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7. 14:15ㆍReview
네가 그랬다고 나는 말할 수 있는가
공연창작집단 뛰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글_MJ
광대가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웃겨서 나도 같이 웃었다.
그러다가 나의 웃음을 멈추었다.
과연 나는 웃을 자격이, 웃을 자신이 있는가.
(Photo by 이승희, 이하 동일)
연극 어떻게 보셨나요?
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좋았다! 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연극이 안 좋은게 아니었다. 리뷰를 부탁 받은 입장에서 이걸 써야겠다 저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지 않아서, 또 한편으로는 어느정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시원스레 대답 못 드린데에 일단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내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그냥 그 이야기가 싫다기보다는 나도 참여지향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것이 나에겐 오히려 부끄러운 행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낙 우리나라에서는 예민한 주제이기 때문에 괜히 논쟁을 키우고 싶지 않아 피하는 편이다. 뭐, 우스갯소리로 대화에서 꺼내면 안 되는 양대 산맥이 정치 이야기, 종교 이야기 아니라던가. 그러기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거부감이 느끼지 않길 바랄 뿐이다–뭐 그렇다고 해서 특정인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압축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맥베드로 대표되는 욕망, 그중에서도 권력욕의 달콤함…하긴, 달콤하긴 하겠다. 전 재산 29만원만으로도 기초생활수급자의 몇 배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기도 하고, 당신네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을 한없이 높여 신격화까지 하며 위대한 지도자라며 칭송해주기도 하고, 뒤에서 아무리 욕하던 사람들이라도 자신을 실제로 만나면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해오니 말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난 상관이 없다. 내 머리에 올려진 왕관이 반짝거리는 만큼 나도 높아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민주주의가 우리네의 배를 부르게 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권력맛이 끝내줘요!’가 아니라 ‘그래서 너는 어떤데’하는 것이라고 나는 보았다. 모두가 권력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 당신은 맥베드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어떠한 집단의 대표로 나서게 되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할 ‘왕’이 될 자신이 있는가.– 당신은 어떠한 권력에 대해서 충분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뺨이라도 한 대 때려버리는가, 혹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며 자신을 정당화 하는가.
키보드로 나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쉽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생각의 쓰레기통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이 되어버린 인터넷의 자유게시판들을 보다가 보면 그렇게 할 말 들은 많으면서 정작 행동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나 싶다. 이렇게 비아냥거리듯이 말하는 나도 할 말은 없다. 당신에게 당신도 그렇지 않느냐며 질문을 던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글을 더 진행하는 것조차 민망하긴 하다. 나도 그러한 ‘키보드 워리어’들 중 하나이기에 가끔 글을 쓰다가도 이런 내가 한심해서 그만두곤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당신이 왕관을 쓰게 된다면? 당신은 맥베드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여타 독재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냐는 말이다. 답은 내가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겠지만 그게 굉장히 힘들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서로를 짓밟고 누군가의 위에 서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적 논리가 싫어 세워진 어떠한 사회. 모두가 평등해 지고 싶은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더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독재자가 실재함을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맥베드의 스토리를 그들의 방식대로 소화하여 다시 보여주던, 다소 간접적으로 권력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극 중간에 광대로 분한 배우는 우리에게 폭탄을 투하하듯 질문들을 마구 던진다.갑자기 나를 꼬집는다. ‘이 나라는 누구의 것입니까?’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자신들의 것이라며 대답은 할 수 있겠다마는, 대답을 자신있게, 떳떳하게, 너희 것이 아니라 내 것 혹은 우리들의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답에 대한 책임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 바로 옆에서 연주되는 욤프로젝트의 음악은 그런 나를 더 궁지로 몰아넣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극의 분위기를 맞춰줌과 동시에 어떠한 순간에는 극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음악은 ‘그래서 너는 어떠냐’고 보채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글쎄… 나는 어떨까.
극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너무 극단의 색깔을 입혀 간혹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있었다는 것과, 적극적이지 못했던 관객 참여 유도였다. 극이 시작하기 전에 웃으라고는 많이 강조했지만, 또 다른 참여를 부추기진 않았다. 극 중에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유도했다면 관객에게 극에 관하여생각할 여지도 많이 던져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제목을 떠올린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가 갖는 의미를 곱씹는다. 포스터를 보니 광대가 웃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이 미소가 아닌 조소로 느껴진다. 나는 왜 포스터 속에 있는 광대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가. 그리고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2010 1022-1031 대학로 게릴라극장
연출 번역 대본_배요섭
작곡 음악감독_ 욤프로젝트
맥베드를 비극적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가
‘맥베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한 작품이다. 비극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고귀한 존재가 비극적 결함(하마르티아)에 의해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뜻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권력을 탐해 덩컨왕을 살해한 맥베드가 고귀한 존재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숱한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 맥베드를 과연 비극적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권력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다. 맥베드에게서는 인류가 수없이 겪어온 수많은 독재자의 냄새가 난다. 뛰다의 광대들은 셰익스피어가 지운 핏자국을 따라가며 독재자 맥베드를 발가벗긴다. 이러한 폭력과 살인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져 온, 혹은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 중인 일이기도 하다.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존재, 광대
광대들은 경계에 사는 자들이다. 이승과 저승, 죽음과 삶, 현재와 과거와 미래, 고통과 쾌락, 선과 악의 경계에 산다. 연극적으로는 비극과 희극, 인물과 배우 그 자신, 무대와 객석을 넘나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하다>에 등장하는 광대는 한국의 광대와 서양의 광대를 넘나드는 ‘뛰다의 광대’이다.
국제광대워크숍과 Clown Macbeth
뛰다는 2005년 <노래하듯이 햄릿>을 만들면서부터 광대연기에 대한 훈련을 시작하였고, 매년 자체적으로 광대워크숍을 진행해왔다. 2009년에는 미국의 광대극전문가 Eli Simon 교수를 초빙하여 ‘국제광대워크숍’을 개최하였다. 이 워크숍의 발표회 작품이 'Clown Macbeth'였고, 이 작업이 <내가 말했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의 출발점이 되었다.
맥베드에 대한 광대놀음
광대는 극단적 리얼리스트다. 그래서 뛰다의 광대들은, 권력을 향한 투쟁을 일종의 악몽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있는 그대로 도려내듯이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광대는 무당이다. 귀신들이 무당의 몸을 빌어 말하듯, 광대의 몸을 통해 맥베드와 맥베드를 둘러싼 사건들이 쏟아져나온다. 관객들이 뛰다의 광대들을 만나는 순간 놀이터 같은 굿판이 시작된다.
MJ
외로워 할 줄 알고, 행복해할 줄도 아는 사람.
원래 걸어오던 길과 새로운 길을 만나 헷갈려 하고 있지만
워낙 새로운 것을 좋아해서 새로운 길에 홀딱 빠져버린 상태,
그리고, 그곳에서 당분간 안 나올 것이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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