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5월 레터] 아트 머스트 고 온?

 

 

아트 머스트 고 온?

 

 

참인 명제 인 줄 알았던 ‘Show must go on.’ 아래 희생 당한 사람들의 존재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뒤, 제가 서성거리던 예술계는 달라졌습니다. 분위기 뿐만 아니라 창작환경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긴 하지만요. 비대면의 예술을 요구하는 재난 상황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수가 염려하는 상황에서 관객과 대면하며 예술을 해야 하는가. 혹은 나의 생계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술을 해야 하는가. 문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준비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긴급하게 짜내고, 모으지 말라는 관객 몇 명과 혹은 나의 작업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영상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 연구 사업도 있었지요. 이 상황에서 어떤 연구는 가치가 있고, 어떤 연구는 가치가 없는지 선정하는 사람들의 어깨는 무거웠을까요. 달라진 환경에서 선정기준으로 무엇을 고려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진출처_춘천마임축제가 지난 4월 25일 춘천 브라운오번가에서 시도 한 거리예술축제의 풍경

* 사회적 거리두기를 반영한 안전하고 기발한 공연형태 및 방역매뉴얼을 고민했던 춘천마임축제는 5월 24일 부터 31일까지 진행 예정이었던 '2020 춘천마임축제'개최 취소를 결정했다. 

 

누군가는 용기 내서 하는 시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안하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그런 상황에서, 만일의 사태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공연단체와 민간단체, 민간극장이 있습니다.(공공극장, 공공미술관 및 국가의 관리를 받는 공공장소는 걱정이 없습니다. 닫아 버리면 되니까요. 앞으로 이런 재난이 터질 때마다 셧다운 하고 국가의 책임 밖으로 시민들을 밀어 낼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집앞 근린 공원을 바라보면 멍해집니다. 문체부가 재정 한 ‘연극의 해’는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집니다. 그들도 당혹스러워 하고 있겠죠. 우울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불가능하네요. 흑흑.

 

코로나19 덕분에(?) 세계의 다양한 공연들을 집에 앉아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30분이 넘는 공연 스트리밍은 끝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스트리밍이 목적이 아니었던 공연들은 왜 이렇게 밋밋한지. 국립극장에서 본 NT Live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말입니다.(고퀄리티의 대형 스크린에 스타들이 출연해서 그랬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땐 대극장의 좌석이 만석이었지요. 관크를 하지 않기 위해 온몸을 웅크리고 공연을 보는 와중에도 어떤 걸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공연 혹은 극장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실제로 확인하는 경험이요. 극장 로비에서의 설레임, 안부 묻기 등도 떠오릅니다. 공연 전후로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기도 하고요. 우리에겐 공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뉴노멀’, ‘뉴리얼리티’라는 단어도 새로 알게 되었고요. 

 

지난 한해도 작업을 하며 정신없이 보냈지만, 오늘을 위한 생계비를 축적하지 못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잘못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예술인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예술의 힘으로 혐오와 불합리함이 만연한 이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하고 있었겠지요…? 의구심에 가득 찬 두 눈이 뚫어지게 우리를 쳐다보는 느낌입니다. 예술은, 우리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일까요.) 예산을 집행하려고 해도 기재부를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없죠. ‘생계도 영위해야 하고, 작업도 해야하고. 시간도 없는데, 존재를 증명하고 설득할 내적 논리를 다듬을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시간. 우리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예술로는 돈을 벌 수 없어요.(무한루프)’. ‘작업할 시간도 부족한데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어디 있나요?' 하지만 어쩌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함께하는 공론장은 넓은 관점에서 우리 생계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레터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방금 치운 거실에 요거트를 쏟고 있는 딸을 보고 있자니, 멀리 삼천포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고 있는 동료가 떠오릅니다. 코로나19가 터졌든, 아니었든 간에 그는 그의 할머니를 돌보았을테지요. 코로나19는 그와 그의 할머니를 더욱 고립시키고, 돌봄의 부담은 가중되었을 것입니다. 

사진출처_ Vera Rubin 의 페이스북 

* "경제는 ‘폐쇄’되지 않았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고, 청소하고, 돌보기를 하고 있다. 단지 경제학자들에게 평가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보통 무급으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

어린이집 운영 중단이 장기화 되며 일을 그만 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해졌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은 이런 종류의 노동을 가시화 하고, 적절한 보상으로 안정화 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묻고 더블로 가’인 것일까요. 의문을 가진 채 5월 레터를 마칩니다. 힘이 나는 이야기를 전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2020년 5월 13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채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