객들이 개별 퍼포머로서 자신들의 수행에 보다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 그것이다. 스탠드 불빛을 기다리는 행위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행위도 이와 같은 어둠 속에서 익명성을 띄고 이뤄진다. 이 공연의 어둠은 무대 위에 선명히 존재하는 침묵이고 여백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애도’를 수행함으로써 관객들은 공연을 완성한다.

그러나 <Gayabo> 역시 많은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들이 마주하게 되는 물음을 피해갈 수 없다. 그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관객들이 어떤 강제도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인가? 공연 중에 형성된 도덕적, 심리적, 정치적 공통분모가 얼마만큼의 내적 깊이를 지닐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참여자마다 그 의견이 갈릴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 관객들은 베네수엘라의 상황에 대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이해를 지니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두가 동시에 참여하는 방식이 누군가에게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가진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또한 선의라 할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관객의 인식 변화와 정치적 실천을 이 공연의 목표로 간주하고 그 성패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이 공연의 의의는 제의적 드라마 전통의 계승에 있어 보인다. 

이 작품의 서사적 구조는 아주 명료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결코 평면화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퍼포머의 당사자성 때문이다. 창작자의 절실함에서 비롯된 이 작품의 서사는 그 힘이 무대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때문에 관객들은 행여라도 퍼포머가 가족들로부터 회신을 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며 공연에 몰입하게 된다. 이 작품의 서사가 관객들에게는 퍼포먼스적 체험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삶과 예술, 즉흥과 연기,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점에서 <Gayabo>는 연극의 원형으로서 존재했던 제의적 드라마를 ‘지금, 여기’에 다시금 복원한다. 

이 공연의 제목으로 선택된 <Gayabo>(애도 파티)는 형용모순Oxymoron처럼 느껴지는 단어다. 그런데 어쩌면 모든 예술창작의 저변에는 근본적으로 ‘애도 파티’의 모순이 깔린 것일지도 모른다. ‘애도’이면서 ‘파티’인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공연예술이라는 장르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제의로서 존재했던 연극, 그 기원에 ‘애도’ 그리고 ‘파티’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한 제의적 드라마가 오늘날 가장 동시대적인 형태로 귀환한다면, 관객들은 과연 어떤 공연을 보게 될 것인가? 이제,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안다.


1. Look at the light. Look at the lamp connected to Ania’s family.

2. We’re waiting for Ania’s family to reply. Look at the lamp.

3. Please hold your phone above your head, with the light of the screen shining towards your face. Stay there for a moment and notice who else is in the room, before putting your phone back down.

4. Please repeat the next sentence 20 times, whisper it out loud as a wish for someone you love. The sentence is: may you always be well.

5. Ania’s mom just texted back saying “Thank you.” Once again, thank you so much for coming. The KakaoTalk group will be deleted now. Wishing you a safe way home.

필자_우낙원

각기 다른 활동명을 통해 극작, 연출, 무대, 조명, 영상 등의 작업을 해왔다.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제14회 젊은 비평가상 가작 공동수상 (연극부분), <셰익스피어 죽이기, 트럼프 죽이기>

사진제공_변방연극제 © Alastair Brookes / KoLAB Studios / Trinity

2019.07.11-13. Thu-Sat 8pm | 16+//80 min//20,000 Won

공연소개_GUAYABO(애도파티)

Guayabo (“비통함”을뜻하는베네수엘라속어) 일종의 애도 모임이다: 이민자의 현실이 어떠하며 그 고충은 무엇인지, 우리가 상실의 경험을 어떻게 견뎌내며 그로부터 얻는 것은 무엇인지, 집단적인 애도를 통해 새로이 발견되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하는 만남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영화, 축하의식 및 애도 의식의 원거리간 교류를 통해 사람들은 베네수엘라에 사는 Ania의 가족과 연결되고 또 그들이 처한 심각한 인도적 위기상황을 인식하게 다. Guayabo는 생존과 변화, 그리고 연대를 위한 매개체로서 우리가 가진 기존의 행동방식 및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티스트소개_Ania Varez (아니아 바레즈)

Ania Varez 는 영국 브리스톨에 기반을 둔 베네수엘라인 예술가로서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안무, 텍스트, 영화, 음악 등 서로 다른 매체를 활용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또 새로이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여기 이곳에서,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중이다. 

------------------------------------------

출연 및 컨셉트_Ania Varez

비디오 제작_Gabriel Suárez

조명 및 기술자문_Tom Richmond

멘토링_Caroline Williams

프로듀서_Katherine Hall

베네수엘라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_Rosanna Riccio, Marisa Riccio, Angelo Riccio and Lidia Cammarota

공연 통역_신주훈 / Shin Joo Hoon

텍스트 번역 _조혜정, 이재은 / Cho Hyejung, Yi Jae Eu

후원 

Guayabo 는2018년 SPILL Festival of Performance에서 SPILL OPEN 프로그램 가운데 한 작품으로서 Jerwood Charitable Foundation의지원을 받아 초연되었다. 본 작품은 영국예술위원회와 Trinity Community Arts 재단이 IGNiTE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Bristol Old Vic 극장이 Leverhulme Scholarship을 통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