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양손프로젝트의 <김동인 단편선 - 마음의 오류>

2014. 4. 2. 02:53Review

 

진실을 발견하는 마음의 오류, 존재를 비추는 윤리

양손프로젝트의 <김동인 단편선 - 마음의 오류>

 

글_박다솔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이 얼마나 모순된 인간인지를 스스로 증명한다. 나에게는 허용되었던 것들이 타인에게는 용납되지 않고 비난의 대상이 될 때, 이를테면 무단횡단이나 새치기 같은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비윤리적 행동을 포함하여 연애나 사회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이기심 같은 것으로. 거짓말 하거나 핑계 대는 당신(타자)을 비난하면서 나(자아)의 거짓과 핑계에는 끝끝내 당위성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이것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것 혹은 그 인정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 또한 인간의 비틀어진 마음 상태일 것이다. 데칼코마니로 나란히 펼쳐진 당신과 나의 모습에서 당신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당신이 나를 비추는 거울의 현상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오로지 맞은편에 선 당신의 모습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꼬집어 바라본다. 그 마음의 비틀어짐, 끝내 바로 세울 수 없는 이기심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이야기가 나의 것이 아닐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양손프로젝트의 <김동인 단편선 - 마음의 오류>는 김동인의 소설 중 이러한 일련의 주제를 드러내는 소설 네 편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모순(마음의 오류)을 직면하는 상황과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애처롭고 안쓰러운, 그렇기에 바라보기에 우스꽝스럽고 익살맞은 인간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문학에서 소설이 행하는 일은 세계를 확대경으로 바라보고 그 세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사회적 규범과 금기를 위협적으로 공격해나가는 것, 그리하여 인물이 무언가를 선택하도록 하고 그로 인해 진실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이다. 진실은 인물이나 사회, 세계의 오류를 통해 발견된다. 균열과 오작동이 불러일으키는 혼돈과 혼란이 결국에는 진실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김동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인 '윤리'에 대한 주제의식은 사회적 규범과 금기에 균열을 일으킴과 동시에 그 윤리를 모순적으로 대하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발가락이 닮았다』는 성매매를 일삼다가 그만 불임이 된 남자가 운 좋게 결혼을 하였는데 그의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상태를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던 남자는 이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결국 아이를 낳게 된다. 후에 아이를 품에 안고 소설의 화자인 의사에게 “나와 발가락이 닮았네.”라고 말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의사가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라고 말하며 등 돌려 앉으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스스로 비윤리적 행동을 일삼았던 남자는 역설적으로 비윤리적 행동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로 인해 일상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지만 그에 대항하거나 대치하지 않고 상태를 체념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작품처럼, 양손프로젝트는 김동인의 여러 작품 중 ‘마음의 오류’라는 주제를 각각 『사진과 편지』, 『태형』, 『K박사의 연구』, 『감자』에서 포착하여 순서대로 엮었다.

 

 

소설가 김동인이 ‘예술을 위해서라면 범죄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인물의 일그러진 윤리가 주로 다뤄지고 그 윤리를 바로잡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사진과 편지』, 『태형』, 『K박사의 연구』, 『감자』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며 이야기 전개 또한 비슷한 양상을 띤다. 『태형』은 한 인간의 이기심이 자신보다 나약한 인간을 죽음의 경계까지 몰아가는 상황을 보여주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비윤리적인 상황을 그린다. 『감자』는 빈민굴에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복녀가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고, 남편은 이를 알면서도 침묵하고 복녀는 점점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끝내 파멸하는 이야기이다. 『태형』과 『감자』는 각각의 사건으로 인물의 비도덕성을 드러낸다. 개인의 궁핍한 상황과 사회체제 안에서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이기심이 도덕성에 반기를 들게 하는 것이다. 반면, 미남자 L과 유부녀 혜경이 연애를 하는 이야기인 『사진과 편지』와 박사의 인분(人糞)을 이용한 식료품 실험에 구역질을 일으키는 C조수의 이야기를 다룬 『K박사의 연구』는 인간의 모순된 심리를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서 드러낸다. 각각의 사건을 겪는 인물들은 자신의 모순된 언행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과 결코 다르지 않은 상대방의 행동을 비난한다. 그 순간, 자아(주체)는 다른 이의 모습(모순)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네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마음의 오류’가 진실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이며, 그 오류는 보편적 윤리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양손프로젝트가 소설의 텍스트를 이용해 ‘소설의 연극성’을 발견해나가는 방법은 매우 연극적인 장치를 통해서이다. 소설은 하나의 문장으로 상황과 시간, 장소, 그리고 인물의 상태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다. 양손프로젝트는 이런 소설의 특성을 이용해 화자의 진술을 해설자의 역할로 활용한다. 배우는 소설의 관점에 따라 화자와 등장인물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그 예로, 『사진과 편지』에서 양종욱은 소설 속 화자로 유부녀 혜경의 상태를 설명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도 하며 동시에 L군 스스로가 되기도 한다. 양조아(혜경 役)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한 배우들은 필요에 의해 혹은 극적 구성을 위해 일인다역을 수행한다. 양종욱과 양조아가 각각 1인극을 해내는 『태형』과 『K박사의 연구』에서 이런 특징은 보다 잘 드러난다. 배우가 화자의 역할일 때, 배우는 해설자로서 인물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지만, 동시에 배우의 몸과 표정은 해설의 대상인 인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상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어체와 문어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화자로서의 발화와 인물로서의 발화에 차이를 두는 등 구어체와 문어체 각각의 말맛을 살리며 그 텍스트의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연극적 효과들-효과음, 움직임, 유희, 조명, 소품 등-을 적절히 가미하여 기존의 소설 텍스트에서 불필요한 설명은 덜어내고 그 마디마디에 연극적 장치를 더한다. 이전의 작업들(<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 개는 맹수다>, <현진건 단편선 – 새빨간 얼굴>, 유진오의 <여직공들>)에서 꾸준히 실험해왔던 새로운 연극 언어에 대한 지속적인 창작 작업은 <김동인 단편선 – 마음의 오류>에서도 이어진다.

▲“사진과 편지” 중 한 장면 (사진=양승호)

 

『사진과 편지』에 등장하는 무대 소품은 의자가 전부이다. 작품에서 불륜에 대한 윤리의 문제가 거론되지 않는 것처럼, 연극 장면에서 불륜의 정사 장면은 그다지 진지하지도, 비밀스럽지도 않다. 혜경의 가랑이 사이로 상체를 반복적으로 넣었다 빼는 L군의 모습은 충분히 익살맞고 경망스러운 그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날 혜경이 남편이라며 보여준 사진에서 남편의 외모에 질투를 느끼게 된 L군은 자신의 외모를 치장하면서 혜경과 더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어느 날, 혜경의 진짜 남편인 늙은 노인을 보게 된다. 이 때, 혜경 역을 연기한 양조아가 늙은 노인을 과장되게 연기함으로써 인물의 관계와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드러내고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늙은 노인을 본 뒤 혜경에 대한 사랑이 식은 L군은 혜경에게 이별을 고하는데, 그 때 이 모든 상황이 혜경의 계획 하에 이뤄진 것임을 알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어리숙한 L군과 요망한 혜경의 성격이 대비되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희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는 L군의 표정을 보며 객석의 좌중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태형” 중 한 장면 (사진=양승호)

 

반면, 『태형』은 1인극으로 양종욱이 일인다역을 연기하며 흰 내의와 팬티만 입은 거의 헐벗은 몸으로 무대 위에서 몸으로 말을 걸어온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 감방을 탈출하고픈 욕구, 갈증, 답답함 등을 연기하며 무대 위를 뛰어다니고 바닥에 뒹굴면서 흰 내의에 검은 때를 묻힌다. 존엄성과 도덕성을 상실하고 다른이의 고통이야 어떻든 저 살 길만 찾는 인간의 몸에 점차 때가 묻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퍽 흥미로웠지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지리멸렬함이었다. 서사가 행위에 집중되면서 텍스트의 전달력이 떨어지고 말과 행동의 균형이 맞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지만, 배우의 살아있는 미학적인 신체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이것은 1인칭 관점의 소설에 대해 신체언어로 접근하는 새로운 형식의 실험처럼 보이기도 했다.

양종욱이 신체언어로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드러냈다면, 양조아는 『K박사의 연구』를 통해 배우의 섬세한 말소리를 들려주었다. 역시 1인칭 관점 소설의 1인극으로, 양조아가 일인다역을 맡았다. 양조아는 자신의 소리를 탁월하게 자유자재로 이용하면서 인물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며 여러 인물을 오갔다. 적절히 의성어와 의태어, 감탄사를 사용하며 여러 상황에서의 심리를 탁월하게 표현했다. 양조아는 K박사의 행동에 대해 고백한다는 듯이 C조수를 연기하며 객석에 직접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과거의 일을 들려주듯이 얘기를 하던 C조수가 결정적으로 K박사의 모순된 행동을 언급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 화술의 시점은 현재가 된다. 인간의 모순이 발견되고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현재인 것이다. 이 장면의 관건은 K박사의 모순을 통해서 C조수가 자신의 모순을 깨닫게 되는 마지막 장면이다.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포착하는 C조수의 의아한 표정과 횡설수설하는 당황한 말소리는 객석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K박사의 연구” 중 한 장면 (사진=양승호)

 

『감자』는 첫 번째의 『사진과 편지』와 마찬가지로 남녀 2인극으로 진행되었지만 『사진과 편지』가 희극인 것에 반해, 이 작품은 비극이다. 인상적인 것은 등장인물인 복녀가 빈민굴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 몸을 팔고 그 대가로 받아내는 화대를 상징하는 오브제인 ‘숟가락’이었다. 반짝이는 것임과 동시에 먹는 것의 필수 수단이면서 또한 동전처럼 찰랑이는 은수저가 무대 위에 처절하고 비참하게 던져질 때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달픔을 느꼈다. 또 몇 푼이라도 벌겠다고 송충이 잡는 일을 하는 복녀가 리드미컬한 신체의 움직임-거의 무용에 가까운-으로 노동을 반복할 때에도 그 처절함과 고달픔은 객석으로 와 닿았다. 부인의 매춘을 그저 바라보는 무능력한 남편과 복녀를 탐하는 관리인, 복녀가 돈에 눈이 멀어 스스로 탐하게 되는 대상인 왕서방을 모두 연기하는 양종욱은 각기 다른 인물을 오가면서도 복녀의 맞은편에서 그녀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인물들의 일관된 성격을 드러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복녀가 흰 분칠을 하고 왕서방을 찾아갈 때에는 기괴스럽기까지 했으나 극한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감자” 중 한 장면 (사진=양승호)

 

이 네 편의 단편을 통해서 전체적인 극의 완급이 조절되는 것도 효과적이었다. 희극과 비극, 1인극과 2인극을 적절히 안배하여 소설가 김동인의 작품세계와 주제의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문법을 확장해나갔다. 또 작품이 무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동일한 주제의식이 객석까지 확장되며 극을 완성시켰다. 결국, 이 ‘마음의 오류’를 바라보는 관객이야말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제3자의 오류와 모순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거대한 거울을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극 속에서 마주보고 있던 인물들은 끝내는 관객 전체와 마주한다. 무대와 객석이 완전한 반쪽으로 접혔다가 나란히 놓이는 데칼코마니가 된다. 객석의 관객들은 이 일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그 인물의 어리석음과 모순에 웃을 수 있었다.

<김동인 단편선 – 마음의 오류>은 우리 모두의 거울로 무대 위에 놓였다. 단지, 우리는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의 ‘마음의 오류’처럼 내가 아닌,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로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당신은 언제나 나를 비추는 거울의 현상이다.

 

 필자_박다솔

 소개_예술경영을 공부했고, 공연 기획을 하고 있다. 혼자 읽고 혼자 쓰다가 누군가에게 그 즐거움을 들켰다. 들켰는데 기뻤다. 아름답고 쓸쓸한 것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