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그놈이 그놈> "그 연극이 그 연극"


 


“그 연극이 그 연극”

<그놈이 그놈>




글 │정진삼
 




1.

여자 셋, 남자 셋, 합이 여섯인 배우는 벽 사이를 통과하자마자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하여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철저하게 계산된 움직임, 의상까지 완전히 뒤바뀐 캐릭터, 중첩되는 상황의 아이러니 등등은 ‘움직임’ 전문 집단이 공을 들인 작품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여관집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모텔의 실질적 주인 노릇을 하는 며느리, 느끼한 춤 선생과 그에게 흠뻑 빠진 여관집 딸, 국회의원과 유명 여배우 정부, 강도, 강도 애인 점자, 다방의 여자 종업원, 기자, 경찰.

방과 방으로만 가득한 파라다이스 모텔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누군가를 쫓고, 누군가는 쫓기는 상황을 연출해 낸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과 캐릭터의 신출귀몰한 ‘역할놀이’에 주안점을 둔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그놈이 그놈>이 바로 ‘그’ 연극이다.  


기본적으로 작품에서 설정된 ‘변신’ 이라는 테마는 그 자체로 시각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며, 또한 짧음에도 극적인 내러티브를 포함하고 있다. 즉, 이미지와 텍스트가 절묘하게 얽히는 압축된 순간(시공간)의 ‘표현’ 인 것이다. 따라서 연극적인 ‘변신 ; 몸을 바꾸는 것 ; 역할 창조’는, [현실 : 인간 / 연극 : 역할]이라는 배우의 변화 과정은, 그 자체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재미와 쾌감을 가져다준다. 이른바, 이것이 ‘연극성’ 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며, 진지한 연극을 할 때에도 ‘논다’라는 표현이 가능한 게 이러한 연극성이 전제로 되어 있는 연유다. ‘연극성’ 은 극적인 논리와 공연의 룰을 기반으로 한다. 모두 ‘무대’ 라는 특별한 공간 속에서 행위자와 수용자가 어떻게 유희를 이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전작, <휴먼 코메디>에서 ‘눈물과 애틋함’이, 그리고 <보이첵>에서 ‘삭막함과 냉소’가 유발되는 것은, 무대 위의 신체언어가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적, 정서적 거리를 자유자재로 좁혔다, 넓혔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언어’가 없어도, 감각적인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앞선 두 작품과는 다르게 <그놈이 그놈>은 소통의 난점을 보인다. 브레히트와 재빠른 변신이 가져다주는 연극성, 신체 변화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도 아쉬운 웃음과 미미한 공감에 머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2. 

등장인물은 많다. 그러나 개성은 없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은 ‘전형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된 듯하다. 파라다이스 모텔을 꾸리는 3대의 가족과 전혀 한 시공간에 모일 것 같지 않은 국회의원과 강도가 등장한다. 사뭇 과장스럽다. 물론 황당무계한 설정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유희를 거듭하는 이 연극의 기본 골격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인물들은 판에 박은 듯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는 단순한 목적으로만 존재했다. 관객의 입장에선 이 소동은 반복되며, 어떤 해결의 경로를 가지리라는 것이 눈에 선하다. 실제로도 그렇게 흘러가니 소동이 길어질수록 ‘반복’ 은 관극의 부담으로 가중된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사회 풍자의 노래는 생뚱맞기 그지없다. 웃고, 공감하고,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는 과정까지는 험난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은 말놀이까지 벌인다. 자잘한 웃음의 코드는 넘치지만, 딱히 웃자니 약하고, 넘어가기엔 애매하다.

차라리 눈길이 가는 부분은 전화기를 바로 놓지 않으면, 이에 대해 예민함을 보이는 캐릭터의 모습에서다. 이러한 디테일한 부분에서 현대인의 강박증이 공감이 가고, 웃음이 절로 터진다. 한편, 극중에서 인물이 너무 빠르게 소환되어, 외적인 변신은 이루었으되, 심리가 정돈되지 않아 의도적으로 다중적으로 섞여 나오는 캐릭터의 모습에서 관객은 미소를 짓는다. 현대 일상 속에서의 실패한 역할놀이 속의 자신을 발견해서일까. 더없이 절실한 공감은 바로 이런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결국, 파라다이스 모텔이라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성적인 발랄함 혹은 은밀함은 손녀와 춤선생, 국회의원과 정부라는 빤한 도식으로 흘러가고, ‘관계 맺기’와 ‘상대 바꾸기’의 아슬아슬한 의도는 희석되고 만다. 진부한 설정에 대한 우문(愚問)일지도 모르겠지만, 국회의원과 정을 나누는 연예인이 과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그 비판의 초점은 권력인가, 돈인가? 허상인가 실상인가? 추악한 실체인가? 후에 등장하는 기획사의 큰언니는 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렇다면 돈에 꼼짝 못하는 ‘인간’이 문제인가? 인간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면 이 연극이 ‘거울’로서 관객들을 진실하게 비쳐주고 있는가? 관객들은 무대 위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또한 풍자의 놀이에 즐거운 동참이 가능한가?


이처럼, 극중에서 제시된 전형성의 의도는 역설적으로 많은 반문을 가능케 한다. 단순한 국회의원 말고는 없는지, 춤 선생들은 저렇게 느끼하기만 한지, 할아버지, 아버지 등등이 속물적인 남성으로만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아줌마들은 그렇게나 억척스러운지, 기자들은 저렇게 무능하거나 돈을 밝히는지 등등.

이러한 진부함에 대한 저항은 관극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된다. 인물들은 ‘전형성’ 이라는 이름으로 전경화되어 있지만, 딱히 공감이 갈만큼 깊이 있는, 혹은 구체적인 자기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전형성이라는 전략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주제 설정에 다가가고 있지만, 섬세하지 못한 접근은 결국 이 작품을 “그 연극이 그 연극”으로 만들고 만다. 뻔한 인물들이 벌이는 뻔한 설정은, 어떠한 빠름과 음악의 사용도 이유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3. 

모텔 ‘파라다이스’는 부패한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압축적 제시, 한마디로 ‘풍자’를 의도하였다. 그 인물들 역시 ‘그놈이 그놈’ 이다. 돈 앞에서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놈이 그놈이고, 똑바로 정신 차려 보지 않으면 정말 십 수명의 배우들이 등장한 것 같은, 그러나 그놈이 그놈 같은 ‘착시’를 가져다주는 연극이다.

그러나 현대 관객들은 ‘속도’와 ‘착시’에 그리 무력하지 않다. 이미 상당한 멀티미디어에 노출된 관객들은 변신과 역할놀이를 이미 직/각접적인 일상 안에서 체득하고 있다. 따라서 연극성의 주안점은 ‘빠른’ 변신의 성공에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변신을 통해서 전하려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비판적으로 발휘되는 연극성은 오히려 ‘연극’ 을 시대에 뒤떨어지는 장르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조금은 생뚱맞지만 그래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극단이기에, 이러한 기대 섞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해 생각할 ‘무엇’이 있었을까?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을까? 가상의 상황이나마 권력과 물신주의를 향해 울분을 토하고,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에 대해서 근본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을까? 이런 것들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연극에 대한 과도한 환상인가?




그런 점에서 이 연극은 미리 프로그램에서도 밝혔지만, 그리고 예상도 되지만, 훨씬 더 신나는 장면을 대미에 마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은 씁쓸한 듯한 ‘풍자송’ 을 부르고 나서, 연기 변신의 과정을 공개한다. 감춰진 세트를 밀어두고, 1인이 어떻게 3역으로 ‘변신’ 했는지, 그 절묘한 순간을 ‘까놓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신체훈련과 타이밍의 조합을 생생히 목격하게 해준다. 2초도 안 되는 시간, 배우들은 다른 배우들의 도움으로 의상과 목소리, 신체 변화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배우들의 변신에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경탄으로 답한다. 이는 배우들이 변신하는 순간에서의 최선의 ‘노력’과 변신 자체에서 오는 ‘쾌감’에 보내는 박수이리라. 2초간의 단순한 눈속임이 공개되어, 찬사를 이끌어 낸다면, 그 순간에서 오는 배우들의 진실함이야말로 오히려 새로운 연극성이자 이 연극의 진정한 핵심은 아닐까.

우리 안에 몇 가지 질문들이 불쑥 불쑥 솟아오른다. 과연 연극안의 연극성은 늘 옳은가? 브레히트는 늘 맞는가? 풍자는 늘 좋은 것인가? 언어를 대신한 신체는 언제나 타당한가? 그놈이 왜 맨날 그놈인가? 왜 우리는 변신해야 하는가? 언제나 옳다고 믿는 관객님들이 도리어 이러한 어리석은 질문에 현답으로 응해주시길 바란다. 연극 과연 만세? ...






그놈이 그놈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임도완 작/연출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2010. 6. 24~2010. 7. 25


부끄러운 진실을 은폐하려는 19명의 부조리한 인물들이 폐쇄된 모텔에서 벌이는 풍자극
배우는 무대에서, 관객은 변신하는 배우를 쫓는 추격극


서울 근교 모텔에 숨어들어간 은행강도를 잡기 위해 열혈형사는 불철주야로 뛰어다니지만 강도는 경찰서장과 둘도 없는 친구이다. 월세를 받기 위해 방문한 건물주인 박여사가 살해되면서 범인을 찾기 위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한편 이 모텔은 치정에 얽힌 정치가와 여배우가 찾아오고, 그것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 미성년자인 다방레지와 말 못할 사이인 할아버지, 제비 같은 남자에게 반해 춤바람이 난 백수 딸 등 숨길 것 많은 인간 군상들의 집합소. 쫓기고 쫓는 추격전 속에서 부끄러운 진실을 은폐하려는 19인의 인물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기막힌 해프닝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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