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6. 14:59ㆍReview
수면 위의 이펙터는 비상하는 물고기처럼
「aRing - MUNG」
글_ 나나기타
악기와 이펙터의 관계는 특별하다, 스테미너가 될 수도 있고 제우스가 번개를 치듯 스파크가 있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게다가 다양한 종류의 이펙터들은 락과 노이즈음악, 아방가르드 음악을 거쳐 클래식과 모던의 사이에서 새로운 음악적 장르를 개척중이다.
비음악적인 것이 더욱 더 음악적인 것으로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마치 누보 리얼리즘과 키치라는 팽팽한 줄 위에 서 있는 뮤지션의 작품이 단지 센세이션에 그칠지 여러 방면에 반영이 되어 영향을 줄지는 모르니까 말이다.
작가의 몸부림이 단지 시선을 위해서, 간단한 의도로 만들어낸 작품과 진지한 물음을 담은 삶의 근원적인 숙원에 대한 작가적인 의도가 담긴 작품은 충분히, 확실하게 다르다.
그 진지한 작품에는 위트도 유머도 해학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그럴 수가 없다. 왜 3끼를 먹어야하는지, 잠은 왜 밤에 자야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느끼며 나 자신을 왜 스스로 질책하고 비난하고 자멸해야하는지 그런 물음에 입가에 웃음이 일거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다.
마포아트센터에서 상연했던 ‘아링’의 ‘멍’은 후자 쪽에 속하는 진지한 물음이 담긴 미디어 아트의 작품 중에 하나였다. mung은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멍이란 증가적 변화를 더한 자기반복적 수행으로 원본을 분쇄한다는 전산학 용어다.
증가적 변화는 곧 소리와 음성을 이펙팅함으로써 작품의 진행,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자기반복적 ‘수행’이라는 것은 시간이 흘러가는 동시에 변해가는 자신과 이드 사이에서 고뇌하고 절망하고 주저 않는 독백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인간이 고뇌하는 모습을 화성과 이펙터가 만나서 현대음악이라는 클래식 끝의 장르에서 하나의 착오도 없이 작곡된 화성법이 수학적인 구조와 다양한 종류의 이펙팅으로 구현되었다 이는 곧, 전산학적인 결과인 것이다.
뒤틀린 중세의 복장을 보는 듯했다, 판타지와 그로테스크의 가운데에서 소프라노가 노래를 한다, 그 소프라노와 다른 소프라노가 노래를 주고받는다, 무대에 설치된 덤불과 같은 기하학적인 소품은 심경의 변화를 암시한다.
작가의 나레이션이 15개의 극와 극 사이에서 ‘이펙팅 모놀로그’가 된다.
리버브 후회의 증폭, 희망 없이 나락으로 팽개쳐지는 암흑과 같다. 리버브는 통속적으로 블랙의 성향을 가진다.
딜레이 반복적인 운율을 가진 나레이션을 계속 지연시킨다, 꿈속에서 도주하고 질주하다가 절벽으로 떨어질 때의 기분을 나타낸다, 수많은 자아 속의 이드를 잠시나마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링 모듈레이터 뇌에서 결정되어 성대를 거쳐 혀로 결정하는 언어적 표현에 대한 솔직함과 거짓 사이에서 작가는 피치(pitch)를 변화하며 진실을 회피하려 변명을 늘여놓는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속임수가 많아지고 말이 많아진다, 피치를 과도하게 돌리듯이.
페이져 자기성찰은 어리석음과 후회, 슬기롭지 못한 행동들을 어딘가에 태워 멀리 보내야한다, 마치 보잉 747의 엔진소리와 같이 하늘 높이 날아가 더 나은 내면의 성숙함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동서양의 노래꾼들이 우주 어딘가부터 찾아와 대기권에 진입하여 땅과 바다를 거치며 왜곡된 아트만과 아가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면 무용수들이 무대로 걸어 나오고 상반신이 뻥 뚫려있는 인형을 한 무용수가 들고 서서 오감각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오장육부가 사라진 인형, 심장이 없어서 마음도 없는 걸까. 까만 복장의 무용수는 텅빈 신체기관을 향해 손짓을 한다. 또 다른 나, 신체기관이 사라진 이드는 감정의 리듬도, 맥박도, 뜨거운 욕구도 담아 낼 수 없는 리비도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였다.
그 누가 옆에 있어도 소통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은 신문을 과장하게 펼쳐보며 페이지 넘기는 소리를 크게 내고, 아무리 달려 봐도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을거라는 비관적인 물음에 대해 무용수들은 몸짓했다.
작가의 나레이션 안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공포감, 이상적인 관계에 다다를 수 없는 불가능을 사회적이고 이데올로적인 모순을 향해 읊조렸다.
‘아링’의 ‘멍’이 세팅한 무대는 꿈과 기억 속의 어느 지점의 꽉 막힌 공간이다, 지옥이다 아니, 어쩌면 가장 상상력이 가득한 천국이다. 쉬어 갈 수 있는 곳, 행복한 시뮬라시옹이다.
독백의 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라고 생각한다. 부다는 독백 속에서 우주를 보았고, 그리스도는 희생정신을 전파했을 것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 도시 속 육체적 정신적 오염이 가득한 도시인들은 기계처럼 over표시가 나타나면 해독을 해야 한다. 그 해독이 또 다시 해독이 되는 일들이 반복되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지는 않을까 생각 한다.
그렇다면 과연 비극 끝엔 무엇이 있는 걸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부다의 깨끗한 정신으로 가는 길을 각각 알아보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끝을 멋있게 장식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복되는 예술에 대하여 신장르를 개척하는 일일 수도 있다,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어떻게 될지 하는 마음으로 !
2010 1103-1104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MUNG (전산학 용어): 증가적 변화를 더한 자기반복적인 수행을 진행하여 원본을 분쇄하는 행위.
사운드 아트란, 국내에서는 아직 관심을 받지 못하는 예술로 여겨지지만 미주, 유럽, 그리고 일본등의 나라에서는 수많은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점차 그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키고 있는 현대예술의 한 분야이다.
aRing은 사운드 다이어리 프로젝트의 첫 작품으로 2004년 국내 최초로 One Person Sound Realization &ndash 음반의 기획, 작곡, 연주, 녹음, 믹싱을 모두 혼자 진행 - 앨범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데뷔하였고, 이후 꾸준히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진지한 작업들을 묵묵히 진행해 왔다.
<MUNG>공연은 aRing의 두번째 무대공연작품이자 사운드 다이어리 프로젝트의 네번째 작품이 되며, 타이틀이 지닌 그 전산학적 의미가 상징하듯 총체극 <악몽樂夢>에 증가적 변화(incremental change)를 더한 자기반복적 수행(recursion)을 하는 것이다. 즉, 공연 <악몽樂夢>을 MUNG의 과정을 통해 분쇄시키면서 사운드 다이어리 프로젝트가 다음 작품의 세계로 진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나기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시 전공
텐더라인, 나나기타로 활동 중인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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