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편지로 실험하는 애국적 광기 : 丙 소사이어티의 <Patriotic Insanity>를 중심으로

2019. 12. 20. 13:35Review

 

 

편지로 실험하는 애국적 광기 : 소사이어티의 <Patriotic Insanity> 중심으로

 

 

 소사이어티의 'Patriotic Insanity : 애국적 광분' @242

 

 

글_조혜인

 

 

丙 소사이어티(이하: 병소)는 연출가 송이원을 중심으로 모인 공연창작집단이다. 병소는 갑(甲), 을(乙), 병(丙)의 위계관계에서 ‘병(丙)’이 되기를 자처하며 그 위계관계를 전복하고, 병(病)스러운 사회에 대항하여 병(丙)적인 이야기를 함으로서 마이너리티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병소가 꾸준히 타겟(target)해온 작업의 화두는 ‘신토불이(身土不二)’다. 몸과 땅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토불이 연작은 <우리의 뿌리는 왜 발이 되었나>(2018)을 시작으로, 지난 여름 제19회 서울변방연극제의 <신토불이 진품명품>(2019)을 뒤이어 반년이 흐른 겨울, 본 공연 <Patriotic Insanity>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본 공연과 <신토불이 진품명품>(이하: <진품명품>)은 주제의식과  작업방식에서 어떠한 차이를 가지는가?

사진제공 _ 丙 소사이어티

우선 본 공연에서는 ‘신토(身土)’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 땅 위에 살아가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화두를 던진 <진품명품>과는 주제의 다름이 엿보인다. <진품명품>에서는 비체(abjection)를 연상시키는 키치한 몸덩어리1를 만드는 장면과 같이 국가에 알맞은 몸에 부합하기위해 몸부림치는 송이원, 오수환, 허지우의 정체성이 주제의 핵심이었다. 반면, 본 공연에서는 ‘불이(不二)’에 더욱 관심의 초점이 주어진다. 땅과 애국은 다름이 아니요, 더욱이 광분으로 일치되는 바이다. 두 공연은 작업 방식에서도 상당히 다른 과정을 띈다. <진품명품>에서는 대본의 구성이 공연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았다. 작업 과정에서 대본을 써가며 배우가 실제 인물의 몸을 입었다면, 본 공연에서는 일찍이 완성된 대본으로 배우가 연습에 임했다. 그것은 큰 차이를 주었다고 권형준 배우는 본 공연의 관객과의 대화에서 언급했다. 권형준 배우는 <진품명품> 작업에도 참여한 바이다.2 또한 본 공연에서 두드러지는 연기적 양상은 ‘독백’이다. 특히 송하늘 배우가 맡은 ‘윤희덕’은 모든 등장인물들과 호흡하지 않는 분리 및 단절된 방식의 연기를 선보였다. ‘윤희덕’이 편지를 읽음으로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이야기들이 전개되므로 편지 형식으로부터 발화되는 독백은 눈 여겨 볼만하다. 그렇다면, 병소에서는 왜 편지를 서사의 전달 방식으로 취했을까?

편지 형식에 대해 논하기 전에, 본 공연의 플롯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본 공연은 ‘스티븐스 저격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는 대한제국의 외교문으로서 친일을 했다. 이 때, 샌프란시스코 한인 사회의 공식 암살요원 전영운 의사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는 스티븐스를 총으로 저격을 하려했지만 불발되었고 그 때 다시, 총성 세 발이 들리는데 이는 장인환 의사가 쏜 것이었다. 결국 스티븐스는 저격을 당하고 이후 장인환 의사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는 한인 사회의 공식 요원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전영운, 장인환 의사의 애국심에 감명을 받은 미국인 변호사 나단은 그들의 무료 변론을 맡게 되었고, 전영운 의사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나아가 1급살인으로 기소되었던 장인환 의사 역시 나단 변호사가 애국적 광분(Patriotic Insanity) 이론을 인용한 덕분에 2급 살인으로 경감되었다.3 이런 역사적 실화를 손명규 연출(이하: 손 연출)은 충실히 무대 위에 반영했다.

사진제공 _ 丙 소사이어티

 

다시 편지 형식에 대해 논해본다. 여기에는 손 연출과 드라마터그 송이원(이하: 송 터그) 사이의 소통에서 형식적 고민의 지점이 굳건해진다. 손 연출이 편지 형식을 선택했을 때, 송 터그는 편지에 대해 조언했다. 그리하여 편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손 연출은 더욱 깊이 고찰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본 공연에서 편지가 가진 기능을 아래와 같이 바라본다. 첫 째, 편지는 본 공연의 시대상에 알맞은 소식 전달 방법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감옥에 갇힌 남편 ‘문성효’에 대한 기약 없는 기다림 가운데 ‘윤희덕’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가 편지였을 것이다. 둘 째, 편지에는 다른 어떤 의사소통 수단보다 절실함이 묻어난다. 한번 발화되면 기억 속에 휘발 되어버리는 말과는 다른 질감을 준다. 즉, 한 글자 마다 선택의 신중함이 담긴 편지는 편지지 위에 적힌 마음의 불변성을 강조할 수 있다. 셋 째, 서신 문학의 특징을 활용한다. 편지에는 보낸이와 받는이가 분명하다. 뚜렷한 관계 속에서 보낸이(윤희덕)은 독백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무대 위에 노출시키고 과거와 현재의 이동 또한 자유롭게 진행된다. 위와 같은 편지의 효과들을 병소에서 전략적으로 취함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남편 ‘문성효’가 처한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윤희덕’은 광기 없이 그 편지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광기는 폭발하는 감정으로 드러나지 않고 담담하게 쓰여진 편지를 읊조림에 따라 내면에 침잠하듯 깔린다. 그렇게 그녀의 광기 또한 ‘문성효’의 애국적 광기에 가 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진제공 _ 丙 소사이어티

 

이상으로 병소의 소개에 이어 ‘신토불이’ 연작 <진품명품>과의 비교를 거쳐 ‘윤희덕’의 편지에 담긴 애국적 광기를 살펴보았다. 기실 7m x 26m의 깊이 있는 공간에 대한 실험과 더불어 일제시대 가운데 열렬한 항일운동이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배경에 대한 리뷰를 전개해보는 것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관객과의 대화 가운데에서 손 연출의 ‘편지 형식’에 대한 고민이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모색한 지점이 인상깊었다. 본 공연에서 또 하나 주지 할 만한 사실은 ‘한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원덕 권사 한 인물만으로는 동시대 ‘한국 기독교’의 비판적 성찰의 지점까지 끌어올리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본 공연은 오로지 실제 사건 속의 시대에 천착했고, 문성효와 주변 인물들의 신앙적 배경에 대한 전개가 다소 미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지’라는 형식에 본 공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들을 통합해서 무대화한 것을 상기해볼 때, 또 한번 병소의 병(丙)적인 형식적 실험에 대한 광기(光氣)가 드러나며 다음 신토불이 연작을 기대하게끔 한다.


1.  [리뷰] 국가와 사회에 대항하는 자기 이야기를 통한 ‘퀴어적 전환’을 시도하기 : 丙 소사이어티의 <신토불이 진품명품>, 조혜인, 2019-08-06 https://indienbob.tistory.com/1140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2.  여기서 두 공연의 공통점은 배우 권형준, 송하늘, 유이든이 동일하게 출연한 점이다. 본 공연 <Patriotic Insanity>에서는 그 외 두 명의 배우가 더 출연한다. 모델 일을 했던 하상민 배우는 인스타를 통해 ‘문성효’의 이미지와 알맞은 외모를 가져 섭외 되었고, ‘미국인 변호사’ 역을 맡은 Martin Boswell 배우는 한국에 있는 셰익스피어 극단 소속의 배우다.

3.  丙 소사이어티 페이스북, 2019-11-11, https://www.facebook.com/287928707980992/posts/2502311376542703?vh=e&sfns=mo

필자소개_조혜인

조: 조혜인은 요즘 이렇게 살고있습니다.

혜: 혜화동과 혜화동을 넘어 관객으로서, 학생으로사, 딸로서

인: 인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_ 丙 소사이어티 페이스북

丙 소사이어티 2019 신토불이 연작
Patriotic Insanity : 애국적 광분

2019.11.20(수)-11.24(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42 2층

"Patriotic Insanity : 애국적 광분"
1930년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남편 문성효의 부고를 받은 윤희덕은 고인의 미국 주소록에 적힌 모든 주소들로 편지를 보낸다. 고인이 다녔던 상항감리교회의 권사 양원덕, 고인이 애국지사로 거듭난 저격사건의 원 공식요원이었던 노천백, 고인의 법정에서 무료로 변론을 맡았던 미국인 변호사 넬슨 코놀리, 주소들은 곧 하나하나 구체적인 답장과 얼굴들로 드러나고, 그들은 희덕과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각자가 고인 문성효를 빌미로 서로를 마주했던 과거를 하나 둘 무대로 불러온다.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페리 부두에서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에 의해 거행된 친일(親日) 미국인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재구성한 실화 기반의 작품이다. 살인죄로 기소되었던 장인환 의사가 ‘애국적 광분’으로 미국 법정에서 죄를 경감 받은 것으로 유명한 이 사건에,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자주 회자되는 요즘까지도, 애써 언급되지 않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음을 다년간의 취재를 통해 파악했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에 의해 거행된 최초의 해외 독립투쟁이자 저격인 이 구체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와 정치적 배경들을 두루 제시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국면과의 함께 보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작/연출_손영규
드라마터그_송이원

출연_권형준 송하늘 유이든 하상민 Martin Boswell

조명디자인_서가영
무대디자인_김재란
무대미술_김승희 김주영
무대감독_박진아
무대지원_김정민 정현주 강길우 문태환
하우스테마_안창모
기술지원_서승한
자문_허지우
번역_채푸름

"신토불이 연작"
몸(身)과 땅-공간(土)은 둘(二)이 아니다(不)

‘199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을 거치며 “신토불이” 네 글자는 ‘한국적인 것’ 또는 ‘우리의 것’과 궤를 함께하게 되었고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이기에, 제 땅에서 산출된 것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와 같이 민족-국가주의적 해석이 전면화 되기에 이른다.

丙 소사이어티의 2018-19년도 프로젝트 “신토불이” 연작은 해당 표현이 ‘신체와 공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원 뜻과 달리, ‘우리의 것’과 아닌 것을 적극적으로 구분해내고자 하는 배제적인 의미로만 통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획되어 다양한 신체를 위한 공간을 비집어내고자 한다.

2019년에 이르러 “신토불이” 연작은 규범으로서 강요되는 ‘한국적인 것’, 즉 ‘제 땅에서 산출된 것’과 이에 상응하는 ‘체질’에 대한 질문으로 그 방향성을 좁히게 되었고, 충효(忠孝)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부장주의, 분단으로 인한 반공주의와 군사주의, 새마을운동과 한강의 기적으로 표상되는 경제발전주의 등을 ‘한국적인 것’으로 특징짓게 되었다. 연작의 마지막 프로젝트 <Patriotic Insanity : 애국적 광분>은 위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는 동시에 신앙으로서의 개신교가 국민에게 내재화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묻고, 양자가 자연스레 결합되는 지점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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