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지내요-두 번째 이야기

2010. 3. 26. 14:38Feature



회원님이 촬영한 사이좋게 지내요.
                                                                             








지금은 괴산시대






|사이







1. 술


그저께가 마감이었는데 아직도 글은 못 쓰고 아, 또 술을 마셔버렸군요! 오늘은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저녁에 침뜸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언제나 유쾌하신 신기학교 큰누나 정연주 선생님께서 홍초 술을 만들어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또 우리 예쁜 은정이랑 한나가 막 영화촬영을 끝내고 놀러왔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집을 나와 신기학교에서 열나게 도끼질만 하다가 떠났던 대성이가 이젠 짐까지 싸들고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지요. 거기다가 그동안 제 간을 상하게 만든 조 선생이 “너는 그저께도 뺐고 어제도 뺐는데, 글을 못 쓰지 않았느냐. 오늘 술을 안 마신다고 해도 절대 못 쓸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술자리에 와서 사람들과 정을 나누라!” 면서 저주가 담긴 협박을 또 날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글이 잘 안 되는 까닭을 알아냈습니다. 술 마시러 가기 바로 전까지 쓰고 있던 이야기는 ‘종말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였는데 주제가 너무 크고 관념적이었던 거죠. 바로 옆에 널려있는 싱싱하고 따듯한 이야기들을 놔두고 멀리만 내다봤던 저를 반성하며 생각했습니다. 역시, 술 마시러 오기를 잘했군!




2. 침과 뜸

지난 한달 동안 침뜸 공부를 했습니다. 괴산귀농지원센터에서 후원하고 이 지역 유기농생산공동체인 솔뫼농장에서 장소를 제공해준 덕에 아주 싼 값에 배울 수 있었죠. 시골에 내려오려고 마음먹을 때부터 몸에 대한 공부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배우러 갔었지만 단 하루 만에 포기하고 저한테 넘기더군요. 첫날부터 선생님께서 “겁먹지 말고 조지라!”는 말과 함께 침으로 막 쑤셔대는 것을 보고는 기가 질려, 자기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한자를 전혀 모르는데다가 오장육부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저한테는 어려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옛날 사람들이 우리 몸과 우주를 이해했던 지혜는 정말 놀랍고 흥미로웠습니다. 느티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고생하고 있을 때는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곳에 침을 직접 놓아보기도 했죠. 침 때문인지는 몰라도 느티가 좋아져서 다행이었지만 제 몸이 아닌 다른 사람 몸에 놓아본 첫 경험이 두 살배기 느티였으니, 너무 용감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만큼 침과 뜸이 안전하고 효과가 좋다는 걸 눈으로 보면서 배웠으니까요.




3. 느티


아는 분께서 신기학교 근처에 훌륭한 빈 집이 있다고 해서 아내랑 한번 가보려고 했습니다. 괴산에는 귀농자가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빈 집을 구하기가 참 어려운데 아무 조건 없이 살고 싶은 만큼 살아도 되고, 하나도 손 댈 게 없는 집이라면 아주 좋은 조건이었죠. 하지만 결국 가보지 않았습니다. 공연이다 마감이다 하면서 이리저리 미룬 탓도 있겠지만, 사람이 사는 데는 좋은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궁이가 있고 방이 두 개 있으며 마음 놓고 큰 소리로 싸울 수 있는 집도 좋지만, 신기학교 안에 사는 것은 우리 식구한테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됩니다. 부부사이를 생각해도 그렇고, 심심하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느티를 위해서는 이만한 환경이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난번에 서울에 다녀왔을 때 대성이가 휴대폰으로 찍은 느티 동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느티가 부엌난로에 넣으려고 쪼개놓은 나무를 주워서 하나씩 쌓고 있었어요. 느티가 원래 무얼 쌓거나 옮기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다음 순간 빵 터졌습니다. 나무 쪼가리를 쌓던 느티가 옆에 있던 부지깽이를 들더니 갑자기 쌓아놓은 나무를 향해 내려치는 게 아닙니까. 어른들이 도끼질 하던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거였지요. 어찌나 귀엽던지! 느티를 키우면서 부모가 아이를 야단칠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내 아이 성격이 지랄 같다면 먼저 내 성격부터 살펴봐야 해요. 그리고 내 주변을 함께 살펴보면 그 안에 이미 내 아이 모습이 있습니다.

느티는 늘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니까 자연스럽게 일을 도우려는(적어도 따라 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부모가 하는 일을 같이 하지 않을까요? 느티는 또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고 어울려 이야기하고 즐겁게 노래하면서 노는 것도 보고 자랍니다. 가끔은 제가 공연하는 곳에도 데려가기 때문에 이 녀석은 놀 줄 아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지나봐야 아는 거지만 적어도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도시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크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4. 노래의 날개 위에

제가 신기학교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늘 바쁘지만 저는 게을러요. 신기학교 선생님들은 아주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데 저는 한 번도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번 ‘신기 짧은 학교’에서 아내가 부엌을 도왔고, 저는 아침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노래의 날개 위에’ 시간을 맡았습니다. 저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지루하지 않게 잡아두는 일이 어려웠어요. 지난밤에 인터넷을 뒤져 동요를 찾아 다음날 아침에 “오늘 이 노래 배워보자”고 하면 그거 다 아는 거라면서 시큰둥해 하고는 했습니다. 노래를 시작해도 아이들은 서로 장난치거나 구석에 누워있는 아이들이 많았죠. 그런데 어쩌다가 제 노래 <냉동만두>를 들려주니까 아이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노래를 가르쳐 주니까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흥얼거리기도 하고, 저한테 와서 가사에 나오는 ‘밥 딜런’이 뭐냐고 물어오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다음 날 다시 최악의 시간을 맞았습니다. 아이들은 ‘전혀 집중 하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고, 저는 시작하고 15분 만에 “오늘 기분 나빠서 그만 할래.” 힘없이 외치며 방을 뛰쳐나왔죠. 완패였습니다. 아, 저놈들을 어떻게 이기지? 변소 옆에서 그날따라 유난히 독하던 담배를 피우며 복수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죠. 아이들이 재밌어할 노래가 이렇게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저녁에 1절 가사와 멜로디를 만든 다음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노래 <썰매타기>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무지 좋아했어요. 우리들만을 위한 노래라는 게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냉동만두>와 <썰매타기>로 무장한 저는 승승장구했죠. 우리는 가사를 3절까지 만들었고 마친보람잔치(졸업식)때 <냉동만두>와 함께 부모님들 앞에서 <썰매타기>를 불렀습니다.

아, 이 날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셔야만 했어요! 신기학교 극장이 떠나가듯 울리는 아이들 목소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을 담아 신나게 부르는 노래는 아픈 상처를 가진 어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날 목 선생이 울었고, 소영 씨랑 애란 씨가 울었고, 여태 한 번도 우는 걸 본 적이 없다는 재찬 이까지 울었습니다. 조 선생은 자기가 최근 10년 동안 봤던 음악 공연 가운데 최고였다고 했습니다. 느티는 형과 누나들을 보면서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추었고요.





 
한때 홍대 주변에서 살던 사이는 지금 충북 괴산 신기학교에 살고 있다.
직업은 슈퍼백수로 전국을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며 아들 느티도 돌보며 산다.

'슈퍼백수'

'유랑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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