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12, 유다 -쓰러져가는 사람, 가롯 유다에게 귀를 기울이다
2009. 9. 18. 15:53ㆍReview
글 개쏭
1/12, 유다 -쓰러져가는 사람, 가롯 유다에게 귀를 기울이다
‘제 이름이 뭐냐고요?’
유다...입니다.
예수에 실망했던 유다입니다. 아니, 예수를 질투했던 유다입니다. 아니, 예수를 증오했던 유다입니다. 아니...예수를 사랑했던 유다입니다. 아니,
‘가롯 유다. 장사꾼 유다입니다.’
이 연극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가롯 유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를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다자이 특유의 자괴적 시선이 시각화되어 드러난다. 신약성서에서 유다는 세속적이며 돈계산이 밝고, 결국 예수를 팔아넘기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 어디에도 유다가 왜 예수를 팔아넘기게 됐는지에 대한 해명은 없이, 그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게 나았을’ 죄인으로 표현된다. 오랜 시간동안 구, 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에서는 이런 유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배신과 죄인의 상징으로만 다뤄지며 표면적인 사건을 통해서만 유다를 대했을 뿐이다. 그는 배신을 나타내는 금기였고, 배신으로서만 다뤄야 했었다.
연극은 예수가 나오지만, 그리고 예수가 사건의 중앙에 있지만, 이런 죄인 유다에게 시선을 맞춘다. 유다가 오랜 시간 예수를 보필하다 결국 왜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유다의 심정을 들여다보고, 신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행적들과 유다의 변화과정에 대해서 유다의 입장을 통해 풀어보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은화 30냥을 돌려주는 유다’를 바라보자. 빛은 왼쪽 위에서 중앙 아래를 향해 비춰진다. 그 빛에 비추인 인물들은 빛에 반짝이는 바닥에 떨어진 은화들을 보고있다.
놀라움과 어수선함이 나타나는 가운데, 정작 이 은화를 던졌을 유다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른쪽 깊숙이 어둠 속에 파묻혀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천사상에 기대어 있다.
유다의 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버려진 은화에 비치는 빛과, 유다의 등가로 비치는 약한 빛뿐이다. 은화는 버려졌으나 빛난다. 마지막 양심, 혹은 회개에 대한 상징으로서 은화는 그림의 가운데에서 빛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림을 보다보면 관심이 가는 것은 오른쪽 구석에 희미하게 그려진 유다의 모습이다. 무릎을 꿇고 쓰러지다시피 기대어 있는 유다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단순한 후회와 회개만이 있었을까.
연극의 시선은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유다에게로 옮겨져 있다. 마치 그림의 배경처럼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유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표정과 몸짓을 섞어 말하기 시작한다. 2천년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유다의 이야기가 조용히 귀를 울리며 다가온다.
이제 유다는 무대의 중앙에 서있다.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예수의 예수살렘으로의 진출. 사람들은 나와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웃옷을 벗어깔아 새로운 왕을 환호한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에 있던 상인들을 채찍질하며 쫒아내고 사제들을 욕하며 성전을 허물라한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산상수훈에서의 평화롭던 기억과 어긋남을 느낀다. 환호는 서서히 욕설과 비하로 변해간다.
유다는 지쳐간다. 그래도 유다는 버텨본다.
그러는 와중에 막달라 마리아를 만난다. 그녀는 예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씻긴다. 유다는 상식적인 비판을 한다. 그 비싼 향유를 팔면 가난한 사람 몇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지 아느냐고. 유다는 그 향유의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알았고, 그 값이면 몇 년치 생활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평소의 생활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직 유다만이 예수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생활을 책임졌으니까. 그러나 그러한 그의 심정을 무시하듯 예수는 말한다. 이 여자는 좋은 일을 하는 거라고. 유다는 상처받는다. 오랜 시간 그를 따랐지만 단 한번의 칭찬이나 관심어린 한마디도 듣지 못했던 자신을 생각한다. 유다는 질투한다.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칭찬을 받은 마리아를 생각한다. 유다는 실망한다. 여태껏 어떤 여인에게도 애정을 보이지 않았던 예수가 마리아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 같아서. 유다는 다시 질투한다. 왜 예수는 하필, 자신의 눈에도 아름답게 보였던, 예수를 따라다니지만 않았다면 어떻게 해보고 싶었을, 그 막달라 마리아에게 애정을 보이는지.
유다는 예수가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를 떠나자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자고 생각한다. 이 비루한 짓을 그만두고, 아니 차라리 예수를 팔아버리고 그간의 수고에 대한 대가로 삼자고 생각한다.
그러던 와중에 예수가 웃옷을 벗고 제자들을 불러모은다. 그러고는 손수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한다. 유다의 차례가 되고, 발에서 씻겨나가는 먼지처럼 상념도 씻겨나간다. 유다는 빛을 느낀다. 자신의 생각을 회개하고 정말 온마음을 다해 예수를 따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저녁식사 시간에, 예수는 제자들 중 죄인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팔아넘길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유다에게 빵을 물리우고, 네 할 일을 해라, 고 말한다. 유다는 다시 상처받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품어왔던 생각들을 예수한테 읽혀서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얼마전에 바뀐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예수가 밉고,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그를 따라다니면서 얻었던 상처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기기로 각오한다. 예수에 대한 사랑과 증오와 질투와, 그 모든 서글픔을 함께한 체, 은화 삼십냥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예수를 사랑하는 유다도, 예수를 증오하는 유다도 아닌, 장사꾼 유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덜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다는, 훗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내장이 터져죽을 고통을, 오랜 시간동안 품게 된다.
그렇게 유다는, 2천년동안 이해받지 못할 고통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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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 개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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