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4. 17:38ㆍ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첫 번째 기록
글| 강말금
*들어가는 말
나는 이틀 전에 고재경의 마임워크샵 첫 수업을 들었다. 마임을 만나러 갔지만, 고재경을 만나고 왔다. 하긴 이 세상에는 마임이란 것은 없다. 고재경이 있다.
고재경은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다. 그는 인식, 원리, 생성, 존재, 운동에너지, 정지에너지, 작용점 등의 표현을 쓴다. 그는 23년간 마임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단어를 창안한다. 그가 창안한 단어들에는 그가 평생 읽은 책들과 만난 사람들이 종합되어 있는 듯하다.
수업 첫 날, 그는 그 단어들을 우리에게 뿌렸다. 열아홉 번 동안 오해와 이해를 되풀이하게 될 단어들이다. 그것들을 완전히 소화하면, 얼마든지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의 언어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대한 현장 그대로의 것을 살리려고 하겠지만, 나의 오해와 반동과 편애가 안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열아홉 번의 보고서가 인식 업그레이드의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는 첫 번째 수업의 기록이다.
<7:00p.m - 7:20> 오리엔테이션
1.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몸이 몸을 기억하잖아요. 은연중에 얻어지는 게 있어요.
2. 움직임은 동사, 상태는 형용사예요. ‘간다’는 동사, ‘슬프다’는 형용사예요. 어떤 동사 혹은 어떤 형용사인지를 판단하면 바로 움직이세요.
3. 무조건 따라와 주세요. 딴생각하는 순간에 몸은 말을 안 들어요. 왜? 어떻게? 생각하지 마세요.
4. 미리 와서 몸을 푸세요. 무엇보다 공간과 친숙해지기 위해서. 공간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거예요. 연기는 결국 공간을 인식하는 능력이에요.
5. 수업 할 땐 넓게 보세요. 자신을 너무 인식하거나 다른 사람을 테스트하지 마세요.
6. 힘들어도 하려고 하세요. 생각하지 마세요. 단순해져야 되요. 맞고 틀림은 없고 다름이 있는 거예요.
7. 나중에 제 말을 이해하고 나면, 다른 언어를 써도 되요.
<7:20 - 8:00> 두 그룹의 놀이 1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십여 명 남짓한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은 고재경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따라 움직임과 정지를 반복했고 B그룹은 A그룹을 지켜보았다. A그룹은 여러 사람의 에너지/마음/내적 충동/호흡이 공간을 채우면서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그때그때 고재경이 내준 조건에 따라 움직였다.
보폭을 작게, 속도는 빠르게 움직이다가 멈추기
최대한 크게 움직이면서 멈추기
멈추어서 오래 버티면서 호흡을 잡고 있기
막 뛰다가 멈추기
“피었습니다아”의 끝의 “아”에서 멈추기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한 인물로 움직이되, 시장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염두에 두기
즐거움, 슬픔. 사랑스러움을 연기하면서 움직이다 멈추기. 단, 대상을 생각할 것
같은 느낌, 같은 동작에서, 정지하는 순간 가슴만 위로 뽑아보기
가슴을 뽑고 동작을 해보고, 동작하고 나서 가슴을 뽑아 보고, 차이점을 느끼기
B그룹은 개개인을 보면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분위기를 보는 것을 목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넓게 두루뭉실하게 보기
움직이다가 멈춘 사람들을 떼조각상 혹은 한 폭의 그림으로 보기
게임이 십 분쯤 진행되었을 때, 그가 말했다.
“오케이. 지금 봤어요? 이게 호흡이에요. 이게 분위기라는거에요. 공간을 채우는 것. 공통된 마음이에요.”
나는 지켜보는 그룹이었는데, 집중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다가 한 덩어리로 멈추는 순간, 쑥 빨려 들어가게 된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호흡을 잡으세요. 움직이다가 멈추지만, 그러니까 운동에너지가 정지에너지로 변하지만, 에너지 자체는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증폭되어야 해요. 학생들이 교실에서 떠들다가 선생님이 나타나면, 갑자기 조용해지죠? 그 에너지는 강력해요. 우리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되요."
“자, 가슴을 뽑기 위해서 다른 데 힘이 들어가죠? 그게 경직이죠. 우리는 움직임의 효율성/경제성을 위해 몸의 분리를 해야 해요.”
<8:00 - 8:40> 두 그룹의 놀이 2 - 제자리-준비-땅
이번에는 B그룹이 행하고, A그룹이 지켜보았다. 육상경기의 ‘제자리-준비-땅’이다. B그룹은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움직였다.
‘제자리’와 ‘준비’의 호흡의 차이를 인식하기
‘땅’하는 순간 자신의 신체 부위 중 가장 먼저 인식된 부분을 찾기
‘땅’하는 순간 오른발/ 왼발/ 골반 등 한 부위에 힘을 주면서 출발하기
오른발-왼발-골반 등을 순서대로 인식하면서 출발하기
‘준비’의 엎드린 자세에서 어떤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출발하는지 인식하기
A그룹은 특히, ‘제자리-준비’에서 호흡/분위기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중점으로 두고 보았다.
“제자리도 움직이지 않고, 준비도 움직이지 않아요. 그럼 다른 게 뭘까요? 상황/분위기가 달라요. 준비 다음은 땅이니까요. 육상경기에서의 준비를 생각해봐요. TV로 봐도 고요해요.”
“최초의 움직임이 준비예요.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점을 생각해봐요. 움직이지 않아요. 하지만 이게 생성의 시작, 존재감이에요.”
“우리는 육상경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의 매력, 활력을 표현하는 거죠. 진짜 뛴다고 생각하세요. 움직임의 원리는 내적충동이에요. 호흡 안에 내 몸을 집어넣으세요.”
<8:50 - 9:40> 중력과 표현
고재경이 앞에 서고, 우리는 다시 한 그룹으로 헤쳐 모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했는데, 뭉뚱그려 ‘중력’이라고 표현해본다.
한쪽 다리 들고 있기. 아픈 것을 느끼기. 골반을 빼거나 넣으면서 버티기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 공간 속에 임의의 점을 생성하고, 선을 그리며 떨어지기
똑같은 선으로 무겁게. 무거운 마음만 가지고.
똑같은 선으로 가볍게.
똑같은 선으로 술 취한 사람으로 움직이기. 취한 연기를 해서는 안 됨.
기분 좋게 술 취한 사람으로 움직이기
떠오른다를 하되, 바닥에서 멀어지는 기분으로 하기.
막대기 되기
돌아가면서 막대기가 된 친구들 보기
중력은 움직임의 큰 원리이다. 그는 한쪽 다리를 들고 있게 하면서, 내가 중력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우리의 ‘낙엽’ 마임은 공간 속에 임의의 점을 찍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것은 정지지만, 최초의 움직임이다. 이 낙엽은 중력에 의해 줄기에서 분리되지만, 바람 등 다른 방향의 작용점을 가진 힘들의 방해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정작 하는 사람들은
“머리 쓰지 마시고, 느낌만 갖고 계세요. 몸에 신경 쓰지 마시고, 위에서 아래만 느끼세요.”
해야 한다.
“그 선 그대로. 나는 술 먹었어. 취한 척하면 안돼요. 정서가 아니에요. 서 있으려고 하는 나와, 서 있는 것을 막는 그놈, 중력하고 싸우는 거예요.”
“그냥 떠오른다 하지 말고, 바닥에 임의의 점을 찍어요. 바닥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어때요? 좀 다르죠?”
“넓은 수평 공간에 막대기가 섰다, 고 생각해봐요. 이게 배우의 스탠딩이에요. 수평선에 수직의 등대가 서 있으면, 등대만 뚜렷이 보이듯이.”
“배우의 스탠딩. 작용점이 두 군데예요. 누르고 뜨고. 이건 몸의 분리가 되어야 되겠죠? 다음 시간에는 몸의 분리를 할 거예요.”
<9:40 -10:00> 마무리
<10:00 - > 나의 느낌
고재경은 진짜 말이 많았다. 그는 처음에 우리에게 전제를 깔았다. 오늘 한 말들이 결국 되풀이될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그는 쉴 새 없이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건너뛰었다. 개념들이 나타났다 잡히고 잡혔다가 사라졌다. 용어들은 철학과 과학과 미술과 음악의 개념들이다.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인생의 예술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재경씨에게 부탁이 있다. 나는 오늘 학자 고재경을 만난 것만 같다. 놀이가 아니라 수업을 한 것만 같다. 우리는 가뜩이나 놀 줄 모르는 가련한 어른들인데. 나는 요즘 아이들이 뛰면서 자기도 모르게 배우듯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내 것이 아닌 언어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나의 언어’를 말하는 고재경씨를 만나 반갑지만, 다음 시간에는 몸을 좀 굴려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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