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익숙하고 낯선 몸을 경유한 윤리적 탐구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익숙하고 낯선 몸을 경유한 윤리적 탐구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신촌극장

 

 

글_김유진

 

  극장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관객들 사이로 세 명의 퍼포머가 각자의 준비된 자리에 앉아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덮는다. 스피커에서 핸드폰 진동음과 같은 일정한 박자의 배음이 흐르고 그 리듬에 몸을 싣기 시작한 퍼포머들은 양발을 까딱이며 교차한다. 한동안 계속되던 퍼포머들의 작은 동작은 곧 크고 다양해지는데, 이들은 돌아가면서 각자의 얼굴을 양옆의 사람들에게 가까이 들이밀고, 서로를 향해 휘파람을 주고받으며, 또한 앉은 자리에서 차례로 몸을 구르고 접는다. 이어서 퍼포머들은 의자 등받이에 다리를 놓고 거꾸로 누운 채 입안에 숨겨두었던 사탕들을 서로에게 한참 뱉는다. 그런 다음 세 사람은 점점 가빠지던 숨을 하나로 모아가며 의자와 바닥을 몸으로 쓸어 내려와 무대 중앙에 모여 앉는다. 그리고는 서로를 무게 중심 삼은 채 바닥에 앉아 시계 방향으로 함께 돌더니 곧 차례로 또 동시에 상체를 뒤로 젖혀 폭소를 터뜨린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면서 또 때로는 소리 없이. 갑작스러운 암전과 함께 어느 순간엔가 사라진 스피커의 배음을 대신하여 퍼포머들의 숨소리와 움직임이 앉아있는 관객의 뒤를 몇 분간 스쳐 간다. 그리고 무대가 위치한 신촌극장 건물의 옥상과 출입 계단 쪽의 문이 열리면 어느새 사라진 퍼포머들을 대신한 극장 바깥의 풍경이 드러나며 공연은 끝이 난다.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 ⓒ한민주

 

  황수현 연출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는 퍼포머들의 가려진 얼굴만큼이나 서사가 없다. 대화도 독백도 내레이션도 없는 공연에서 퍼포머들의 얼굴에는 머리카락이 덮여 있어 퍼포머 개인 혹은 그들이 맡은 ‘배역’의 내면에 대한 정보가 지워져 있고, 그들의 동작은 감정이나 서사를 재현하는 춤을 닮아 있지 않다. 황수현은 <I want to cry, but I’m not sad>(2016)와 <우는 감각>(2018) 등을 통해 지난 몇 년간 슬픔이란 감정과 엮여 있지 않은 눈물을 무용수들의 신체 감각과 움직임으로 기술하였다. 서사와 슬픔의 반응으로서의 눈물이 아닌 다양한 신체 감각과 움직임으로 흐르는 눈물을 통해서 감각과 감정의 관계성을 탐구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는 서사뿐만 아니라 전작과 달리 괄호 쳐진 슬픔/감정과 빈 괄호로서의 눈물/감각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미세한 단위의 정박과 변박을 따르는 움직임에서부터 근거리와 원거리를 오가는 호흡을 비롯해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이 침묵과 비명이 뒤섞여 일그러진 퍼포머의 얼굴에 이르기까지, 해당 공연에서 연속되는 퍼포먼스가 과연 어떤 구상(서사)과 추상(감정과 감각)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추론의 가능성이 관객에게 불투명한 것이다.

  특정 명사를 소실점 삼지 않는 공연은 불안정하게 흐르는 형용사로서의 감흥만을 관객에게 열어 보인다. 여기서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를 가로지르는 형용사를 찾을 수 있다면 바로 ‘언캐니’(uncanny)가 아닐까. 주지하듯이 언캐니는 낯익으면서도 낯설고 그래서 친숙하면서도 두려운 대상 및 경험을 마주할 때 일어나는 감흥을 가리키는데, 이는 해당 공연에서 익숙한 신체가 기능과 의미로부터 독립한 채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만들어 내면서 일으키는 정동의 정체를 거칠게라도 파악할 힌트가 된다. 다른 맥락 속에서 재현의 기제가 되었을 법한 퍼포머들의 신체는 맥락이 사라지자 같은 모양을 띠고서도 낯선 존재로 무대에 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사의 맥락에서 탈주한 퍼포머의 신체는 언캐니하다. 뿐만 아니라 익숙한 신체가 낯설어지는 경험은 타자의 몸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퍼포머는 사전에 약속된 스코어를 따라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에 수반하는 신체적인 반응―땀, 어지럼증, 맥박의 증가 등―은 그의 몸을 불안정하고 긴장된 것,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으로 만든다. 관객은 객석의 안전지대 속에서 관찰자의 역할만을 수행할 듯하지만, 퍼포먼스의 직간접적 자극의 대상이 됨에 따라 그들 역시 감각적, 심리적, 신체적 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비록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지 않지만,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서 관객은 객석과 무대가 구분되지 않는 원형의 공간에서 퍼포머를 포함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시선을 교환하고 때마다 반응하고 그래서 다른 반응을 유발하는 유동적 존재로서 공연의 또 다른 동력의 지점을 맡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퍼포머에게나 관객에게나 수행성은 익숙하고 낯선 몸의 교차점이 된다.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 ⓒ한민주

 

  수행하는 몸이 낯설어지는 언캐니적 경험은 주체가 타자와 만나는 지점이다. 즉흥과 우연이 아닌 익숙하고 약속된 길로의 수행임에도 그 길에서 마주하는 낯선 타자의 흔적은 그리하여 타인의 타자성과 주체성을 아울러 이해할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는 제목이 가리키듯 타인의 경험을 인지하는 주체의 존재를 공연의 언캐니적 경험 과정을 통해 외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퍼포머의 흐르는 땀과 가쁜 숨은 중력에 매인 인간 신체의 유한한 조건과 죽음이란 익숙하고도 낯선 인간 공동의 운명을 관객에게 연상시키고, 이로써 주체는 타인과 폐쇄적 원형 공간의 동일한 선상에서 비동시적으로 타자/죽음을 주어진 대로, 그러나 불안한 기운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리하여 황수현 연출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는 감각, 감정, 신체에 대한 그의 이전 탐구에서 더 나아가 주체의 타자성과 공동체적 경험으로까지 질문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이다. 다만 그의 탐구는 타자의 얼굴이 아닌 타자의 신체를 경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비나스를 익숙하고도 낯설게 연상시킨다.

필자_김유진

문학과 연극을 공부하고 있다. 동시대 연극의 경쟁력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

 

2019.07.10-13. Wed-Fri 8pm. Sat 7pm | 15+//60 min//20,000 won @신촌극장  Theatre.Sinchon

공연소개​

타자들 사이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상호주관적 토대로서 신체적 공감이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한다.퍼포머들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과 호흡, 리듬 등의 근감각적 재료를 사용하여 감각의 전이를 일으키며 특정한 정동을 발생시킨다. 관객은 퍼포머의 행동에 직접 반응하거나 다른 관객의 반응 행동을 지각함으로써 신체적 공감의 피드백 루프에 참여하게 된다.

아티스트 소개

작가는 지난 몇 년간 눈물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를 통해 감각과 감정의 문제를 탐구해 왔다. 이번 작업에서는 신체 감각과 감정의 연관성에 대한 기존의 문제의식을 타인과 공유되는 감각의 문제로 확장한다.

참여 아티스트

컨셉,안무_황수현

퍼포머_강호정, 박유라, 황다솜

사진제공_서울변방연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