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6. 00:40ㆍReview
외교마찰리뷰
상상만발극장 「아이에게 말하세요: 가자지구를 위한 연극」
글/그림_ 류호경
처음 연극 제목만 들었을 때에는 맘이 따스해지는 몰캉몰캉한 연극인가 싶었다. 하지만 설명을 보니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를 위한 연극이었다. 그리고 몇 달 전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를 향해 가던 민간 구호선박을 공격해 아홉 명의 사망자와 삼십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전혀 몰캉몰캉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에 대한 관심도가 상승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남서부 해안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해군이 출항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연극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들을 대하는 이스라엘에 관한 극이다.
우선 이들의 역사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터넷과 공연 리플렛 등 여기저기서 발췌해서 요약해봤다.
이 역사에 관해 아시는 분이나 읽기 귀찮은 분들은 건너뛰기...
(하지만, 모르면 알기 위해서, 알면 상기시키기 위해서, 혹은 다르게 알고 있을 수 있으니까 되도록 읽어보시길. 혹 잘못된 내용이나 반론이 있다면 댓글에 달아주시면 감사)
귀찮겠지만 외면하지 말공...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 기독교 성서에까지 이른다.
약 이천 년 전 유대민족이 로마에 점령당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근데 그들은 예수를 팔아먹고 죽게 만든 민족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던 지라 어디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유럽과 아랍 여기저기를 떠돌게 된다. 그렇게 설움당하며 그들이 택한 것은 생존을 위해서 지하경제(전당포, 고리대금업 등)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근데 이것이 판이 제법 커져서 거의 지하경제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니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샤일록도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이다. 돈을 갚지 못하면 살을 베어 가겠다고 했다가 피박에 광박에 독박까지 두루 쓴 지독한 캐릭터말이다.)
" 내가 좀 심했나?"
비록 영토가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민족이었지만 그들은 부로 쌓은 권력으로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다.(물론 누구에게도 고운 눈으로 보여지진 않지만...)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마침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이 지들한테 군자금을 밀어주면 이스라엘의 (이 천년 전의 성서에 기록되어있는!)옛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벨푸어 선언) 근데 영국은 프랑스와는 중동지역 분할 점령을 위해 비밀 협정을 맺고 아랍국가들에게는 반터키 봉기를 조건으로 독립국가 수립을 돕겠노라 하는 등(후세인-맥마흔 서한) 어느 쪽과도 양립할 수 없는 약속을 한다. 그리하여 집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점점 유입되고 극렬 유대 민족주의자들인 시오니스트들은 이천년간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해 살던 아랍인들을 무차별 살육하여 내몰면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분쟁이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세력이 약화되자 이 지역은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는데 아랍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시켜 국제 문제화 시키고는 두 열강과 이스라엘의 합작으로 팔레스타인의 동의 없이 분할하게 되는데 그나마도 팔레스타인에게 불리한 지역을 할당한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할아버지의 (확실치는 않아도 그렇게 추정되는) 땅을 되찾아 건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1948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두 민족뿐만 아니라 주변 아랍국가들과도 민족, 영토, 종교, 이권 등의 요인으로 전쟁과 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여기까지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역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
복잡하고 긴 역사를 요약하려다 보니 부족한 감이 있다. 좀 의심스럽다거나 관심있는 분들은 좀 더 찾아보시길...
배워서 남주기도 합시다
혹자는 유대민족이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아 독립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의 폭력성이다. (게다가 성서의 내용 중 그 땅에 관한 기록에 대한 부분은 현재 그 지역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고 연구 중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 핍박받고 영토 없이 떠돌아다닌 역사를 갖고 있었기에 한풀이 하듯 절차의 정당성 없이 테러와 암살 등을 일삼으며 건국을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그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살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공습을 하고 그들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계사의 수없이 많은 영토분쟁에서도 엄청난 유혈사태가 있었고 그 결과 지금의 국경이 이뤄졌으니 그런 과정의 현재진행이라고 보아야할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국제사회의 불편한 현실 중 하나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아, 열폭 할 조짐이 보인다. 진정하자. 내가 쓰려던 건 연극 리뷰였지.
자, 그럼 딱딱하고 불편한 국제사회 얘긴 그만 하고 공연 얘길 해보자.
음..근데 극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공연 얘기도 딱딱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무튼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출발...
사람들이 숨바꼭질을 하고있다. 모두 천진하고 즐거워보인다. 유태인 아이들인가보다.
처음엔 그들도 이렇게 천진한 존재들이었다
이들이 사라지고 영사막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사람들을 살육하며 그 땅으로 유입되는 역사가 흘러간다. 그 시간동안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흘러간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그 역사 속에서 성장한다. 배우들은 경직됐지만 복잡한 심경을 담은 표정으로 움직이고 카메라는 그들의 움직임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 스크린에 투사한다. 그런 방식은 인물들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자가하지 못할 잔인함이나 무신경함이나 불안과 욕망까지도...
"우리 땅을 되찾을 수 있다면..."
이스라엘인들의 이주가 시작된다. 이 장면은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며 장난감 자동차, 배, 비행기를 아이들이 갖고 놀듯이 표현했는데 무덤덤한 듯 하면서도 비장하고 결의에 찬 느낌의 노래는 이성이나 논리 인간애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을 듯하다. 장난감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가며 클로즈업한다. 영사막에 장난감들의 이동이 나온다. 생각해보면 장난감들이 배우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모습이 아이들의 놀이 같으면서도 비장한 결의 같은 것도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 장난감으로 표현됐지만 전혀 장난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무거운 분위기가 생성됐다. 아이들... 철없고 잘 모르는 그래서 더 무서울 수 있는 아이들... 또 그런 무서운 아이 같은 어른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주가 끝나고 일곱명의 배우들은 긴 탁자에 횡대로 앉고 각자의 앞에 한 대씩 카메라가 그들을 비추며 마음과 생각을 보여준다.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각자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비장한 말투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이는 최면이나 광기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기계처럼 냉담하게 말하기도 하고 침착하고 단호한 표정을 지어도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팔레스타인인들과 화합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 이의 말은 묵살되고 그는 매서운 눈총을 받고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는 이는 이제 대놓고 본심을 드러낸다. 평화의 빛이 반짝 빛나던 순간은 유성처럼 금세 사라지고 그 유성은 언제 다시 나타날지 요원하다.
그렇게 그들은 무섭고 답답한 이야기를 '그 애(she)'한테 말하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고통의 보상을 받고 우리 것을 되찾을 거예요"
배우들은 끊임없이 거짓말, 왜곡, 과장, 진실의 은폐, 폐혜의 축소, 피해의식, 자신들의 폭력에 대한 정당화와 합리화를 하고 배우들 앞에 놓인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을 부자연스러울만큼 커다랗게 영사막에 보여줌으로서 변명과 거짓말과 정당화하는 모습을 고스란이 보여준다. 그런 여과 없는 장면은 이들의 거짓행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숨바꼭질 이후 사용되는 카메라와 영상은 거짓말하는 사람들에게 휘말리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지 말고 그 사람들을 비추고 고발하는 진실을 규명하고 알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렇게 해서 진실을 직시하고 더 나아가 더 진전된 감정을 갖게 한다.
...
길지 않았지만 이런 고발과 진실에 대한 직시가 분쟁을 해결하는 첫발임을 주장하던 무게감과 깊이가 느껴지는 여운이 긴 공연이었다.
그나저나 우려하던 대로 딱딱하고 재미없는 리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만행은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현재 팔레스타인인들 거주 지역에 거대한 콘크리트 담벽을 둘러싸 외부와 인적 물적 교류를 차단시키는 공사를 하고 있다.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지역인데 두 지역 간에 이동도 거의 불가능하다. 같은 민족이지만 두 지역에 떨어져 살고 있다면 만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리고 연극의 배경이 되는 가자지구는 고립 정도가 더 심해서 일상생활도 힘들 지경이 되었단다. 이스라엘은 이들을 고사시키기라도 할 셈인가보다. 대체 이게 상식이란 게 있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일까? 하긴 멀리 볼 필요 없이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유야 좀 다르지만 물리적 거리가 더 가까움에도 같은 민족을 볼 수없는 상황이고, 그런 또라이짓의 쌍벽을 이루는 말도 안 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구나;;;;;;
아, 또 열폭하려고 한다. 여기서 그만. 내가 쓰려던 건 연극 리뷰였지.
사실 술은 도움이 안됨
2010 서울연극올림픽 공모선정작
상상만발극장 - 아이에게 말하세요: 가자지구를 위한 연극
2010 0930-1003 대학로 예술극장 3관
카릴 처칠 작/ 박해성 연출
이 작품은 전쟁과 폭력, 공포와 증오의 현상으로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분쟁 중의 하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현실을 외면하지않고 직시하는 것만이 평화의 시작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짧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국의 극작가 카릴 처칠(Caryl Churchil, 1938~)은 2009년 1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취재하고 돌아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공격으로 인해 벌어지는 그 곳 상황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응답의 의미로 '가자 지구를 위한 연극(a play for Gaza)'이라는 부제를 단 한편의 짧은 희곡 '일곱명의 유태인 아이들 (Sever Jewish Children)'을 발표했다. 공연의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이 폭력의 이슈를 전 세계와 공유하고자, 작가는 이 희곡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전 세계 모든 공연자들에게 저작권과 공연권을 열어두었다. 작가의 의도에 동참하고자 런던의 로열코트 극장 (the Royal Court Theatre)을 비롯한 영국의 3개 기관이 희곡 전문을 무상 배포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웹사이트와 인쇄물 등을 통해 확산됐고, 2009년 2월 6일 로열코트 극장에서의 초연 이래로 이 작품은 뉴욕, 런던, 텔아비브, 카이로, 몬트리올 등 세계 각지에서 각각의 문화와 언어에 맞는 형식으로 공연되어 뜨거운 반응을 만들어냈다. 작가의 뜻에 따라 입장료 대신에 모아진 기부금은 팔레스타인 구호기금인 MAP(Medical Aid for Palestinians)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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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류호경
"제 소개는 딱히 할 것이 없네요. 그냥 백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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