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12:31ㆍ07-08' 인디언밥
- 전기송
- 조회수 712 / 2008.03.19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연극인들에게 <햄릿>은 정말 인기 있는 소재인가보다. 2008년이 시작된 지 겨우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햄릿> 관련 작품만 벌써 여러 편이다. 1월에 <햄릿>은 빈 무대에 배우들만으로 만들어낸 박근형 연출, 극단 골목길의 작품을 필두로 시작되었고, 2월에는 작년 11월 초연을 통해 호평 받았던 <뮤지컬 햄릿>이 시즌2라는 이름으로 그 뒤를 이었다. 3월에도 <NABIS 햄릿>과 <테러리스트 햄릿>이 공연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리뷰의 주인공인 <Play with Hamlet>이 있다.
공연 전 받아본 프로그램 겸 티켓에서 얻어낸 정보에 의하면, 이번 공연은 <Play with Hamlet>의 ‘3탄’이란다. 2007년 3월 대학로 우리극장에서 Ⅰ, 8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Ⅱ에 이어 세 번째로 ‘햄릿을 만나고’, ‘햄릿과 함께’ 놀았던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연출자인 박선희를 비롯하여 5명의 배우들, 그리고 조연출 겸 기록을 맡은 이까지 총 일곱 명의 멤버들은 한 달 남짓의 연습 기간 동안 <햄릿>을 순전히 자기들 마음대로 읽고 해석하고 조각내고 해체해서 <햄릿>과는 크게 다른 물건을 만들어냈다.
‘안티위계질서, 실시간 즉흥놀이, 장시간 커뮤니케이션, 무한경계 상상력, 문화/기억/경험 콘텐츠 재활용, 무명스타시스템, 저비용 무수입 제작’.
독특하고 흥미로워 보이는 이런 단어들이 이 공연 작업을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뭔가 참 솔깃하게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책 없다는 생각도 든다.
‘Ⅲ’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리즈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앞의 이야기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Ⅰ은 <햄릿> 공연을 준비하는 친구들 간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범인을 찾는 가운데 드러나는 그들 간의 진실을 다룬 작품이었고, Ⅱ는 <햄릿>을 준비하는 배우들 간의 이야기인 점은 같았지만, 살인사건이 아닌 주인공이 빠져서 공연 취소 위기에 몰린 남은 배우들끼리 ‘햄릿’을 만들어가는 내용을 다루었다. 그렇다면 <햄릿>을 가지고 놀았던 두 번의 경험 이후, 이들의 공연은 어떻게 변했을까?
영화감독을 꿈꾸는 석호, 사진작가를 꿈꾸는 태훈,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송희, 스튜어디스인 진아, 배달 일을 하며 자신이 사실은 ‘햄릿’이라고 믿고 있는 도원, 그리고 독립영화제작자 필재는 ‘절친한’ 고교동창생이다. 사건은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필재가 잠시 귀국했을 때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필재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다섯 친구들은 모두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조금씩 어둡고 거칠었던 그들의 과거사가 드러난다. 극은 경찰 조사를 통해 나온 각자의 진술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과거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의 과거가 밝혀질수록 다섯 명 모두에게 충분한 살해 동기가 있음이 나타나고, 사건은 점점 미스테리 추리극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잠깐. <햄릿>은 어디로 갔을까? <햄릿>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진행되는 친구들 간의 갈등 속에서 자신이 ‘햄릿’이라고 믿는 도원이의 상상을 통해 나타난다. 현실 속의 갈등이 도원이의 상상과 합쳐지면서 친구들은 레어티즈, 클로디어스, 거트루드, 오필리어, 호레이쇼가 되어 햄릿의 복수극에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현실과 과거, 그리고 상상의 공간을 이동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검정색 큐브 다섯 개 뿐이다. 큐브의 조합과 조명 변화로 이루어내는 공간 이동은 그것만으로 독특하고 참신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스피디한 진행으로 깔끔하고 적절하게 이루어졌다. 더불어 <햄릿>으로 들어갈 때 사용된 도구는 바로 철가방인데, 조명과 함께 칼로 변하는 철가방의 활용은 상당한 재미를 주는 부분이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조금씩 풀어나가면서 모두에게 혐의점을 둘 수 있게 하다가 결말 부분에서 그냥 한 명으로 몰아간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햄릿>과의 어울림 역시 아쉬운 부분 중의 하나였다. 현실에서의 인물들의 상황과 <햄릿>에서의 복수의 상황을 묶어보려는 시도는 뭔가 단단히 결합되지 않는, 조금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모습이었다.
친구들 간의 갈등과 복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Ⅲ는 Ⅰ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선 두 번에 걸친 즉흥 작업 경험 덕분인지 -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 Ⅰ에 비해 ‘즉흥극’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구성이 탄탄해지고 극이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Ⅰ은 이야기 전개 자체도 훨씬 거칠었고 배우들도 즉흥극이라는 제한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어색해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었는데, 이번 공연은 배우들이 어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상황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연출자와의 대화를 통해 이런 느낌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즉흥이 공연에까지 이어지느냐 연습 과정에서만 활용되느냐의 차이였다. Ⅰ은 공연까지도 즉흥으로 시도되었으나 이번 Ⅲ에는 즉흥을 통한 공동창작 과정을 거쳤을 뿐, 공연으로 올라간 것은 충분히 만들어진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Ⅰ을 보았던 경험 때문에 Ⅲ 역시 즉흥극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연을 보았던 것의 결과인 듯싶다.
<Play With Hamlet>은 앞에서 언급한 다른 ‘햄릿’들과는 많이 다르다. 결과적으로 이 공연에서 ‘햄릿’은 조금 ‘덜’ 중요하다. <햄릿>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결과로 나온 공연에서 <햄릿>은 그저 부수적인 부분으로 밀려난다. <햄릿>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완전 다른 이야기 -친구들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미스테리 추리극- 로 완결된 즉흥 과정은 충분히 재미있었고, 그 시도 역시 해볼 만 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제목에서의 <~ Hamlet> 보다는 <Play with~ >가 이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이 집단의 이름도 ‘Play with’라고 한다)
이들의 <Play with~ >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일단 올 여름 프린지 페스티벌을 겨냥하여 네 번째 <Play with Hamlet>을 생각하고 있단다. 이들의 <햄릿> 시리즈가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지, 그리고 과연 몇 번의 변주가 더 이어질 지 기대해본다.
보충설명
'플레이위드 Play with'는 연출가 박선희를 대표로 홍영주, 이기쁨, 김태훈, 정도원, 전석호, 임송희, 강진아 로 구성되어 있는 연극팀이다.팀내 수평적인 관계망을 바탕으로 20대의 감성을 끌어내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차기작으로 올해 8월에 선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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