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혜화동1번지 6기동인 봄페스티벌 : 심시티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않네>

2016. 6. 3. 17:32Review

 

연극활동인의 삶의 비용

: 상실감과 박탈감, 그 차이 혹은 그 사이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않네>

혜화동1번지 6기동인 봄페스티벌 : 심시티

전윤환 연출, 앤드씨어터 제작

 

 

_채 민

 

 

 

 

그들, 배우와 스탭들은 연극 활동을 하는 연극인으로서 지치고, 또 지치고, 답도 안나오고, 아무래도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전윤환 연출의 제안을 듣는다. ‘작업을 하자!’ 그리고 연습실에 모인 그들에게 연출은 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본인의 실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다시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배우는 무대 위의 연출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시니컬하게 말한다. ‘연출은 실연의 이유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관객은 웃음을 터트린다. 전윤환 연출은 이렇게 관객을 통해 자조한다. 

 

무대 위 콘솔을 앞에 두고 앉아있던 전윤환 연출은 극의 시작과 함께 본인의 실연을 알린다. 지난해 10월 세월호를 연상 시킨다고 공연을 중단 시켰던 팝업씨어터 사태가 있었고, 그는 이를 규탄하기 위해 다른 연극인들과 릴레이 시위를 했다. 같은 해 11월 차벽으로 둘러싸인 광화문에서 그는 그녀에게 이별통보를 받는다. 문자로. 너와 나 우리 모두의 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있었던 그 순간에 그는 그만의 것을 지키지 못했다. 혹은 상실했다. 연출은 관객에게 마음껏 사랑할 권리공간을 빼앗겼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그녀의 집에서 또 다른 형태의 검열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전윤환이 아닌 연극하는 남자로 분류 되었다 

 

검열과 실연에 묶여 있는 전윤환 연출과 각자 조금씩 다른 이유를 가지고 모인 배우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봄 찾기를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표방하는 연극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에서 영감 받고, 그리고 곧 바뀔 것이라 생각했던 가제는 공연의 제목이 되었다. 봄이 대체 무엇인가. 봄은 그녀인가, 그놈인가, 여느 때의 나(myself)인가, ()시절인가.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온기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인가, 그래서 그립게 만드는 무엇인가, 저들은 무엇을 찾으러 갔을까, 찾으러 가는 게 무엇인지나 알고 있을까.

 

 

 

봄을 찾아보라는 말에 텅 빈 얼굴로 응수하는 그녀(신아리)를 또 다른 그녀(홍혜진)가 묘사한 말은 무()였다. ‘완전 무, 알타리 무’. 여배우는 가열하게 살아왔던 시간들, 글도 쓰고, 연기도 하고, 연출도 했던 연극활동인으로서 쌓은 경력과는 관계없이 아직도 쌓여 있는 학자금 대출, 쉬지 않고 작업해도 생활하기에 빠듯한 보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격마저 괴팍해져가는 그녀의 삶 속 대체 어느 구석에 봄이 있는가

   

기획자이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그녀(권근영)는 오늘도 공연사업 지원서에 복사하기 붙여넣기를 반복한다. 불합리한 현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또 다시 복사하기 붙여넣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지금은 행동하기보다는 어떻게 하지...’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관객은 이렇게 새로울 것은 없지만 적나라하게 우울한 연극활동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그들의 봄 찾기라니 피로감과 그들이 찾아올 봄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작위성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배우들이 봄을 찾는 여정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 전윤환 연출은 줄기차게 본인의 실연에 천착한다. 그는 심리학 책을 통해 접하게 된 애도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기억하고 회상하려는 치열한 노동을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 연출은 애도의 기술을 본인뿐만이 아닌 또 다른 남자 배우에게도 시전 한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지금은 곁에 없는 그녀. 이따금씩 가슴 속에서 그녀를 향한 마음이 현재 진행형인 남자 배우는 덮어둔 아픈 기억과 다 태워버리지 못한 미련을 가지고 연출이 요구한 그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실연 당시에는 하지 못했던 질문과 그에 대한 싱거운 대답에 그는 웃음 짓는다. 문득 현재 진행 중인 거대한 공동의 상실과 박탈당한 애도의 공간이 떠올랐다.

 

 

 

 

봄마저 빼앗겨 버린 상실의 도시, 그곳에서 봄을 찾아본다.’ 상실한 것의 되찾기, 회복하기 등 작업가들의 막연한 시도에 지쳐있던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가져 본적이 있었던가.’ 상실감은 내가 가졌던 어떤 것이 지금은 나에게 없는 상태, 가졌던 것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감정일 것이다. 어떠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함인가. 우리 마음속에 그리움이 있는가. 그저 나는 갖지 못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상태, 그것에서 온 박탈감을 상실감과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로 우리는 되찾아 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박탈감을 상쇄할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전 세대가 습관처럼 떠드는 상실의 아픔’, ‘인간성의 회복등의 구호를 대뇌이고 있는 게 아닐까. 돌아가야 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그 상태로 회귀하려니 그래서 더 불안하고 피곤한 게 아닐까

 

앤드씨어터가 보여준 일련의 봄을 찾는 여정은 자체(소리, , 온도, 물질 혹은 다양한 예술 장르 등)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통해 작위성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만큼 사유가 발전하는 과정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쨌든 중구난방으로 흩어졌던 배우들은 각자의 봄을 들고 무대 위에 오른다. 개인 파산조건을 상담해주던 변호사의 덤덤한 목소리, 릴레이 시위를 할 때 느꼈던 옆 사람의 온기, 서명하기 전 지문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던 사람들의 시선 등 그들의 봄은 크게 사람, 그들과의 관계로 수렴했다. 결국 앤드씨어터의 답은 릴케의 시에 있었다. 

 

갖가지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봄은 숲에서 사는 것 도시에는 오지 않네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라

 

 

 

*사진제공_혜화동1번지

**혜화동 1번지 동인 SNS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hhdlab

***극단 앤드씨어터 SNS페이지 >>https://www.facebook.com/ANDTheatre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