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4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2012. 11. 28. 03:04Review

 

제4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 무대륙

"어느덧, 바란다" 

 

글_성지은

 

어느덧 한국에서도 ‘독립출판물’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명색이 잡지인데 광고는 하나도 없고 파격적인 형식에 독특한 글과 그림들이 가득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에서, 이제는 종류도 다양해져 자기 관심사에 맞게 골라볼 수 있는, 잡지(혹은 출판물?)의 한 종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독립출판물을 볼 수 있는 곳도 많아졌는데, 서울에는 가장 유명한 상수동의 ‘유어마인드’ 서점을 비롯해서 삼청동의 ‘아트선재센터’, 통의동의 ‘가가린’ 등이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4년 전부터 유어마인드가 주최한 독립출판물 페어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열리고 있다. 2, 3회는 신사동의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열렸었고, 올해에는 합정동에 새로 문을 연 무대륙에서 11월 17, 18일 이틀간 열렸다. 같은 달 3일에 있었던 또 다른 독립출판물 페어인 <모이다전>에 이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찾아가보았다.

 

 

행사가 열린 ‘무대륙’의 이름이 처음이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억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차장 골목의 끝 부분에 있었던 작은 카페 ‘무대륙’이 바로 이 ‘무대륙’의 전신이다. 가끔 공연도 하고 문화행사도 열던 무대륙의 사장님은 이후 상수동 근처에서 술집을 하다 다시 지금의 ‘무대륙’을 열었다. 카페였던 곳은 이번에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지하는 작은 공연장, 1층은 카페, 2층은 작업실이다. 카페는 더 넓어지고 쾌적해져서 이전의 무대륙 보다는 더 다양한 문화행사를 품을 수 있을 듯 했다. 과연 오픈 이후 계속해서 다양한 문화 공연 및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언리미티드 에디션> 바로 전 주에는 <레코드페어>가 열렸다.

무대륙을 찾아가는 길은 조금 복잡했다. 합정역에서 상수역 방면으로 걷다가 골목으로 몇 번 꺾어 들어갔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왠지 범상치 않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모두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문화행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뚜렷한 성향이나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그들 덕분에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금은 떨쳐버리고 걸었다.

무대륙 내부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주최측에서는 원래 40여팀을 받기로 했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70팀을 선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삼 언리미티드 에디션, 그리고 독립출판물의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촘촘히 놓여 있는 탁자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독립출판인들, 그리고 구경하는 데 열중한 사람들이 보였다.

 

 

이 많은 독립출판물들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대략 몇 가지 종류로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2, 3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때부터 눈에 띄었던, 시작한 지 꽤 오래되어 어느 정도 탄탄한 잡지들이 보였다. 헤드에이크, 원피스, 싱클레어 등이다. <헤드에이크>는 매 호마다 일정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글이나 그림 등을 싣는다. 그 첫 호의 질문이 “졸업 후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과감하면서 정말 골치 아프게 만드는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피스 매거진>은 일상적인 글이나 그림보다는 주로 예술을 다룬다. 그렇다고 머리 아프고 난해한 예술보다는, 젊은 작가들이나 참신한 작업들을 편안하게 보여주어서 예술이 좀 더 쉬운 것이 되도록 만들고자 한다. 예술이 주제인 만큼, 다채로운 색과 다양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싱클레어>는 벌써 12년이나 된 왕고참이다. 2000년 홍대 앞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기 시작했다. 편집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함께 잡지를 만들어간다. 이렇게 어느 정도 연차(?)가 된 잡지들은 파격 할인 등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헤드에이크>는 3주년이 되었다고 과월호들을 할인해주더라. 이런 모습들에 독립출판물들의 세월이 묻어나왔다.

 

 

두 번째로는 길종상가, 자립음악생산조합, 미나리랜드 등 요즈음 흥하고 있는 문화운동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력(?)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들이 한 가지 장르에 묶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길종상가>는 한남동에 위치한 목공소이자 가구집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박길종’이라는 사람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거쳐 가고 여러 작업을 하는 곳이다. 책도 만들고, 달력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고, 공연도 준비한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 헬리콥터레코즈, 컬리솔 레코즈와 함께 나왔다. 말 그대로, 자립적으로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조합이다. 이 사람들은 당연히 출판물이 아닌 음반을 팔았다. 이곳에서 역시 요즘 흥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을 샀다. <미나리랜드> 역시 다양한 대중문화예술을 즐기는 저예산 독립단체이다. 미나리랜드 역시 앨범을 팔았다. 이처럼 이들 세력들은 하나의 가치관, 또는 생활방식에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즐거운 일들을 벌이고 있다. 독립출판물과 마찬가지로 이런 움직임이 앞으로 또 어떻게 클지 기대가 된다.

 

 

세 번째는 순수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초선영, 그냥순두부, 라라&고양이삼촌 등 여러 작가 및 작가집단들이 모였다. <초선영>은 글과 그림을 함께 이용해서 내면의 이야기를, 작가의 말을 빌자면 내면초상화로 풀어놓는다. 그 내면은 작가 자신의 내면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내면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수많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냈다. <그냥순두부>는 ‘순두부’라는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그린 일러스트집, 또는 동화책이다. <고양이삼촌>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로,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 이러한 순수 작가들의 작업은 ‘잡지’로 묶이기보다는 ‘독립출판물’로 묶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는 요즘의 독립출판계에서 ‘잡지’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독립출판물 뿐만 아니라 출판사나 디자이너 잡지 등 전문인들의 출판물도 눈에 띄었다. ‘독립’ 출판물의 경계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이러한 전문 잡지들도 마이너한 독자들을 가지고 있으니 독립출판물로 분류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그래픽 전문 잡지인 <GRAPHIC>, 디자인 전문 잡지인 <CA>, 갤러리와 함께 출판을 하고 있는 <워크룸 프레스> 등도 독립출판이라 할 수 있겠다. <GRAPHIC>과 <CA>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인지도도 높은 만큼, 많은 호수를 전시한 부스가 눈에 띄었다. <워크룸 프레스>는 미술 관련의 다소 전문적인 책들도 출판하고 있는데, 책의 편집이나 내용 등이 기존의 상업출판물계와는 달라 전문성과 더불어 독립출판물의 다양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 외에 출판물이 아닌 ‘물건’을 전시,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데이모닝 선샤인>, <파머스파티>, <PLAIN VILLA> 등 여러 ‘브랜드’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파는 물건은 주로 문구류였지만 뿐만 아니라 가방, 사과 등 그 모양과 내용은 다양했다. 이런 모습들에서는 독립출판과 독립예술 혹은 독립디자이너, 브랜드의 차이점이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는 독립출판물 전시, 판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행사도 준비되었다. 우선 일본의 독립출판물인 <Zine's Mate>가 참가해서 아이디어와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출판물을 뽐냈다. 그리고 판매 부스 외에 출판물들을 모아 놓아 자유로이 읽어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Zine's Mate>의 책들은 잡지라기보다는 작품집에 가까웠는데, 한 두 개의 얼마 안 되는 선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내는 그림이 들어 있었다.

 

 

그 외에 강연, 영상회, 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시간이 맞는 강연을 들어보았다. 현재 미술평론가, 특히 디자인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 평론가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임근준씨의 강연이었다. 주제는 디자인과 언어를 이용한 작가들의 작업이었다. 지하의 공연장에서 진행된 강연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 있을 공간마저 없을 정도였다. 서구 사상계에서 디자인, 또는 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로부터 시작한 강연 내용은 20년대 중반 서구에 활동한 플럭서스Fluxus의 작업으로 넘어갔다. 재미있었던 것은, 지금 한국의 독립출판물들이 보여주는 많은 형식들, 그리고 내용들이 거의 모두 이미 플럭서스의 작업들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을 이용한 단상들, 명령들, 그로부터 발전한 체계 없는 글과 그림들, 잡지의 종이 포장, 상자 포장, 참신해 보이는 디자인들까지. 독립출판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지금, 그 역사적 과거를 짚어본 강연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잡지들을 한 자리에 모은 <제4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살펴보았다. 그곳에 있었던 시간은 두 시간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70여개의 부스들을 돌아보고 강연까지 듣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더욱 아쉬웠던 점은, 많은 부스들을 찬찬히 돌아볼 만한 공간적 여유도 부족했다는 점이다. 지난 페어들이 열렸던 플래툰 쿤스트할레에 비해 엄청 작아진 공간에 더욱 더 인지도가 높아진 출판물들을 전시하기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다닐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졌고, 들고 온 커피를 쏟는 사고가 발생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부스를 찾지 못하고 구경도 못하기도 했다.

이런 흥행은 아마도 현재 독립출판물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점일 것이다. 다채로운 독립출판물들 덕분에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물들이 하나둘씩 보이는 만큼, 앞으로는 어떤 재미있는 출판물이 나올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런 기대에 책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했다. 하지만 동시에, 70여종이나 되는 독립출판계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들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의 독립출판계를 짚어봄으로써 이 거대한 흐름에 쉼표를 만들어준다. 그럼으로써, 어떤 방향으로든, 물꼬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 물길이 다른 무언가에 잠식당하지 않고, 여러 갈래로 힘차게 또는 잔잔히, 맑게 또는 서로 어울려 흐르기를 바란다.

 

 글_성지은

 소개_삶은 춤추듯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각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