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유혹으로 역사를 완성한다?

2009. 4. 10. 07:5407-08' 인디언밥

 악마는 유혹으로 역사를 완성한다?
  • 노이정(연극평론가)
  • 조회수 826 / 2007.09.19

[리뷰] 악마는 유혹으로 역사를 완성한다?

 -고병원성 전염 프로젝트의 <두더지들>



『인간속의 악마』에서 장 디디에 뱅상은 가장 끔찍한 페스트는 ‘권태’라고 말한다. 자극의 결여에서 생겨나는 ‘권태’는 무기력이 아니라 흥분 상태다. 주체는 감각적 결핍에 반응하여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권태에 직면하여 인간은 “부동성에 대한 공포보다는 차라리 멸망과 파괴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악마의 심심풀이 장난”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2007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의 하나로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창무포스트극장에서 공연된 ‘고병원성 전염 프로젝트’의 <두더지들>(홍석진 작, 박동욱 연출)에는 그저 심심풀이로 주위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악마의 화신이 등장한다. 공연의 시작과 함께 자칭 ‘환쟁이’가 등장한다. 그는 “작가는 이 공간을 폐쇄된 지하철 역사라 써놓았지만 사실 여기는 극장이다”라 눙치며 관객을 상대한다. 자신의 흰 캔버스에 “명작”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접근하고 그들을 조종하며 자신의 악의를 실현해간다.


작은 무대에 철근 구조물 두 개 달랑 세워놓고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경계에 있는 배우들이 설익은 연기를 순간순간 드러내는데도 이 연극이 관객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은 바로 이 ‘악마성’의 힘 덕분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한 연극들이 대부분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테크닉에 심취하고 있기에 인간의 연약함과 어두운 면을 응시한 이 연극은 더욱 더 돌출되어 보인다.


‘두더지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도심 속 폐쇄된 지하철 역사에 빈 몸을 누이는 신세가 된 노숙자들이다. 눈이 퇴화해 버린 두더지들처럼 이 ‘도시의 두더지들’ 역시 상징적으로 혹은 실제로 눈이 멀어간다. 맹목적 이기주의의 유혹에 휘말려가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 ‘환쟁이’의 모델이자 노리개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아고가 오델로를 조종하듯, <데블스 애드버킷>에서 알 파치노가 키아누 리브스의 영혼을 잠식해가듯, 이 환쟁이는 사람들 사이의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건을 일으킨다.


무대가 “버려진 지하철역”이라는 점에서, 제목이 <두더지들>이라는 점에서 이 연극은 1990년대에 공연된 76단의 연극 <지피족>(초연 1990, 이주 작・연출)을 연상케 한다. 지하철의 ‘지’에 히피족, 여피족 할 때의 ‘피’를 붙인 ‘지피족’들. 그들은 지하 세계에 머물며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군상들이었다. 말 안 되는 말로 세계를 해체하는 그들은 세상의 아래에 있지만 동시에 세상의 위에 있는 이들이기도 했고 세상 밖에 있는 이들이었다. 세상 밖의 그들에게 내러티브가 있을 수 없어 연극 <지피족>은 내러티브마저 해체해 버렸다.

 

 

<사진제공 : 서울프린지네트워크>

 

그러나 <두더지들>의 인물들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단순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아직도 세상의 질서 속에 속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무대에는 느와르 영화에서처럼 팜므 느와르가 등장하고 후회스런 과거와 암담한 현실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맹목적인 군상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연극은 이들의 욕망의 선을 따라 내러티브를 완성해간다. 속임수와 폭력, 도둑질이 잇따른다.


‘환쟁이’가 보여주는 ‘포스트모던한 권태’와 노숙자들이 지닌 ‘가족주의의 원초적 욕망’은 사실 지금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정신적 증후들이다. 예컨대 3000만원을 모아 음식점을 차리겠다며 하룻밤에 세 사람을 죽인 택시 강도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타인의 생명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한가를 드러낸다. (이 사건은 프린지페스티벌 기간에 홍대 앞에서 일어났다.) 죽음이 너무 쉽지 않은가. 그리고 이 사건을 ‘택시살인 강도 사건’이라 부르기보단 ‘홍대살인사건’이라 부르는 우리의 심리도 무섭지 않은가.


사회 문제는 여전히 많음에도 이제 우리는 거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촌스럽게 여긴다. 병적인 환멸이나 무관심이 그것을 대체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타인의 문제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이기주의가 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은 점점 더 두더지들처럼 퇴화해가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볼 것’이 없어지면 그 권태를 이기기 위해 ‘놀 것’이 부각된다. 이번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공연들도 대부분 놀이와 즐거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두더지들>은 우리 자신의 이 치명적 결핍 상태를 드러낸다. 다만 어린아이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듯이 그렇게.

보충설명

* 이 연극은 9월 5일부터 15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고병원성전염프로젝트 싸이트
http://club.cyworld.com/theatergroup-whan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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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정-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