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8. 13:53ㆍReview
프린지+두산 프로젝트 빅보이 1.
양손프로젝트&상상만발극장 <십이분의 일>
나와 당신 안에 있는, 어쩌면 같은 것
당신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 …….
누구로부터 배반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 …….
당신은 유다인가요? / 네.
공연 중에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공연이 끝난 후 한 관객의 마음 안에 떠오른 자문자답이다. 대개의 자문자답은 <십이분의 일> 초반의 장면에서처럼 두 개의 목소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주를 벌였다. 겹치기도 했고 흩어지기도 했고 서로를 방해하기도 했다. 배우 손상규와 양종욱이 정면을 향해 직소하는 목소리를 보면서(목소리 운용마저도 시각적이다.) 그렇게 점점 유다에게 귀 기울였다.
믿음이 없는 세계. 나는 현 시대를 그렇게 믿고 있다. 종교의 신실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에 쓰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Bibo No Aozora>가 문득 불협화음으로 뒷골을 서늘하게 하는 것처럼 지금은 그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세계이다. 어떤 면에서 믿음은 화음의 세계, 신화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비록 공연에서 쓰인 것이 불협화음을 이룬 부분은 아니었지만 두 배우가 대사를 말하는 방식은 그와 닮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협화음이 가득한 세계에서는 유다 스스로 무엇에 헌신했고 무엇에 배신당했고 무엇을 억울해 했는지를 곰곰 생각해볼 시간마저 없어 보인다. 의심과 억울함만이 가득하다. 믿음이 없는데 시간도 없다. 사실 의심과 억울함 뿐이겠는가. 반성의 시간 없이 내달린다.
물론 여기서 유다는 나와 당신이다. ‘이 시대의 많은 유다, 모든 유다’ 이런 표현 따위는 쓰지 말기로 하자. 그 모두가 발끈할지도 모르니까. 정확히 나와 당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거다. 어둠을 여러 번 건너면서 말이다. <십이분의 일>은 잦은 암전으로 쪼개진다. 마치 칸칸의 필름들처럼. 그러고 보니 암전도 시각적이다. 무대 위에 촘촘히 붙은 발광테이프를 바라보면서 칸칸의 필름들을 넘겨보는 기분으로 그 사이를 생각하고 상상한다. 또 한명의 유다가 되어, 들려오는 벨소리에 맞춰 암흑의 무대 위에서 몸을 뒤채어도 본다. <십이분의 일>에서는 그런 관객이 된다. 유다와 마주하며 유다가 되어가는 동안 나와 당신에게는 한 시간이 주어졌다.
종이의 질감을 전하는 무대다. 구겨진 종이로 싸인 기둥, 종이 가방, 종이 예수, 종이 얼굴이 이 공연의 나긋나긋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깔끔한 조명이 종이를 종이로 보이게 해준다. 최후의 만찬에서도 종이 사도들이 예수의 포즈로 앉은 배우 양종욱을 향해 손짓한다. 두어줄 앞에 앉아있던 어느 관객은 웃음을 터뜨린다. 배우 손상규가 사도들 뒤로 서서 유다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 만찬 테이블은 오른쪽이 꽉 찬다. 이것 또한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연출자의 말을 살며시 들어보니 왼쪽의 무대장치가 안 올라왔다고 한다. 그런 줄은 전혀 몰랐다. 주변 관객들과 오른쪽만 올라간 것도 좋더라는 짧은 몇 마디를 주고 받았는데, 첫 공연 후에는 왼쪽 장치가 올라가고 있을까.
그런데 문득문득 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종이세계가 화르륵 불타오르는 상상을 했다. 종이 예수와 종이 기둥, 종이 가방, 종이 얼굴들 모두가 샅샅이 불타버리는 상상 말이다. 어쩌면 유다의 버거운 고뇌와 깔끔한 종이들이 내 눈에는 대조적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유다의 말들을 가만 들어보면 그 안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불타오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무대는 차분하다.
예수의 길을 스포츠 중계하는 장면은 오락과 가짜 믿음으로 범벅이다. 유다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닫힌 막 앞에서 막간극을 하는 광대 유다는 자신의 괴로움을 희화화시키고 있다. 마치 TV 예능 프로에서 자신의 고통과 치부를 드러내며 웃기는 것처럼. 그럴 때는 웃지만 웃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믿음이 믿음이 아니고 웃음이 웃음이 아닌 지금, 예수는 유다와 동갑내기이면서 유다의 마음을 몰라주는 야속한 사람이다. 늘 주변에서 챙겨줘야 하는 한낱 인간이다. 유다의 시선에서 예수는 인간으로 추락하지만 동시에 유다 자신도 상인 유다를 연기해야한다. 돈 주머니를 경멸하듯 거부하면서도 상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정작 유다에게 중요했던 자신의 억울함과 증오, 서러움, 고통은 그 어디에도 둘 곳이 없어진다.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를 원작으로 하는 <십이분의 일>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던 유다의 심정을, 혹은 호소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심정을 직접 드러낸다. 나와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저마다 은밀히 믿고 있다가 스르르 손에서 놓치기도 하는 것. 무엇에 금이 갔나. 두 배우가 춤추던 장면이 떠오른다. 서로를 가로막다가 따라하다가 붙잡다가 의지하다가 다른 곳을 보다가 뛰어오르다가 미끄러져 내린다. 붙잡을 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환멸인 건가. 그쯤에서는 춤을 추는 배우들이 좀 더 힘을 빼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십이분의 일>은 프린지와 두산이 함께하는 차세대 예술가 발굴 프로젝트, ‘프로젝트 빅보이’의 첫 번째 공연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한 200여 편의 소극장 작품 중 세 편을 선정했다. 곧 이어 집단 움틈 <브리튼을 구출해라!>, 극단 시우 <두더지들>이 이어진다. 이번 기획에서 가장 궁금해지는 건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사회와 현실을 향해 무엇을 직소(直訴)하는가이다. 혹시 그것이 나와 당신 안에 있는,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는지. ‘혹시’와 ‘어쩌면’이 점차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PROJECT BIGBOY
프로젝트 빅보이는 독립예술가들의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돕고자 마련된 차세대 예술가 발굴 육성 프로젝트 입니다. 지난 3년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발표된 소극장 공연들 중에서 지금 시대에 관한 독창적인 시선을 작품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두더지들>, <브리튼을 구출해라>,<십이분의 일> 세 잘품이 선정되었고 '동시대성'을 키워드로 한데 묶어 총 6주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독립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과 아트 인큐베이터 두산아트센터가 소개하는 첫번째 프로젝트 빅보이들로부터 우리 연극의 미래와 가능성을 점쳐보시기 바랍니다.
www.doosanartcenter.com
양손프로젝트&상상만발극장 <십이분의 일> ~10.2(금)
집단 움틈 <브리튼을 구출해라!> 10.8(목)~10.18(일)
극단 시우 <두더지들> 10.22(목)~11.1(일)
티켓 | 일반 20,000 할인 15,000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두산아트센터 회원)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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