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07:56ㆍ07-08' 인디언밥
- 엄현희(연극평론가)
- 조회수 591 / 2007.09.06
우리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
<미완성 교향곡>
2007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이구동성’에는 할머니 앞에서 해맑게 재롱을 부리거나(<카페 더 로스트>), 도심 속 버려진 쥐 시체와 자기 동일시에 빠지거나(<미키쥐의 죽음>), ‘아버지’를 웃도는 음란함으로 전복을 몽상하는(<도화골음란소녀 청이>), 다양한 소녀들이 있다. <미완성 교향곡>(극단 명륜댁, 원지영 작/연출)도 시력을 잃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녀가 나오는 연극이다.
무대는 그녀의 눈을 따라 만들어졌다. 화분, 화장대, 스탠드 따위들의 소소한 일상의 조각들이 섬세한 펜 터치 자국으로 붙잡혀 있는 그림들은 소녀가 바라봤던 세상 같다. 그 파편들은 나란히 쌓여있는 상자박스들 앞에 붙여진 채로 ‘가볍게’ 재배치되길 기다리는 듯하다. <미완성 교향곡>은 이 상자박스들의 움직임(혹은 변형)의 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시력 잃은 소녀의 정체성 찾기 과정이기도 하다.
시력소녀 외 취업준비생, 스튜디어스 지망생, 워킹홀리데이 여학생, 구제소년, 여배우까지 <미완성 교향곡>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목표에 사로잡혀 있다. 자기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충동들. 재밌는 것은 이 20대의 청춘들이 의미를 찾기 위한 과정, 그 자체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튜디어스, 열기구 등의 ‘비상’을 은유하는 코드의 반복적 사용은 하강이 아닌 상승 방향으로의 과정의 매력을 키운다.
제 삶의 의미 구성하기의 방법론이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이 극이 미력하나마 ‘시간의 흔적’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색깔의 머릿카락이 입다 버렸을지 모를 구제 옷만 입는 소년에게선 그/그녀 개개인의 삶의 시간들과 직접 부딪치고픈 소년(혹은 작가)의 욕망이 느껴지며, 여배우와 취업 준비생이 <자전거>(오태석 작)를 연기하며 각자의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게 되는 대목은 우리의 현대와 연결 지으려는 노력을 드러낸다. <미완성 교향곡>의 정체성 찾기 과정은 타인과 과거와의 쌍방이 주고받는 영향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지점에서 튼튼하다.
사실 이 같은 강점이 극에서 설득력 있게 짜여진 것은 아직 아니다. <미완성 교향곡>은 일상을 통해 우리의 20대의 청춘들의 삶의 리얼리티를 담으려는 시도와 작가가 옳다고 믿는 세상을 표현하려는 노력들이 서로 길항하고 있다. 워킹 홀리데이 여학생의 환상인 캥거루가 무대 안을 촐랑거릴 때, 촌스러운 히피 복장의 경기도의 체 게베라가 통키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를 때, 잠깐의 활력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 불명확해 극이 힘을 받기엔 좀 부족하다. 두 인물 간의 감정적 동일시로 장면을 넘기는 기술도 너무 반복 사용돼 밀도감을 쌓아가기엔 다소 싱겁다.
하지만 제목처럼 미완성에 가까운 이 연극은 그럼에도 한 방향의 고집이 극을 밀고 나가기에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우리의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여야 한다는 자기에 대한 발견이다. 왜 소녀는 시력을 잃었을까. 장님 소녀의 존재는 세상이 볼 만한 것이 전혀 없을 정도로 낡았음을 말하는 것이자, 자기만의 생존의 논리를 새롭게 구성하겠다는 의지의 드러냄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체 게베라가 좀 더 생기 있게 살아있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극의 마지막 무대 안의 상자박스들이 자유롭게 재배열됨으로써 표현된 항시 변화 중인 정체성에 희망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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