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헤다의 몸 _ 헤다가블러

2012. 11. 1. 11:35Review

 

 

헤다의 몸 

 _ 극단 성북동비둘기 < 헤다 가블러 > 

 

리경

 

 

포털 검색창에 “헤다 가블러”를 두드리면 많은 블로그와 뉴스, 까페가 검색된다. 검색된 내용을 보자면, 최근 배우 이혜영의 출연으로 주목받은 명동예술극장 공연 <헤다 가블러>에 관한 기사와 리뷰가 압도적이다. 간간히 작가 헨리 입센의 관한 내용이나 연기입시학원의 헤다 가블러 연기 지도 등도 눈에 띈다. 페이지를 넘겨가며 검색된 글의 내용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 이미지를 만드는 반복되는 단어가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욕망, 여성, 주체, 불만, 좌절, 파멸.

 

검색창을 보다보면 희곡이나 공연을 접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대강의 스토리 라인의 감을 잡기는 어렵지 않다. 한 여성이 자신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행하기 위해 주체성을 가지려다가 결국에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는 스토리 구조에 귀속된다. 동시에 여배우의 카리스마 연기와 그녀의 인생이 추락하는 장면이 기대되기도 한다. 매년 연기대상에 헤로인으로 등장하는 방송 드라마에 악녀 캐릭터가 접목되기도 하고, 얼핏 플로베르의 마담보바르나 토머스 하디의 테스가 스치기도 한다.

 

성북동비둘기의 <헤다 가블러>공연은 앞으로 어떤 단어들의 조합으로 기사와 리뷰가 쓰일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앞에 적힌 검색어들로 리뷰를 적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은 다른 시각이나 관점을 가지려는 노력을 한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 공연 자체가 위에 열거한 검색어들과는 다른 단어들, 오히려 반대 편에 있는 단어들을 향해 열려있기 때문이다.

 

관객입장과 동시에 무대는 실험실이 된다. 수술실을 연상케 하는 네모난 하얀 형광등, 그 아래 산파 의자에 앉은 여자, 그 뒤에 놓인 긴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적는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이 단어는 공연소개에서 발췌했다)가 보인다. 실험자는 곧 여자에게 다가와 수건으로 그녀를 닦는다. 머리를 이리저리 옮기고 입을 벌려본다. 구석구석 닦는데 시간을 꽤 보내는데, 그러다보니 관객의 시선이 그 행위에 그만큼 오래 머물게 된다. 관객에게  '실험자가 여자를 닦는다'는 정보전달 이상의 어떤 감정이 발생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산파의자 위 여자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없다. 식물인간 상태와 같다.  관객은 산파의자에 앉은 여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위로 들린 의자, 무릎을 살짝 덮는 치마, 시옷자의 맨다리를 한 여자를 지속적으로 보고 있자니 야릇함, 남사스러움 등의 감정을 불러온다. 나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 관객은 베스트 좌석이라는 중앙 앞자리에서 앉아있다가 몇 자리 건너 가장자리로 이동한다. 보는 이에게 민망함과 어색함을 감당하도록 하는 여자의 이 상태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다른 실험자들이 들어온다. 그들은 위로 조명이 들어오는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는다. 하얀 형광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춘다. 차트를 넘겨가며 실험자들끼리 수군거리더니 한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그녀를 부른다. 마이크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건조하고 폭력적이다. “헤다, 헤다 가블러. 가블러 장군의 딸. 이제는 테스만 박사의 부인 헤다 테스만.” 산파의자 위 그녀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헤다 가블러. 혹은 헤다 테스만. 그녀는 깨어나 대답한다.

 

실험자들은 번갈아가면서 헤다에게 사건이나 정황을 물으며 그녀를 심리적으로 해부한다. 동시에 각자는 헤다의 주변인물로 앞 무대에 등장해 연기한다. 처음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 실험자가 헤다의 남편 테스만과 테스만의 고모 역할로 나와 상황을 연출하고, 헤다는 이 상황을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둘은 싫어하는 내색을 하는 그녀에게 실내화를 신기고 모자를 씌우고는, 앞 무대에서 실험 테이블로 돌아가며 다시 실험자가 된다(실험자 역할 연기를 한다). 이후 큰 키에 중년 남자 실험자가 헤다에게 다가와 브라크 판사 역할을 하며 그녀의 몸을 더듬고, 헤다는 격렬한 공포와 혐오의 몸짓을 내보인다. 또 다른 남자와 여자 실험자는 헤다의 옛 연인이자 남편의 교수 임용 경쟁자인 뢰브보르그와 그의 현재의 아내 테아가 되어 유모차에 자신들의 작품을 싣고 헤다의 주변을 뱅뱅 돈다. 그녀는 질투와 분노에 찬 눈으로 그들을 응시한다. 그리고 남편을 통해 자신의 손에 들어온 뢰브보르그의 원고를 묶인 끈에서 슬쩍 손을 빼 자신의 엉덩이 아래에 감추는데, 실험자들은 관심이 없고 관객만이 이 행위를 지켜본다.  

 

 

헤다의 상태를 공감한다기보다는 객체로 대하며 대답을 강제하는 실험자의 정체성과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헤다로 남아주기를 요구하는 헤다 주변인물들의 정체성은 헤다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억압한다는 면에서 일치한다. 그래서 헤다의 출산을 실행하기 위해 주변인물을 연기한 실험자들이 그녀를 둘러싸 붙잡고 그녀를 농락하던 브라크 역의 중년 남자 실험자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갈 때, 그녀가 느낄 공포와 수치심의 정도는 치솟는다.

 

헤다 가블러의 줄거리를 모르거나 희곡, 공연을 접한 경험이 없는 관객이라면 극의 초반,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구현하지 않는 이번 공연에 혼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연출가가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어느 순간 관객이 그것을 같이 포기하여 엉성한 상태로 비워 둘 때, 이제 남는 것은 ‘헤다의 처지’이다. 그녀의 스토리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스토리로 설명되어지기보다 그녀의 묶인 몸 자체와 실험자가 헤다의 주변인물로 앞 무대에 들고 나는 패턴이 강화되면서 강렬한 인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손 발 하나 까딱하기 어렵게 묶인 그녀의 몸, 주변인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굴욕을 견디는 몸, 그 고통을 표현하는 몸, 그리고 자그만 틈새로 자유를 향해 꿈틀거리는 몸. 구속당한 몸과 해방되지 못한, 헤다의 몸이 기억된다.

 

극단 성북동비둘기 <헤다 가블러>는 입센의 희곡에서처럼 헤다가 이틀간 무엇을 하는가보다는, 주변인물들이 헤다에게 무엇을 하는가에 주목한다. 바꿔 말하면 헤다가 그들에게 어떻게 당하는가이다. 그래서 기존 검색어들이 <헤다 가블러>를 욕망하고 불만스럽고 좌절하는 헤다로 수식했다면, 나는 극단 성북동비둘기 <헤다 가블러>에게 구속당하고, 억압되고, 요구받는, 지극히 수동적인 의미의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기존 수식어는 헤다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욕망하는 헤다가 운명에 의해 파멸하는, 즉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헤다를 그린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수동적으로 당하는 헤다의 상태가 철저하게 드러남으로써 그녀를 웅크린 폭탄같이 곧 터질 것 같은 존재로 인식시킨다. 매여있는 헤다의 몸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스러지는 헤다’는 ‘곧 터질듯 이글거리는 헤다’로 부활한다.

 

이로써 김현탁 연출의 <헤다 가블러>는 한 여성의 가슴 아픈 스토리로서 슬픈 감정을 소비하는 것으로 마감되지 않고, 한 인간의 처절한 어떤 상태로 남아 쓸쓸하고 찝찝하게 지속적으로 관객의 몸에서 운동할 수 있게 된다.

 

헤다의 처지를 지금/여기의 여성에 대입해본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녀와 얼마나 떨어진 위치에 있을까. 딸, 아내, 며느리, 여학생, 여배우, 여직원, 여성 XX인. 한 인간이기 전에 남성의 반대 성으로서 존재하며, 산파의자와 같은 이데올로기와 제도의 틀 속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여성이라는 물리적 성이 사회 안에서 특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려 구속과 요구와 강제에 무감해진 상태에 놓인 건 아닐까. 한 사람의 삶을 가슴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관찰하는 듯한 주변의 수많은 시선에 노출된 채 억압받고 있는 건 아닐까. 가블러와 테스만, 심지어 헤다라는 이름조차 잊어버린 날을 살아보면 어떨까. 

 

묶인 헤다가 힘써 자신의 몸을 의자 밑으로 내려 자궁 밖으로 ‘총’을 내민다. 그 총으로 뢰브보르그는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듣는다. 그리고 헤다는 자신을 심판하는 목소리에 두려움에 차 떤다. 그녀는 왜 총을 잉태했을까.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헤다가 혼란에 빠진 사이에도 그녀는 홀로 묶여있고, 실험은 계속된다.  

 

 

photo 1,2,3 by pippifatal  / photo 4 from http://club.cyworld.com/bee2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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