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3월 레터] 예술(人)과 일반(人), 그 아슬아슬한 유희를 위하여

2012. 3. 7. 21:27Letter


예술(人)과 일반(人), 그 아슬아슬한 유희를 위하여


 [공연 “콘탁트호프”, 사진(위) = Laszlo Szito, 사진(아래) = Ursula Kaufmann]


탄츠테아터의 장을 열었던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는 사람의 몸을 움직여 춤추게 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콘탁트호프(Kontakthof)>라는 1978년 안무작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무대화했습니다. 65세 이상의 아마추어 무용수들과 한 번, 춤이 뭔지도 모르는 10대 청소년들과 한 번이었지요. 그것은 단순히 기존에 만들어진 동작들을 익혀 반복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길어 올린 삶과 시선의 힘으로 스스로의 몸을 움직여 위대한 안무를 새로이 완성시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마이너스16(Minus16)>이란 작품에서는 중절모에 까만 정장 차림의 무용수들이 목소리와 의자를 동반한 압도적인 군무를 추다가, 이내 풀어져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곁들이며 솔로를 선보이고, 마지막엔 관객들을 무대로 초청해 함께 경쾌한 무도회를 벌입니다. 각 부분의 매듭이 연결되고 풀릴 때마다 예술과 실제의 경계 위에서 무용수와 관객은 가면을 바꿔가며 아슬아슬한 유희를 펼쳤으며, 공연은 긴장을 풀어헤친 유쾌함 속에서도 시선을 잡아끄는 치밀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너와 내가 함께 춤을 춘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애잔한 슬픔도 사그라지지 않았고요.

사실상 관객 또는 일상이라는 주제는 예술에게 무한한 자유가 허락된 이래로 이미 예견된 종착지였습니다. 예술은 일상을 흡입하거나 일상으로 번져가며, 예술인과 일반인의 정체성은 은밀하고도 공공연하게 뒤섞이지요. 그에 따라 수많은 동시대 공연예술은 다양한 종류의 참여를 시도하고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특별히, 어찌 보면 지극히 고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위의 두 사례들을 끌어온 것은, 일상을 향해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거기서 관객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이 오늘날의 예술에 있어 과연 얼마만큼 치열한가를 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단순히 배우가 관객에게 우스갯소리로 말을 거는 연극의 한 순간을 생각해 보아도, 관객을 공연의 질서 속으로 끌어들이는 그 순간 그 관객 안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관객이 다시 공연의 질서로부터 빠져나와 객석의 현실로 되돌아가는 순간까지 완전히 책임짐으로써 그 긴장을 하나의 의미로 갈무리해주는 공연이 오늘날 과연 몇이나 될는지요. 참여를 진정한 참여로서 매듭지어주고, 그로써 그 순간의 참여가 전체 공연에서 담당하게 될 역할 부여 및 의미화를 외면하지 않고 완수할 줄 아는, 그런 치열함과 철저함이 그립습니다.

또 가령 무대 위의 예술인을 보면서 일반인인 관객이 일상의 감각을 체험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할 때, 그것 또한 사실상 매우 여러 겹의 매만짐을 전제로 하는 일입니다. 어떤 때는 가장 일상적인 몸짓으로부터 따온 철저한 안무가 필요할 것이고, 또 어떤 때는 가장 정교한 무용으로부터 내비치는 일상의 거친 호흡이 요청되겠지요. 요컨대 예술적 정서와 일상적 정서의 교차, 공감과 거리두기의 교차, 그러한 경계들의 넘나듦은 단순히 ‘관객을 무대로’ 또는 ‘일상을 예술의 주제로’ 라는 표제나 포즈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단순히 포즈만 취할 뿐 관객이나 일상을 다시 팽개쳐 버린다면 그런 예술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는 진정한 난장을 벌일 수도, 아슬아슬한 경계놀이를 즐길 수도 없을 테니까요.

따라서 말하자면 각 작품에 따라 예술(人)과 일반(人)이 만나게 되는 지점에 관한 일종의 ‘참여의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진대,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어떤 의미에서 “사심없을” 것인지가 문제이지 않겠는지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챙겨보진 못했지만, 안무가 안은미의 최근작 <사심없는 땐스>의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오늘날, 과연 모두가 앞다투어 사심없는 땐스를 추겠노라 포즈를 취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시대에, 친애하는 예술가들이여, 저는 감히 그 사심의 깊이가 궁금합니다.

2012년 3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
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글_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인디언 사회초년생. 공연보는 미학도. 야구보다 가슴뛰는 연극을 고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