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1. 14:27ㆍReview
LIG아트홀 링키지프로젝트 2010
'열혈예술청년단'의 「불안하다」
- 극장 공간의 해체 혹은 전복?
글_ 이경성(연출가, Creative VaQi대표)
열혈예술청년단은 골목길과 같은 야외의 공간에서 맥락을 찾아 공연을 해왔던 팀이라 극장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방식이 무척 궁금해 졌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와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극장을 재구성 한다는 주제 하에 이들은 공연의 제목을 ‘불안하다’로 명하였다.
‘불안하다’가 벌어지는 LIG 아트홀은 작년 이 맘 때쯤 필자가 같은 링키지 프로그램으로 이용해 해보았기 때문에 그 구조를 나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매우 고급스럽게 정돈된 이 극장의 로비는 공연 팀에 의해 거대한 천 같은 재료로 분할되었고 바닥에는 소위 ‘뾱뾱이’라고 불리는 비닐이 깔려 있어 관객들이 걸어갈 때 마다 소리가 났다. 관객들은 LIG 아트홀의 연습실 격인 엘 스페이스로 안내 되었고 그 곳에서 배우가 아닌 실제로 후덕해 보이시는 ‘아줌마’의 안내를 받으며 그룹으로 나뉘어져 5분 단위로 극장 탐방을 시작하였다. 각각의 배우들은 일반적으로 잘 공개되지 않는 통로들로 그룹을 안내하고 배우들이 개인적으로 발견하고 디자인해 낸 것들로 보이는 행위들을 그 공간들에서 보여준다. 세균소독을 하는 소녀, 성가 복을 입고 왜 사냐고 묻는 남자, 한 평 공간에서 팝송을 부르는 여자, 자신의 생일축하를 강요하는 소녀 등의 인물들을 관객은 만나게 된 후 이층객석을 통해 무대에 도달한다. 이동시 관객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졌는데 비좁은 통로들을 돌아다니며 앞서 간 그룹이 경험하고 있는 장소의 소리, 소음들이 이 쪽 으로 전해 들려올 때 묘한 긴장감 또는 기대감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누가 봐도 배우가 아닌 일반 아주머니들께서 객석에 앉아 공연 시작 전의 관객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직접 관객들과 대화를 하기도 한 부분이었다. 그 분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 내가 지금 관람하고 있는 것 또는 그 행위의 진짜/가짜의 날 선 경계가 무뎌지는 느낌을 받았다.
또 한 가지 머릿속을 간지럽게 하는 기억이 남겨졌는데 그것은 각 스팟 별로 배우들이 공통으로 행하던 제스쳐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뜨개질을 하는 동작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외과의 뇌수술을 행하는 의료 술의 손동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명확한 기호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보는 이들의 감각을 자극했다.
무대에 도달하면 관객들은 의례 그들이 앉게 되는 객석에 앉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의 옆면에서 배우도 관객도 아닌 제 3자로써 바라보게 되는 시점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한 쪽 화면으로 바로 이 극장 밖의 거리가 영상을 통해 보여 진다. 그럼으로써 무엇인가를 꾸며내는 이 공간 밖의 실제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무대에서 일련의 행위들이 끝난 뒤 관객들은 마지막으로 분장실을 경험하게 되고 거기서 분장을 지우고 있는 배우들을 만나게 됨으로써 이 극장 탐방놀이는 끝을 맺게 된다. 분장실을 처음 방문해 보는 일반관객들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가 잘 아는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놀이’를 통하여 가보지 못한 통제된 또는 밀폐된 ‘구석’들을 돌아봄으로써 낮선 방문에 의한 ‘불안함’을 언뜻언뜻 느끼기도 하였다. 이러한 탐방을 통하여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도록 짜여진 극장 공간의 맥락을 관객 개개인들의 관점에서 느껴보도록 구성한 연출의 의도가 보였다. 그러나 각각의 공간에서 배우들이 발견한 재료들을 풀어놓는 내용이나 공간을 디자인한 방식은 무척 조악해 보였다. 테이프로 여기저기 무언가를 붙여 놓은 모습이나 가짜 소품들로 꾸며놓은 모습은 의도는 보이지만 원래의 공간과 미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무언가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던 것이 아닐 까. 소리나 빛 같은, 조금 더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시도해 보았다면 보다 미학적으로 완성도 있고 효과적인 공간연출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배우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발견해 낸 재료와 방식으로 전체를 구성할 경우 그 개별성들을 내용적으로 묶어줄 하나의 숨은 전체 개념이 중심에 놓여 있어야 할 텐데 그 지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이 각각의 스팟들을 순간의 재미로만 흘러가게 만들어 버려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폐되고 깔끔하게 짜여진 극장공간의 ‘전복’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였다. 다만 이 전복이 잡다한 꾸밈들 없이 비물질적이고 미니멀하게 일어났다면 보다 강력했으리라.
난 새에게 커피를 주었다
2010 1028-1030
현대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젊은 연출가들이 펼치는 흥미롭고 다양한 형식 실험을 소개하는 [링키지 프로젝트]는 국내외 공연예술분야의 젊은 작가들이 드러내는 예술에 대한 독자적인 입장과 태도를 지지하고,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와 모색의 장을 젊은 예술인들에게 제공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2009년 연출가 이경성, 김철승 그리고 전자음악가 쟈크 풀랭-드니와 N2(남상원)가 작품을 선 보인바 있다.
2010년 프로그램
연출가 윤서비 [불안하다]
10월 18일(월)~20일(수) 8pm
연출가 이명일 [맥베스: 운명, 그 거역할 수 없는 힘]
10월 23일(토) 5pm, 8pm / 24일(일) 5pm / 25일(월) 8pm
연출가 김제민 [ 난 새에게 커피를 주었다]
10월 28일(목)~29일(금) 8pm / 30일(토) 3pm
포럼 CR 2
진행: 주일우 | 패널: 이상길, 조만수, 최재오
10월 30일(토) 4:30pm / L-space
‘가짜’를 위해 마련된 공간을 ‘진짜‘로 이용하려는 꿍꿍이
연출가 윤서비가 바라보는 ‘극장’이란 가장된 현실을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기 용이하도록 다른 불신의 여지는 검은 벽과 어둠으로 차단시켜놓은 집중도 높은 공간이다. 즉, 극장은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편리한 공간이자 시스템인 것이다. 윤서비는 그런 가장들이 지난 세월 동안 스스로 얼마나 지루해져 있는지에 대한 반성 없이 습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되는가를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대항해왔다.
신작 [불안하다]에서 주요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그 대항의 연장선이다. 그가 지난 몇 년간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의 연극에 주력해왔던 것은 완벽한 진짜 공간을 필요로 했던 것이고, 거기에 다시 정말 진짜처럼 보이지만 절대 진짜일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밀어 넣는 작업들을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는 가짜를 위해 마련된 공간을 진짜로 이용하려는 실험을 시도하고자 한다.
정보 더 보러가기
이경성
연출가 이경성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2007년 Creative VaQi를 창단, 현재까지 대표 및 연출가로 활동해 오고 있다. 극장공간과 텍스트 위주의 연극을 넘어 미디어, 설치미술, 무용 작가등과의 협업과 폐건물, 광장, 횡단보도 등의 삶 속의 공간에서 공연 만들기를 시도해옴으로써 보다 통합된 예술작업하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LIG 아트홀에서의 ‘움직이는 전시회’, 홍대앞에서의 ‘28“’, 광화문일대에서의 ‘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 에딘버러 축제에서의 ‘더 드림 오브 산쵸’와 같은 작품을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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