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애인 @대학로 이음센터 <전쟁터 산책>

2017. 12. 27. 16:02Review


선명한 불능의 이면

<전쟁터 산책>

극단 애인 @대학로 이음센터

작_페르난도 아라발 / 연출_이연주


_최윤지


무대 위에 등장하는 배우는 그의 몸으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말 이전의 격렬함으로 극의 뜻을 전한다.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로서 배우의 몸은 가상의 세계에 속하는 존재를 연기자 자신의 표현을 통해 현재의 관객 앞에 불러 세운다. 배우는 의미 전달의 차원에서 나아가 관객과 그들의 몸이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바라본다. 극단 애인은 공연 <전쟁터 산책>을 통해 몸 자체가 곧 극의 전언이 되는 현대 연극의 아이디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장애인의 몸이 불러일으키는 선명한 아우라를 통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비롯된 불능의 이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극단 애인은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페르난도 아라발의 <전쟁터 산책>을 선택했다. <전쟁터 산책>은 전쟁터에서의 소풍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바탕으로 한 블랙 코미디이며, 부조리극이다. 부조리라는 용어는 카뮈가 자신의 저서 <시시포스 신화>에서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했던 용어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는데, 그 바위는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형벌이 영원히 되풀이된다. 카뮈는 '아무것도 성취해낼 수 없는 일에 온 존재를 다 바쳐야 하는' 형벌을 반복하는 시시포스를 '부조리한 영웅'이라고 부른다. 노동과 권태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인간을 은유하는 시시포스 신화를 통해, 카뮈는 인간이 지니는 이방인으로서의 감정을 부조리라 명명한다.


<전쟁터 산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구조가 붕괴된 세계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비논리적인 구조와 발화를 통해 근원을 알 수 없는 전쟁 상황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희곡이 인간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다면, 극단 애인의 <전쟁터 산책>은 영원히 되풀이되는 형벌에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인간이 세계와 대결하는 노력을 가시화 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하고,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러한 싸움은 우리로 하여금 부조리한 세계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게끔 한다. 그리고 타인의 부조리한 세계를 생각하게끔 한다.



시대의 풍습이나 미학적 관행을 따르지 않는, 도리어 전통적인 관행에 반기를 드는 부조리극을 무대화 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이 세계 속에서 체험하는 혼란과 위기를 무대 위에 그대로 담아내려는 극단 애인의 시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종래의 연극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합리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과 달리 부조리극은 세계의 불합리를 불합리한 그대로 표현한다. 이러한 내용과 표현 형식의 일치와 함께 장애인의 몸이 무대에 서 발화할 때 반복을 통한 언어의 전달은 의미 없는 지껄임으로 변형되고, 이들이 춤을 출 때 논리는 포기되며, 몸의 이면에 담긴 이미지가 압축된 표현들로부터 의미의 부재는 부각된다. 


논리와 질서가 배제된 세계가 무대에 투영됨으로 인해 개념적 사고의 단계는 설명으로 확정될 수 없는 영역에서 범위를 확장한다. 불능의 의미는 유능의 세계 바깥에서 더욱 다양한 뜻을 갖게 되며 해체된 구조, 흐릿한 인물, 분명치 않은 언어, 비현실적인 시공간은 부조리성에 부딪힌 인간의 직관에서 비롯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작품 속에서 배우들은 낡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행위를 반복하는데, 그로테스크한 우스꽝스러움을 통해 웃음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이러한 장면을 바라보며 관객은 모호한 상황과 관객석으로 내던져진 주제를 찾으려 애쓴다.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에 부딪힌 형이상학적 불안감”. 부조리극이라는 용어를 처음 규정하고 사용한 마틴 에슬린은 부조리극의 주제를 이와 같이 말한 바 있다. 극단 애인은 <전쟁터 산책>을 통해 장애인 배우의 연기로 하여금 재현의 규범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부조리극의 주제를 확장했다. ‘보기 좋은 몸’이 ‘아름다운 몸’으로 치환되는 것에 저항하는 이 연극은 연기자인 장애인의 몸을 온전히 바라보게끔 하며 그들의 몸으로부터 비롯된 선명한 불능의 이면에 배우의 신념과 존재에 담긴 울분을 담아냈다.

연극 <전쟁터 산책>에서 장애인의 몸이 갖는 전언은 현대에 이르러 무의미하게 되어버린 인간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아라발이 번민을 구조화하여 인간 조건의 부조리성을 드러내며 서구 세계 동시대의 근심, 공포, 감정, 사상에 섬세하게 감응하여 작품에 반영하고 개성을 보여준 것에는 인과율의 거부라는 선언을 받아들이게끔 하려는 의도가 있다. 연극 <전쟁터 산책>은 이러한 선언을 통해 인과율과 전면적으로 대치한다. 배우들은 모든 일의 원인을 지우며 불능의 가능성에 너무나 쉽게 다가갔다. 전쟁터는 나에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우리에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포화 속 침묵을 견디는 무기력을 깨닫는다. 그곳에서의 산책을 기꺼이 여기이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제공_극단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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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최윤지

 소개_연극을 좋아하는 직장인입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읽고 쓰려 노력하지만 일과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이라 믿고 오늘도 다시 한 번 힘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