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over's leap : 윤자영 연출, 다층 이미지 레이어가 만드는 세계

2017. 12. 15. 19:49Review


다층 이미지 레이어가 만드는 세계

<Lover's leap> 

 윤자영 연출 @신촌극장


글_김민관


이미지와 실재는 서로를 침범한다. <Lover’s leap>에서 스크린으로 투사되는 푸티지들로 구성되는 이미지들과 배우의 연기, 움직임, 몸은 서로를 간섭하고 서로를 벗어난다, 서로를 벗어나서 서로를 간섭한다. 이미지와 실재는 착종과 간극의 기표다. 기표들은 각각의 운동성을 가진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존재 혹은 대상은 각각의 레이어로 조직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축과 확장을 반복한다. 윤자영의 세계는 마치 컴퓨터 화면을 이리저리 조정하는 듯한, 윈도우상에서 구성하는 유저의 세계 같은데, 곧 윈도우에 뜬 화면들을 ALT+TAB을 누른 채 화살표 키를 눌러가며 화면 전환을 즉시 꾀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처음 등장한 남자 퍼포머(Jimmy)가 추는 아이돌 안무는 히구치 유우가 만든 미쿠미쿠댄스(MMD)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공연 안에서 재전유/굴절되어 간다. 가령 이 프로그램은 하츠네 미쿠라는 캐릭터를 컴퓨터 화면으로 불러와서 미쿠의 움직임을 3차원 가상공간에서 시뮬레이션하며 움직임의 규준과 변형(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원래 하츠네 미쿠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음성합성 프로그램을 제작해 오던 악기 회사인 야마하가 2007년 ‘보컬로이드(VOCALOID)’라는 소프트웨어의 버전 2를 발표하자, 그해에 이를 바탕으로 크립톤 퓨처 미디어라는 회사가 음악과 동기화될 존재로 탄생시킨 캐릭터이자 새로운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이다.


후지타 사키라는 성우의 목소리를 합성해 만든 ‘하츠네 미쿠(初音ミク, ‘미래에서 온 최초의 소리’라는 뜻)’의 발매 이후, 미쿠를 이용한 노래들, 미쿠를 그린 일러스트 등이 인터넷에서 유포되기 시작한다. 이후 캐릭터를 2009년 게임 회사인 ‘세가’가 크립톤 퓨처와의 협력 아래 게임으로 확장하는 가운데, 공모를 통한 다양한 유저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발매된 ‘프로젝트 디바’ 시리즈와 함께 캐릭터의 생명력은 증대되어 왔다(그러나 캐릭터는 처음 하츠네 미쿠가 탄생했던 16세의 나이로 영원하다). <Lover’s leap>에서는 하츠네 미쿠의 ‘Fly me to the moon’이 사용되는 한편, 움직임의 경우 아이돌 댄스의 MMD의 번역 과정을 거친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이돌 안무라는 원본으로부터 추출한 동작은 mmd상의 관절 좌표 변형 단계에서 나오는 기이한 움직임을 참조하여, 퍼포머에 의해 실재로 다시 구현된다.


여러 아이돌 음악에 따른 댄스의 시작은 계속 전환된다. 여기서 아이돌 댄스들은 계열화된다. ‘이것은 아이돌 댄스(의 일종)이다!’라는 것. 그러니까 이는 즉자적인 고유성의 춤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레퍼런스로서의 춤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있는 것의 차용이라는 것 그러나 동시에 변용되어 간다라는 것(사실 이 부분, 즉 아이돌 음악/댄스와 MMD라는 프로그램과 이를 경유한 아이돌 댄스라는 점을 온전히 알기 어렵기는 하다―이는 서브컬처로 지칭되는 MMD나 대중문화인 아이돌 댄스를 관객이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공연에 대한 접속의 정도나 질이 달라질 것임을 또한 의미한다, 즉 익숙한 문화적 코드는 이 작품과 ‘상호 텍스트적 관계’를 원활히 맺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세대적인 차이로 묶이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 춤들은 각각의 고유성으로 수렴되기보다 상위의 범주로 환원된다, 아이돌 댄스라는. 이는 레디메이드를 시뮬레이션과 실제 연습이라는 두 번의 번역 과정을 통해 구현한 움직임들로서, 시뮬라르크(아이돌 댄스→MMD)는 실재를 인도하고 조각하고, 실재(아이돌 댄스→MMD→퍼포머)는 시뮬라르크를 초과하는 문제를 그리고 동시에 가능성을 갖는다.



Jimmy의 전유된 아이돌 댄스 이후 하츠네 미쿠의 캐릭터 이미지와 이집트 벽화의 옆으로 축을 튼 이미지가 뜬금없이 스크린에서 연이어 튀어나온다. 그다음에 나오는 여자 퍼포머(김채은)는 이미지에서 튀어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아이돌 댄스의 개별 동작들은 클래식 발레의 한 특징인, ‘말하는 듯한 안무’, 곧 ‘설명하는 안무’(가령 동작과 의미는 일대일로 연결되고―기의와 기표는 비자의적으로 결속된다, 개별 동작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그것을 독해할 수 있는 방식이다)의 연장선상에서 기호화되고, 기표와 기의의 직접적 상관성을 갖게 된다. 다시 스크린에서 튀어나오는 이미지는 실재의 보증물이 아닌 그 자체로 현현되는 인상을 준다, 음악이 튀어나옴과 함께. 앞서 Jimmy가 계열화된 이미지의 예시이자 또한 시뮬라르크를 벗어나는 개별적 고유성을 가진다면, 김채은은 이미지의 직접적 제시 이후,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맞물려 기능하고 이미지를 보조한다. 


아이돌 댄스에서, 이미지로, 이미지를 번역한 실재로, 다시 이미지로 가는 과정에서, 각각은 그 닮아 있음을 보증하는 각각의 이미지/실재로 자리한다(곧 온전히 결속되지도 않지만, 독립적이지도 않다). 동등한 움직임의 다른 형태들이라는 기표는 아이돌 댄스, 신화, 게임 캐릭터의 세계라는 각각의 컨텍스트로서의 기의를 갖는다. 그렇지만 그 세 개의 어떤 세계로도 기표는 잠식되지 않는다. 외떨어진 기표들이 만나고 더해지는 과정이 곧 공연 전반을 구성하는 가운데, 달에 관한 텍스트는 신화에 대한 독해를 요구하는 대신, 일종의 텍스트 조각들로 또 다른 기표가 된다. “달의 형상에서 달의 피부를 보는 일은 사랑이 시작되는 일”과 “달 표면에서 달 토끼를 찾는 일은 사랑이 시작되는 일”이라는 공연 중간과 후반에 나오는 문장들은, 사실상 같은 문장의 반복이며 이는 의미를 발현하는 대신 또 하나의 기표에 그친다. 이는 중간에 삽입된, 비가 와서 작동되지 않아 (진짜) 폭포가 된 인공폭포―이는 실재와 시뮬라르크의 역설적 관계에 대한 주석이다―의 표면을 선행된 달의 표면과 연접시키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기표는 반복(과 차이를 갖게)된다.


결과적으로 달에 대한 기표와 달에 대한 기의는 순환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의 커다란 달 이미지와 그와 대비되는 거기서 튀어나온 하츠네 미쿠의 실재, 곧 ‘초라한 신체’, 여자는 하츠네 미쿠의 ‘플라이 투 더 문’을 립싱크하며 기도의 포즈를 취한다. 다시 달의 표면 이미지로 시각은 옮겨가고/확장되고 소리는 꺼지고 이제 립싱크 하는 퍼포머의 입이 부각된다. 입은 점점 더디게 움직이고, 소리는 점점 물소리처럼 바뀌어 간다(‘실재는 이미지처럼 사라진다’).



마지막에 사포의 절벽에서의 죽음을 다룬 신화는 두 퍼포머의 연기로 재현되고, 예외적으로 이야기(기의)가 출현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절벽이 머리카락으로 목을 조르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 이후. 그리고 조명이 밝아지며 재현은 동강 나고, 실재는 이미지를 초과한다, 아니 이미지를 비집는다. 남자는 얼굴을 서서히 돌린다. 바로 이미지가 찡긋거리는 순간이다. 추한 외모의 파온은 사포에 반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특별한 향을 받고 사포에게 접근하는데, 미리 피워 놓은 향로의 연기가 사라지고 변한 원래의 파온의 모습에 사포는 실신하고, 나중에 (향을 입은) 파온을 잊지 못해 절벽에서 떨어진다는 대강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사포가 원래의 파온과 향을 피운 후 아름다워진 파온 중에 어떤 파온이 진짜(원본)인지 갸우뚱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츠네 미쿠가 갖는 기이한 생명력으로 연결되는데, 하츠네 미쿠는 자신이 화면상의 이미지로 사라지고 마는 운명을 적시하며 오히려 자신이 가진 고유한 현존성을 강조한다, ‘죽음에 이르는 존재’


원본과 (플라톤에 따르면 원본을 복제해 그보다 떨어지는 가치를 지닌) 이미지는 서로의 간섭 아래, 기표들의 끝없는 기의로부터의 탈주로 수렴된다. 가령 <Lover’s leap>를 Fly me to the moon의 배경음악 아래, 선미의 ‘보름달’을 비롯한 아이돌 댄스를 결합해 만든, 달을 메타포로 한 사랑의 현대적 신화로, 그것을 구성하는 즉물적 기호들의 놀음으로 축약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이미지와 실재는 반복하며 번복한다. 가령 영상 속에서 스스로의 사라짐을 노래하는 미쿠의 노래처럼 이미지는 실재로서 자신을 주장하고, 두 배우는 사포와 파온의 이미지[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그림 <사포, 파온, 그리고 큐피드(Sappho, Phaon, and Cupid)>(1809)에서 ‘큐피드’ 부분을 잘라낸 인터넷상에 떠도는 푸티지]에 포획되어 실재(퍼포머)는 이미지(그림)로 소급되는 듯 보이지만, 곧 실재는 이미지를 뚫고 나온다(‘이미지는 찡긋한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다시 스스로가 이미지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작업은 현대의 신화가 고전적인 신화와 연장선상에서 그 기의를 살펴볼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의 신화가 유효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다만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다른 이미지들로 수렴되며 하나의 화면에 ‘CTRL+C’, ’CTRL+V’를 연이어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동시에 컴퓨터는 여러 매체 플랫폼을 한 번에 다룰 수 있다). 곧 신화의 서사성을 재현하는 대신, 신화에서 ‘달’과 ‘사랑’이라는 메타포로 축약하고 추출해서 현대의 이미지들과 병치시키며 서사를 탈락시킨다. 단순하게 말해, <Lover’s leap>는 윈도우상의 세계를 무대로 전치한 결과랄까(하지만 앞서 말했듯 MMD를 퍼포머가 다시 수행하는 과정처럼 이 작업은 이미지의 또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쩌면 ‘현대적 신화’는 그 쓰임이나 접속의 충실도에 있어 하츠네 미쿠라는 캐릭터로써 구성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이상 고전적 신화의 계승/재현을 추구하지 않아도 충분한 서사-이미지가 만드는 세계!


각주)

(*)김경래, 가장 영향력 있는 가상 캐릭터 Hatsune Miku : Project DIVA, 게임대백과, 출처 URL;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3579387&cid=58773&categoryId=58777


*사진_1,2,3,4  ⓒDohyun Baek  


 필자_김민관

 소개_아트신(artscene.co.kr) 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으로 예술(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위한 개인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