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린T민하 강연회-내용의 진보성과 형식의 진보성!

2009. 4. 10. 07:5107-08' 인디언밥

트린T민하 강연회-내용의 진보성과 형식의 진보성!

  • 김연호(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
  • 조회수 635 / 2007.08.09

 

 

 

1. 문화예술 영역의 비경계

2. 내용의 진보성, 형식의 진보성  

3. 자신만의 영상 언어 생산


7월 27일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트린T민하 강연회가 진행되었다. 사실, 너무 유명한 작가라 우리는 만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고 긴장했다. 그 전날 잠도 설칠 정도로... 미디어극장 아이공의 첫 개관 기획전으로 5월에 트린T민하 기획전을 진행했다. 주위에서 트린T민하를 개관 첫 기획전으로 왜 기획했는지 물어보곤 했다. 단지 유명해서 한건지, 어떤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이공에서 트린T민하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열망은 오래전부터였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추구하고자 하는 영상과 트린T민하의 영상은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이다.

‘내용의 진보성과 형식의 진보성’을 추구한다는 점.

강연회 때, 그녀는 ‘내용의 진보성이 담긴 작품은 많으나, 그 내용에 맞는 형식의 진보성을 갖고 있는 작품은 드물다. 담고자하는 내용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나 형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지금까지 아이공의 활동이 강연회에서 이렇게 쉽고 간단명료하고 정리된 언어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참 행복했다.

 

트린T민하는 베트남 출신 감독이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여성, 이주, 탈식민이라는 화두를 다루는 활동을 하고 있다. 탈식민주의, 여성주의학자로 대학교에 재직 중이고, 아이공이 하듯, 영화, 미술, 학술 등 경계를 넘나들면서 활동하고 있다. 중요한 지점은 어떤 영역에서 활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언어를 새로 만들고,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네갈에서 찍은 그녀의 첫 작품인 <재집합>은 기존 다큐멘터리 형식에서 벗어난 작품이기 때문에, 거의 1년 넘게 책상서랍 신세로 있었다고 한다. 사회정치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사적 다큐멘터리나 자연 다큐멘터리도 아닌,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이 영화를 소개해주는 영화제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다가 여성들에게 발견이 되어 뉴욕영화제에서 한참 후에 소개가 되었다고 한다. (하하하. 이 지점도 어찌나 아이공 활동이랑 비슷하신지.)


트린T민하의 작품과 활동을 살펴보면,

첫째, 문화예술 영역의 비경계성, 둘째, 내용의 진보성, 형식의 진보성 추구, 셋째, 자신만의 영상 언어 생산 등을 들 수 있겠다. 먼저 문화예술의 비경계성을 논할 때,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단지 각 문화예술의 크로스오버된 상태가 비경계성을 논하는 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과 규격에 또다시 맞추고 있는, 새로운 규격화를 만드는 상황을 초래할 뿐이다. 문화예술의 비경계성은 주체에서 시작된다. 즉, 어떠한 규격과 경계, 형식을 떠나, 기존 영역의 다양한 형식이란 도구에서 주체로서 쓰임을 찾는 것이 비경계성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단지, 무용에서 영상이란 도구를 사용했다는 그 이유가 문화예술의 비경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트린T민하의 작품과 활동은 주체로의 기반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정확한 목소리를 지녔다. 다큐멘터리, 극영화,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저술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보여지고, 관통되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영화, 미술, 저술활동의 경계넘음이 아니라, 각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관철하는 중심을 지녔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것은 형식의 진보성에 기인한다. 한 형식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더라도, 다큐멘터리의 기본 틀에서 에세이, 일기, 철학적 사유, 픽션의 활용 등이 용이한 어울림으로 보여진다. <재집합>, <벌거벗은 공간>, <그녀의 이름은 베트남>, <사차원>에서 이러한 그녀의 형식적 진보성이 돋보인다. 인공적인 음악이 아닌,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고, 영상을 그 소리에 맞춰 편집하는 기법 등은 그녀만의 새로운 글쓰기이다. 또한, 기존 다큐멘터리에서 영상과 내레이션의 주제가 같아야 된다는 관점 역시 해체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영상에 대한 또 다른 부연으로 첨가되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만으로도 한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영상을 보면, 공적 환경에 대한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소리는 개인의 철학적 사유와 사적 글쓰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작품에서 동일한 주제가 두 작품으로 병치되는 새로운 영상 형식이다. 한국에는 아직까지 이러한 양식을 실험한 작품이 없다. 이러한 형식의 진보성은 그녀만의 내용의 진보성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된다. 여성의 관점으로 이주에 관한 탐구,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탈식민주의적 사고는 기존 남성 중심의 획일적인 관점을 거침없이 해체해 나간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항상 논쟁을 불러오니 말이다.


자신만의 영상 언어를 생산한다는 것은 세상의 틀을 새롭게 보고자 하는 주체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기존의 언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를 어떠한 경계 없이 새롭게 개척해나가 한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채에 걸러지지 않고, 흘러나올 수 있다. 1940년대에 활동했던 마야 데렌은 자신의 영상 언어인 필름댄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1940년대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시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존 남성 중심의 주류 영화 시스템에 소속되기보다, 작지만 자신의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토대를 만들었다는 사례가 젊은 작가들에게 용기를 주는 역사가 아닐까 싶다. 트린T민하 역시 젊은 작가에게 화두를 던져주는 작가로 인정받아 마야 데렌상을 받았다.


트린T민하는 올해 56세이다. 그녀의 나이를 알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46세인데 56세로 잘못 안거 아닌가 물어볼 정도로 엄청 앳되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또한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친구처럼 친근하고 따뜻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지금 현재 젊은 작가들은 주류에 편입하고 싶어서 힘들어한다. 그러나 이 주류에 편입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열정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전환하여 예술의 에너지를 마음껏 뿜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