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지내요-첫 번째 이야기

2010. 3. 26. 14:37Feature




회원님이 촬영한 사이좋게 지내요.

                                                                             







사이가 괴산으로 간 까닭


 

|사이

 







오늘 연탄이 배달되었고, 이것으로 시골에서 맞는 네 번째 겨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창고에 쌓인 연탄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군요. 이것이 연탄의 제일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풍경을 만들어주는 것 말이죠.

제 이름은 사이입니다. 충북 괴산에 살고 있죠. 저는 시골에 살면서 노래도 부르고, 애도 보고, 아내랑 다투기도 하면서 지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가 시골에 살면서 노래를 부르니까 사람들이 저보고 ‘귀농가수’라고들 하는데, 사실 저는 ‘귀농’했다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농사를 짓기 위해 시골에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가수가 되려고 온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물론 시골에 살려면, 그것도 씀씀이를 줄이면서 대체로 건전하게 살려면, 농사를 지어야만 하긴 해도 그것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뭐 어쨌든 이런 얼치기 백수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건 아마도 시골 삶에 대한 다양한 그림들을 보여주고 싶으신 편집자들의 뜻이겠지요.

이곳 괴산에 온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전에는 하동에 잠깐 있었고, 경남 산청에는 작년에 지은 우리 집이 있습니다. 산청 집은 워낙 산골이고 마을과도 떨어진데다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다른 살만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괴산으로 오게 된 것이죠. 산청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고, 원래 고향은 부산입니다. 복잡하지요?




제가 부산에 살다가 서울로 간 것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무지 좋아했고, 군대에 있으면서 음악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서 음악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불가능해보였고, 가능하고 싶으면 ‘돈이 되는’ 음악을 해야만 했죠. 그런데 사실 그것도 불가능했어요. 그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요. 그래서 돈은 다른 일을 해서 벌고, 음악은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하자. 그게 제일 좋은 방법 이었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국립극장 기관실을 거쳐 <작은책>이라는 잡지에서 일을 할 때입니다.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 중이던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하는 모임이었던 ‘투쟁과 밥’에서 만난 친구들과 길거리밴드를 시작했죠. 이 밴드는 엉터리이긴 했어도 신났습니다. 신이 나서 여기저기 겁나게 돌아다녔어요. 홍대, 철거촌, 새만금, 천성산, 평택, 심지어 유럽까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가서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밴드의 한 친구가 석유문명에 관한 외국 다큐멘터리를 보여줬는데, 그때 저는 커다란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뎅! 영화 한 편이 내 삶을 바꿔 버린 순간이었어요.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지어준 집에서,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이 키우고 만든 음식을 먹고 있었을 뿐이죠. 다른 사람이 무엇 하나라도 저한테 해주질 않으면 살 수 없는 껍데기뿐인 삶.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제가 거대한 톱니바퀴에 속한 부속품처럼 느껴졌고, 서울은 끝없이 소비하라고 유혹하는 메피스토 같았습니다. 젠장, 언젠가 이놈의 서울을 떠나고 말테다!

그렇다고 곧바로 시골에 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냥 막연히 언젠가는 가야지, 이러고 있을 때 아내를 만났어요. 저랑 생각이 비슷한 동지를 만나니까 갑자기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여섯 달 뒤에 오십만 원짜리 중고트럭에 짐을 싣고 함께 경남 산청으로 내려갔지요.



우리는 빌린 집에 딸린 삼백여 평의 묵은 밭을 삽과 괭이로 조금씩 뒤집어서, 먹고 싶은 것들을 심었습니다. 비닐이나 비료는 쓰지 않았고, 거름도 거의 안 해서 수확량은 언제나 마을에서 꼴찌였죠. 겨울에는 산림청에서 간벌하느라 베어놓은 나무와, 마을 어른들이 둥치를 얻고 버린 잔가지를 주워서 불을 뗐습니다. 불을 뗄 때마다 아궁이 솥에 물을 조금씩 데워서 썼는데, 따듯한 물 한 대야로 세수하고, 머리 감고, 발을 닦고, 빨래까지 다 했어요. 변소는 닭장이었던 곳을 천으로 대충 둘러서 안에 오줌통과 똥통을 놓은 잿간을 만들어 썼습니다. 밤에는 촛불에 흔들리는 그림자에 놀라기도 했고요.

저는 산청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도시에서 생긴 습관이 참 버리기 어렵다는 것과, 불편한 것은 끝이 있지만 편한 것은 끝이 없다는 것.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 휴대폰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과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똑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궁이와 구들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지를 배웠고, 엔진 톱이 없어도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인디언처럼 냇가에서 물을 길어 밥을 짓고 전기도 없이 사는 것은 딱 한 달 동안만 재미있다는 것을 느꼈고요. 사백오십만 원으로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또 배웠습니다. 자연이 무섭다는 것. 사람이 사랑받지 못하고 너무 외로우면 이상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과, 그래서 시골에 살기 위해서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죠. 그리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어떤 사상이나 논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긍정’이라는 것도 배웠는데, 마음속에 희미하게 맴돌던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준 것이 또 한 편의 영화였습니다.



영화 <into the wild>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존슨 맥켄들레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자신의 이름을 알렉산더 슈퍼트램프(Alexander supertramp)로 바꾸고 가족과 돈과 사회로부터 떠나 길 위로 나갑니다. 길은 서쪽으로 나 있고, 이 ‘빛나는 방랑자’의 목적지는 알래스카이며, 그가 원하는 것은 진실과 자유입니다. 스물 세 살의 그는 자신만만했지만 아직 좀 어렸고, 야생에서 인간은 너무 나약했죠. 결국 알렉스는 남쪽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알레스카에서 허무하게 죽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캘리포니아 해변과 그랜드 캐넌의 협곡과 알레스카의 광대한 자연과 함께, 이 영화에서 반짝이는 또 하나의 불빛은 여행 도중에 만나게 되는 슈퍼 방랑자의 따듯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완전한 자유를 찾아 도끼도 없이 알레스카로 가겠다는 이 근본주의자를 뜯어말리고 싶지만, 함께 술을 마시고 같이 노래하고 아픈 기억을 나누면서 조용히 응원하죠.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사랑(이 단어가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자!) 때문입니다.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감독 숀 팬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사랑은 강합니다. 사랑은 긍정을 향한 욕망이며 슈퍼 트램프를 알레스카로 이끈, 제대로 지속가능한 에너지이죠. 인간에게 위대한 점이 있다면 지식이나 힘, 시스템 따위가 아니라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인간은 초라하고 어리석고 투덜대기만 하는 잡식동물에 불과하죠.



산청에 멀쩡한 집을 놔두고 괴산으로 옮긴 까닭이 바로 좀 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싶어서입니다. 처음 산청으로 갈 때만 해도 ‘인간이 없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그리고 처음보다 좀 더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저도 시골에서 사는 까닭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잘 살면 좋겠지만 우선은 내가 행복해야만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가 있겠지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적당한 농사일도 하고 싶고, 제 아들 느티가 좋아하는 아빠가 되고 싶고, 아내한테 미움 받지 않는 남편이 되고 싶고, 조금 부족하거나 가볍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것 같네요. 




 





20세기 소년 사이의 첫 앨범 아방가르드中
첫번째 트랙 아방가르드 개론 제 1장

사람들은 도대체 내 말을 믿지 않아
돈 없어도 시골에서 팔자가 늘어진 걸
잘먹고 잘놀고 잘쉬고 전기세 천 육백 원
텔레비젼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없어도 좋아


농사로 돈을 벌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그냥 줄이고 덜 쓰고 가난해도 괜찮을걸
아이가 태어나도 학교에는 안 보낼 거야
나랑 같이 밭일하고 밴드하고 또 산책하고

책이나 읽겠지
책이나 읽겠지
책이나 읽겠지
책이나 읽겠지

사람들은 도대체 내 말을 믿지 않아
학교가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걸

21세기는 과소비 과인구 과속도
이스터섬 모아이석상들이 비웃는다
우주와 깨달음을 찾아 헤매는 이여
자유와 고독을 노래하는 방랑자여
그대는 석유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나
그대는 진정 쓸모있는 남편인가
집에가서 물어봐
아내한테 물어봐
집에가서 물어봐
여쭤봐

그대는 쓸모있는 남편인가
그대는 쓸모있는 아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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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홍대 주변에서 살던 사이는 지금 충북 괴산 신기학교에 살고 있다.
직업은 슈퍼백수로 전국을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며 아들 느티도 돌보며 산다.

'슈퍼백수'

'유랑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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