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07:49ㆍ07-08' 인디언밥
이라크, 팔레스타인, 그리고 만화가 김보현
- 이성민
- 조회수 760 / 2007.08.05
이라크, 팔레스타인, 그리고 만화가 김보현
김보현은 '분쟁지역전문 만화가'이다. 적어도 데뷔 이후 발표되었거나 진행 중인 작품을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데뷔작 「체크포인트」는 미군 점령하의 이라크를 그리고 있고, 올해 초 단행본으로 발간된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의 소도시 나블루스가 그 배경이다. 그리고 현재는 『나블루스』2권 작업과 별도로 이라크에 파병돼 있는 자이툰 부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이만하면 '분쟁지역전문 만화가'라는 농담 섞인 꼬리표가 달릴 만도 하다.
참신한 소재로 우리만화의 지평을 넓히다
작가 김보현이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처음 주목했던 것은 소재의 참신성이었다. 대한민국의 여성만화가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다룬다는 사실 자체가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수상은 「체크포인트」인데 2차 걸프전 이후 미군 점령하의 미군장병과 이라크 여성 사이에 일어나는 짧은 만남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 그림과 이야기의 전개가 훌륭했지만 완성도가 조금 부족했다." (만화가 이현세, 2004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 심사평)
"김보현의 『팔레스타인(나블루스)』은 소재의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또한 팔레스타인에 직접 취재를 다녀오겠다는 작품 창작 계획도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장르만화제작지원 심사평)
소재의 참신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미덕이다. 대다수의 여성 만화가 학원물과 연애물, 작가의 사변적인 이야기나 판타지에 편중되어있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나블루스』가 잡지에 연재되던 당시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우리 만화에서 드문 소재를 다룬 작품을 볼 수 있어 즐겁다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블루스』는 만화잡지 <허브> 2005년 8월호~2006년 1호까지 연재되었고 잡지의 발행 중단과 함께 연재가 중단되었다. 연재 중단 이후 작업된 분량이 더해져 2007년 1월에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분쟁지역이라는 배경에는 필연적으로 군인과 폭력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대학 졸업작품집에서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만화가로 데뷔하기까지, 그 관심은 다소 피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본질에 대한 고민, 그 안에서 살아가는(혹은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어린 시선을 드러내기보다는 모래바람을 헤치며 사막을 건너가는 군인들의 표피적인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 치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 속의 군인 캐릭터들이 2003년 이라크의 사막이라는 특정한 현실의 배경 속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결여된 판타지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모의 남성 캐릭터를 만나는 즐거움
이렇게 남성 캐릭터들의 '미모'를 표현하는 데 아낌없이 공을 들이는 스타일은 데뷔 이후에도 지속되는데, 이는 독자의 시선을 보다 오래 지면 위에 머물게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김보현 만화의 '미형 남성' 캐릭터들은 순정만화에서 익숙한 '꽃미남'의 이미지보다는 근육이 단단하게 표현된 조각 작품의 이미지에 가깝다.
최근의 인디 만화에는 캐릭터의 외모를 귀엽고 예쁘고 멋지게 그리지 않고 일부러 망가뜨려 그리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러므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인물의 본질과 내면에 보다 집중하게 만들려는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전략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질문 위에 나는 일단 물음표를 남겨둔다. 시각매체인 만화에서 외형이 예쁘지 않은 캐릭터에 대한 독자들의 호감도와 집중도는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보현의 미형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미덕은 독자들이 캐릭터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그것이 벽에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건, 지하 해방운동의 지도자이건, 이중첩자 노릇을 하는 프락치이건, 팔레스타인 꼬마를 향해 조준사격을 하는 이스라엘의 병사이건 간에, 독자들은 각각의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입장에 대해 관심과 인내를 가지고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블루스』와 같이 첨예한 대립의 현장을 그리고 있는 만화에서 때로는 한 쪽의 입장에 이입되고, 때로는 각자의 입장을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형 캐릭터들은 시각적 즐거움, '보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만화로는 미국의 만화가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이 있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에 다녀온 작가 조 사코가 그려낸 일종의 체험기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김보현의 『나블루스』는 놀랍게도 극화의 형식을 띄고 있다. 수많은 인터뷰와 취재, 전문가들의 조언과 자문을 통해서 사실에 기반해 만들어졌지만, 대부분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작가 김보현이 창조해낸 것이다. 팔레스타인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한 젊은 여성 만화가가 발과 손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팔레스타인 만화 『나블루스』. 프랑스의 유명 만화출판사가 완결 후 프랑스에서 출간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자이툰 부대를 소재로 한 작품 <One day in Iraq> 관련 전시(사진:윤혜진)
인간을 관찰하는 차분한 시선, 그 속에 숨어있는 온기
김보현은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의 여성 작가로서는 흔치않은 소재를 다루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저의 성별은 소재 선택과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그림을 통해 무엇을 알리고 보여야겠다고 결정하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늘 동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졌고 추이를 지켜보면서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흔하지 않은 소재였고, 그것에 대해 알아가면서 작품으로 다룰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전 조사를 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들의 열정과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보현은 분쟁지역전문 만화가이다. 밖으로 드러난 프로필과 작품 목록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젠 김보현의 작품 안에 담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해 볼 때도 되었다. 책을 펼치고 그 안에 그려진 서늘한 현실 속에서 한 줌의 온기를 건져내는 일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일 테지만.
보충설명
만화가 김보현은?
* 인하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 경기미술 - 새로운 상상(용인 이영미술관)
* <체크포인트>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 우수상 수상
* <나블루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장르만화제작지원작 선정
* 평화를 위한 난장(서울 마로니에공원)
*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100차 화요캠페인(서울 이스라엘 대사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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