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소통과 윤리를 전제하는 공연, 서커스 몬트리올(Circus Montreal)의 “아브라 서커스(Circo Abra)”

2009. 6. 8. 00:03Review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소통과 윤리를 전제하는 공연, ‘아브라’의 모두가 함께 서커스

서커스 몬트리올(Circus Montreal)의 “아브라 서커스(Circo A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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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대부분의 극들에서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있는 가상의 ‘제4의 벽’은 애초에 상정되지 않았다.

 ‘배우는 우리에게 직접 말한다. 우리의 얼굴과 그의 얼굴이 마주한다.’

 ‘나는 그 원 둘레에서 역시 사정권 안에 있다.’

 ‘이제 우리는 윤리적인 마주치거나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된다’’

 물론 그 잠깐의 환영 같은 실재를 자유롭게 벗어나는 건, 곧 다른 공연으로 옮기거나 하는 선택은 자유에 따른다.


 특히 단체가 아닌 일인으로 공연을 하는 사람은 타인의 손길이 더더욱 필요해진다. 그것이 공연 안에서는 동료가 아닌 마주하는 누군가, 즉 관객에게 의존해야 하게 되는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을지 모른다. 상호관계를 맺는 건 집단화된 움직임을 빌어 조금 더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혼자서 채워 나가야 하는 공연에서 뭔가 붕 뜨는 것 같은 시간은 관객이란 존재가 더 부각되는, 관객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됨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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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이뤄지고 있는 그 공동체 안에 들어가자 벌써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귀가 열리게 된다. ‘이 공연이 제일 재미있는 공연이야! 스타킹에 나왔대.’ 스타킹, SBS 국민 오락 프로그램이다. ‘진짜 나왔나? 나왔을 만도 하지.’ 생각했다. 신기한 공연들을 펼치는 외국 아티스트들이 프로그램 첫 신을 장식하는 것이 포맷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신기한 서커스 묘기는 고도의 집중력과 그전에 수많은 시간의 연습과 노력이 필요함은 잠깐의 동작에서도 곧 포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심미적 가치 이전에 생생한 재미 정도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거리공연 아티스트와 관객이 소통하기까지...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는 것은 공연을 하는 ‘아브라’가 한 어린아이를 불러오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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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는 좀처럼 여느 아이처럼 활발하게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자연스레 그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즉각적으로 취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게 자연스런 수순이라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스틱을 위로 들고 있는 역할이 잠시 맡겨지는 거였고, 그 전에 자기 이름을 말해달라고 했지만 그는 도무지 묵묵부답이었다.


 공연을 전체적으로 간단한 영어로 또박또박 친절하게 대화식의 문법으로 구성해 나가는 공연에서 “나는 아브라입니다.” 하고 마이크를 돌려도, 아이는 이름을 하지 않았고, 아브라가 귀를 가까이 대고 나서 아이가 뭐라고 입을 열었는지 혹은 열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브라 멋대로 밥이라고 소개했다.

 만약 이 정도로 비협조적이었다면, 그는 반응할 의도가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렇게 적당히 둘러대면서 다른 사람을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공연은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브라의 입장이면서 동시에 아이의 위치에 있다. 관람자이지만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는,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개연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니 그 가능성이 있다기보다 선택될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그 우발성의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아이의 선택 전까지는 어쨌든 아이는 관객의 대표로서 존중받는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답답한 감정은 어찌할 수는 없다. ‘우리라면 더 협조적으로 했을 텐데, 다른 아이라면 잘 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는 그냥 계속해서 진행하기로 결정한 듯 했고, 여기서 뭉클함이 일었다. 아이에게 턱시도를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스틱을 똑바로 들게 하고, 거기에 접시를 돌려 얹자 접시는 신기하게도 잘 돌아갔다.

 그러자 반응이 없던 아이는 그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더 세우려고 했고 떨어지지 않는 나름의 요령을 조금씩 익혀가며 그에 적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박수를 받고 인사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말은 없었다. 단지 그와 같은 경험이 나중에 그 자신에게는 말을 건넬지 모른다.

 아이한테는 생각지 못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겠지만, 그것은 사실 아브라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길거리 아티스트로서 그는 매번 어떤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 채 자신에게 떨어진 존재를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존재를 부인하거나 중도에 놓아버릴 수는 없다. 누군가는 선택되어지지만 반면, 그 선택은 필연이 되고 공연의 일부가 되며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 또한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다분히 윤리적이고 일상에서 인연을 맺는 우연성의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과 맞닿아 있다.

 커다란 무대에서 환영을 창조하는, 그리고 커튼콜의 박수 뒤로 사라지는 배우는 방금 전까지의 무대에서 집중된 극적 환영과 반응과 열기에 도취되지만, 관객이 떠나간 자리에는 공허함이 남을 것이다. 관객과 직접 만나고 극장을 그 기다림의 장소로 하는, 배우의 일상은 현실과 가상이 전치되고 가상 뒤의 현실은 무미건조할 삶의 일부일 수도 있다.

 아브라 역시 여느 배우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만남은 그의 직업적인 일일뿐만 아니라 하나의 삶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무대라는 깊이를 지우고서 만나는 직접적인 마주침은 그에게 예술가의 실존적 외로움을 더는 삶에 대한 원동력을 불어 넣어 줄 것이라는 약간의 부러움이 언뜻 일기도 한다.

 더군다나 타지에 들어 온 존재로서의 외로움. 무엇보다 소통은 공연 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혼자서 공연을 하고 가방을 나르고 잠재적 관객을 상정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래서 직접적인 미래의 관객을 만나는 데 따른 하나의 의식적인 절차일지 모른다.

 예술을 하는 고독한 인간의 실존적 외로움, 그리고 절실한 소통의 갈급은 도리어 극에서 소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작품들은 낯설지 않은 타자와의 만남, 그리고 긴밀한 말의 주고받음에 대한 편안함에서부터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곧 그러한 대부분의 극은 소통에 대한, 소통을 위한, 그리고 소통에 의한 ‘윤리적’이라는 전제를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제4의 벽을 지운 그러한 장에서.

<2009안산국제거리극축제>
o 기 간 : 2009년 5월 2일(토)~5일(화), 4일간 , 오후 2시부터 10시
o 장 소 : 안산호수공원 및 광덕로 일대
o 주 최 : 안산시
o 주 관 : (재)안산문화예술의전당

<서커스 몬트리올(Circus Montreal)의 “아브라 서커스(Circo Abra)”>
15년 이상을 전문적으로 공연해 온 서커스 몬트리올의 아브라 서커스는 연극, 코믹, 서커스의 혼합된 장르를 독특하고 큰 묘기들과 재미있는 요술 등의 결합으로 공연하는 작품이다. 젊고 코믹스런 남자가 도착하여 그의 여행 가방을 열어 나무를 세우면 비로소 서커스는 시작된다. 이 공연은 신체 코메디와, 크리스탈 볼 저글링, 빅 발란스 묘기, 관객들과의 체험 등으로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필자소개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분야 자유기고가, 現다원예술 비평풀(daospace.net)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