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2. 09:47ㆍReview
변신하지 못한 자의 슬픔
‘변신하지않음’ 매머드 머메이드
(원작 카프카의 ‘변신’)
글_채 민
잔뜩 긴장한 듯이 보이는 배우 김은한은 자신을 ‘그레고르 잠자’라고 소개 한다. 그의 움츠린 어깨와 부산스러운 손놀림은 보는 사람마저 어색하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공연을 보며 음식을 먹어도 되고, 스마트폰을 사용해도 된다고 서분거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요일 오후, 애매한 시간에 대체 몇 명이나 이곳을 찾을까 하며 초조하게 관객을 기다리던 그가, 이제는 자신이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로 관객을 지루하거나 우울하게 만들까봐 두렵다. 그래서 관객에게 공연 중간에 언제든지 나가도 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모습이 그레고르를 떠오르게 한다. 아침에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그레고르. 몸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 지 몰라 침대 위에서 바동거리면서도 문 밖의 가족과 직장을 생각하던 그레고르. 앞으로 5~6년은 족히 갚아 나가야 하는 아버지의 빚과 여동생이 원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음악학교 진학을 위해 돈을 벌려고 했던 그레고르. 이렇게 자신을 기만한 그레고르 말이다.
‘변신’과 ‘변신하지 않음’
카프카의 원텍스트에서 그레고르의 ‘변신’은 일상의 관성에 제동을 걸고 성찰을 가능케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벌레로 변한 그가 엉성하게 일상을 더듬거릴 때, 이렇게 그의 정신과 실체가 단절이 되고나서야 그레고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과 주변을 살피게 된다. 실존에 대한 자각은 이런 거리감에서 주어진다. 우리는 이제야 일상성에서 왜곡된 가족과의 관계와 나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요소를 의심하게 된다. ‘매머드머메이드’의 ‘변신하지 않음’은 ‘변신’의 모티브를 차용한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하지 않는다. 다만 병에 걸릴 뿐이다. 득달같이 집으로 찾아온 지배인에게 그레고르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 다음 차편으로 출발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말하는 그레고르는 커피 잔을 들어 올릴 기운조차 없다.
‘집안 사정이 썩 좋지는 않으니까. 돈을 버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슬픔으로 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잠이 안오고. 그냥 몇 시간동안 벽만 긁어 댔습니다’
초조하게 독백하는 그레고르의 모습은 벽에 달라붙은 벌레의 모습과 다름없다. 그레고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왜곡된 존재가치와 그로인한 자기기만은 세상으로 부터의 소외를 가속 시킨다. 원작에서 아버지는 그레고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고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했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버린 후 가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노동을 시작했고, 그 노동은 오히려 그들에게 생기를 주었다. 그레고르는 그 사실을 알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배신감과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몫이다. 카프카의 그레고르는 더 이상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게 되어 외부세계로 부터 고립되었지만, ‘변신하지 않음’의 그레고르 -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 또한 외부세계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예술과 사랑
‘변신하지 않음’에는 ‘그레고르’와 ‘예술 하는 김은한’이 혼재한다. 그레고르는 취미로 작은 액자를 만들었다. 거기에 잡지에서 잘라낸 모피 옷을 입은 귀부인 그림을 넣는다. 모피를 걸친 귀부인은 그레고르가 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레고르는 액자를 만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예술작품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매료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 어떤 틀을 만들어서 거기에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담는 게 예술이라고 느껴요’
카프카의 ‘액자’에 담긴 귀부인은 그레고르가 욕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액자에 담은 ‘예술’은 그레고르 잠자를 연기하는 연출가이자 배우 ‘김은한’이 욕망하는 것이다. 그는 그 액자를 보여주고 싶어도 동생이 들고 나가서 보여줄 수 없으며, 따라서 이 공간(극 중 그레고르의 방이자 공연이 진행되는 서교예술센터)에서 예술 작품으로 기능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이렇게 공간에 존재하는 자신의 작품 ‘변신하지 않음’과 배우 김은한의 현존을 조소한다.
그는 모자 가게 점원에게 고백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당신의 코르셋으로 감춰진 아름다움은 저만이 압니다.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스쳐 가지만
그 아름다움은 저만이 알죠.’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여성에 대한 그의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이다.
‘제게는 그냥 용기 냈다 얍, 난 할 수 있는 걸 다했어, 지만 그쪽은요.
끔찍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사랑도 구할 수 없는 그는 철저하게 홀로 남는다. 이제와 우리에게 소외나 고독은 언어가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존재자체에 내재된 ‘소통불가능’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소통불가능성은 지금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특성이기도 하다.
악몽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이것은 그의 숱한 악몽 중에 하나다. 긴장감에 뒤척이던 그는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별다른 사고 없이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도착한다. (사고가 나지 않아 텅 빈 이곳에 도착해 관객과 마주한 자신이 난감한 지경이다.) 그리고 ‘사건과 갈등’없는 연극을 시작하려고 보니 차라리 ‘벌레인 채로’ 이곳에 오는 게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한다. 예술을 하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한편으로는 잔뜩 긴장한 자신을 이토록 무대로 밀어붙이는 그 안의 또 다른 힘은 대체 무엇인가.
숨 가쁘게 달리다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는 꿈, 욕망 했던 용에게 짓눌리는 꿈, 제복을 입은 아버지가 그를 향하여 사과를 던지는 꿈. 그의 불안과 욕망을 형상화 한 기이한 꿈들은 매일 밤 그를 괴롭힌다.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여러분의 남아있는 몸을 폈을 때,
그게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시작이기를 바랍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환상, 탄생과 죽음이라는 액자 틀 사이에서
끝없이 아름다운 것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
텅 빈 공간에 오로지 저와 여러분만이 존재합니다. 무엇을 채울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아침’과 ‘좋은 계획의 시작’을 빌어주는 그의 말은 공허하다. 더 나은 삶은 없다. 끝없이 아름다운 것을 채워야 하는 강박은 우리를 좀 먹을 따름이다. (그도 알고 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것은 불행이지만, 적어도 벌레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진짜 다행인가.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의 병적인 증상을 벌레같이 묘사했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 날 벌레로 변신하여 소파 밑으로 사라지지 못한다. 스스로 벌레 같다고 느낄지언정 새로 밝은 하루를 살아 내야 한다. 이게 우리의 비극이다.
김은한은 카프카의 ‘변신’을 차용하여 예술가로서 살고자 하는 그의 내면세계와 가족, 결혼, 직업과 같은 외부 현실과의 괴리감을 표현 했다. 그는 ‘변신하지 않음’을 끝내며 ‘매머드머메이드’의 다음 공연을 예고한다. 회의와 우울에 빠진 관객들은 이때 한 줄기 빛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는 것’. 내 존재와 가까워 질 수 있는 고민을 멈추지 않는 것. 그는 오늘도 악몽을 꾸고, 영감 받을 것이다. 자신의 악몽을 관찰하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증명해 나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이제 조금 덜 우울해진다.
필자_채민 소개_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믿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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