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4. 13:25ㆍFeature
2009년 4월 9일 목요일 맑음 : 연습을 마치고 나오니 달이 떴다
“다들 꿈이 뭐예요?”
“우리가 묻던 질문이었는데……”
작년 한 해 동안 <꿈의 탐험가들>은 바빴다. 꿈을 주제로 공연을 열고, 관객들이 밤낮으로 꾸는 꿈과 가슴에 고이 품은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목요일오후한시는 ‘다들 꿈 꾸시죠?’라고 묻곤 했다. 올해에는 여럿이 청계천에 모여 퍼포먼스와 게릴라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 곳에서 그만 이런 질문을 되돌려 받은 것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되돌려 받은 질문. 묵지근하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마뇨의 제안에 힘입어 목요일오후한시는 목요일 오후 한시마다 퍼포먼스를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홀,늦잠,현수,수경,마뇨가 꾸준히 퍼포먼스 준비회의를 해 왔고 다른 멤버들과 목한시의 공연을 보았던 관객분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2004년 처음 퍼포먼스를 시작했던 때가 다시 떠오른다. 재학중이던 한 학교의 중앙정원에 모여서 ‘짠’ 보여주고 반 쑥스러움 반 뿌듯함의 얼굴로 당당히 사라졌다. 그러고는 쌩뚱맞게 농구코트 벤치나 국기게양대 아래에서 하얀 굴짬뽕을 시켜먹곤 했었다.
지금은 그때가 아기자기하다고 기억하지만, 사실 그때 그 용기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느닷없이 몇몇이 눈이 맞아 거짓말 같은 모임이 결성되더니 진짜 밤을 새가며 즐겁게 회의를 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당탕 달려나와 목요일 오후 한시에 약속한 내용을 퍼포밍했던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물을 마시지를 않나,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지를 않나, 박스로 커다란 달팽이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옷을 벗지를 않나, 스타킹을 얼굴에 뒤집어쓰지를 않나, 춤을 추겠다고 나가서는 얼음이 되어있지를 않나, 우산을 펴고 누워 마스크팩을 하지를 않나, 뱀 부르는 것처럼 피리를 불지를 않나, 죽음을 바라보며 직접 쓴 편지를 낭송하지를 않나…… 학교 사람들은 ‘저런 애들이 학교에 있구나’ 알게 되었고 우리는 점점 더 자신감이 붙어 당당해졌다. 그 과정이 모두 놀이였다.
지금은 보다 시사성이 강한 주제를 가지고 퍼포먼스·게릴라 공연을 하고 있다. 이번 달은 청계천이 주 무대. 청계천을 노래하려는 것이 아니다. 복원이 아닌, 재개발된 청계천에 찾아가 비판적 시선을 흩뿌리고 싶은 것이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극으로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플레이백씨어터를 야외에서 하는 게릴라공연 <말안해도알겠네>의 순서다.
시작 전부터 의견이 분분하다. ‘재개발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청계천이 주제일 수는 있지만 꼭 청계천이 무대일 필요가 있는가’, ‘날이 좋아서 그런지 불쾌하던 이 곳이 좀 참을만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어떡하나’, ‘우리가 사람들에게 충고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사람들은 공격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나’, ‘텔러가 청계천이 좋다며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대로 표현할 건가’,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하면 되지 않나’, ‘팀으로 나왔는데 하나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일단 해보자’, ‘플레이백씨어터를 하다보면 저마다의 색깔이 공연으로 합쳐질 것이다’ 등. 청계천에는 우리의 분분한 의견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슬기 기둥이 있는 광장에서 하류쪽으로 내려갔다. 이상하게 공연을 하러 가는 발걸음들이 꼭 공연 마친 후의 발걸음처럼 조금은 지쳐보인다. 자리를 조금씩 옮겨가며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까페에서 쉬려면 돈이 들지만 지금 이 곳은 날씨도 좋고 돈도 안 들어 좋다’는 남자 두 분, ‘청계천 물살이 너무 빨라서 청둥오리가 헤엄을 치지 못하고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는 여자 두 분,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찾아왔다’는 어느 회사의 홍보팀 사람들, ‘이 아래에 방수재료 깔고 시멘트 깔아 물 흐르게 하는 것’이라며 ‘큰 틀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씀하셨던 근처 회사원 아저씨. 우리는 총 네 가지의 이야기를 들었고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갔다.
청계천에 와 기타치는 사람들 앞에 있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신 분 앞에서는, 그 분은 좋은 뜻에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민감하게 들었다. 환하게 웃으며 솔직한 심정을 말씀해주시는 분들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도 자연스레 풀렸다. 청계천 현재의 모습에 아쉬움을 표한 분 앞에서는 배우들이 한껏 에너지를 펼쳐냈다. 동작이 커지고 목소리가 커지자 자전거를 탄 관리원이 쪼르르 달려왔다.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허가 받았습니까”
“아니요. 안 받았는데요. 거의 끝났어요.”
곁에서 지켜보던 시민 한 분은 ‘이런 걸 무슨 허가를 받아, 그냥 하면 되는거지…’ 우습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신다. 우리는 앞으로도 같은 일이 생기면 ‘거의 끝났다’고 말하고 옮겨 또 하고 옮겨서 또 하자며 실실거렸다.
게릴라공연이 끝나고도 5월에 있을 <매일같이 사춘기> 공연 연습을 위해 프린지스튜디오로 장소를 옮겼다. 홀은 이날 어디쯤에선가 나직하게 목요일오후한시의 미래에 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리고 악사 보노보노는 시간과 젊음,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연기를 하면서 웃음이 터져 장난 같은 몇 초를 노출시키고 텔러에게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는 심정이 되었다. 연습이 끝나고 나서 보노보노는 어제 친구가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과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나보다고 말한다. 현수, 홀, 나는 조용해졌다. 터덜터덜 각자의 집으로 가는 길로 나섰다. 일 년에 몇 번 생길까 말까 하는 목한시의 간단한 술자리가 열렸고, 술이 약한 나는 뒤늦게 취기가 올라 집에 도착해 시끄러운 술주정을 부렸다. 질문을 많이 받은 날이었다.
글 |김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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