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2. 12:41ㆍReview
장성희 작, 최용훈 연출
세자매 산장
길을 잃은 역사, 길을 묻는 연극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네”
글_ 정진삼
존경하는 극작가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쓰신 <세자매 산장>이라는 작품을 보았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남산예술센터를 찾은 젊은 관객들과 중년의 관객들이 북적였습니다. 그 사이에는 저 자신도 끼어 있었지요. 한국의 근현대사의 굴곡진 사건을 여성적 시선에서 무대화 하는 기획공연이었고, 선생님을 비롯하여 김명화, 김민정이라는 걸출한 작가들로 구성되었더군요. 모두 인문학적 바탕을 갖춘 극작가 분들이라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제목부터 체홉의 향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벚나무 대신 전직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히말라야시다 나무가 동산을 뒤덮고 있었고, 모스크바를 외치는 세 자매 대신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하염없이 바라는 중년의 세자매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동백림 사건’ 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셨더군요. 동베를린의 음차를 받아쓰기한 ‘동백림(東伯林)’ 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자리처럼, 어색하고 떨떠름하게 느껴집니다. 1967년 분단 독일에서 체류하던 한국인들을 간첩으로 오인하여 고문하고 처벌한 사건은 요새 젊은 관객들에겐 생소한 역사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러했으니까요. 선생님께서 그런 점을 염려한 탓인지 작품에서는 시종일관 ‘동백림’ 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강조되더군요. 한쪽 팔다리를 못 쓰는 산장 지킴이 맏언니 서령과 개인 사업을 꾸리는 멋쟁이 둘째 채령, 그리고 건강 타령하면서 사찰에 드나드는 풍만한 몸집의 셋째 은령의 입에서 나오는 ‘오빠’ 와 ‘독일’ 이라는 말과 더불어서요.
어린 시절 오빠를 잃어버린 세 자매의 사연은 참 기구했습니다. 그들은 오빠를 추억하고,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고통을 부르짖었습니다. (심지어 오빠를 부정하고 희화화하기까지 이르더군요.) 이 모든 것이 국가에 의해 받은 억압의 후유증이겠지요. 저는 군부독재로부터 심각한 억압을 받지도 않았고, 또 오빠가 없어선지 자매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40년 전 헤어진 오빠가 여전히 마음속의 남아 큰 결핍으로 세 자매의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이 착잡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오빠의 빈자리를 채울, 후배 ‘종환’ 을 사랑스럽게 맞이한 것일까요.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녀들의 대체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젊지도 않고, 꿈을 품에 안은 유학생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민주화’ 와 ‘추억’ 을 밑천으로 중고품을 취급하는 현실적인 음반 오퍼상으로 그려졌지요. 중년의 중후함과 지적인 면모를 갖추었지만, 후에 주머니에서 나오는 전당포 딱지는 그의 추레한 삶의 뒤 켠을 암시하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은 일종의 후일담 형식을 통해 동백림 사건의 현재화를 의도하셨던 것 같습니다. 모든 역사는 현재를 반추하게 하는 해석과 재구성으로서의 기록이겠지요. 이를 이야기로써 들려주기 하는 것이 극작가의 임무일 테구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자매 산장>에서 들려주고자한 역사적 문제의식은 진지하게 전달되었으나, 연극미학적인 소통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연극의 많은 창작 주체 가운데서도 선생님을 수신인으로 택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대사’ 가 인물과 사건의 형성에 못내 아쉬운 바탕이 되어서일까요.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체홉’ 과 ‘멜로드라마’ 적 운영을 들여왔는데도 말이지요.
이 작품은 ‘부재’ 를 통해 ‘실재’ 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습니다. 첫째가 늘 유령처럼 불러대었던 옛사랑도 그러했고, 집 나간 나비도, 2층의 측량사도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실재가 없는, 실재가 아닌 ‘흔적’ 만을 붙잡고, 존재라고 믿는 인물들의 심리가 일관되게 드러났지요. 앙상한 뼈대만으로 실루엣을 살린 산장 형상과 간간히 들려오는 방울 소리, 그리고 오빠가 보내왔던 엽서들, 종환이 걸친 버버리 코트도 그 역할을 했습니다. 아마도 피해자 유족들이 느끼는 ‘부재’ 에 대한 허무함과 ‘동백림 사건’ 의 ‘실체 없음’ 에 대한 허무함은 조금은 비슷한 듯 다르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혼동하는 이들의 후유증은 심각합니다. 일에 얽매여있는 것 같지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고, 책임질 가정도 없지만 뭔가 죄책감에 휩싸여 서로를 구속하지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잘 알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모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무대화 되어 나타난 오브제들의 의미 읽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재와 실재, 허상과 실상이라는 이분법적 코드는 상징물로, 대사로, 인물의 심리로 여지없이 강조되고 또 반복되었지요. 그렇기에 저를 비롯한 관객들은 궁금했을 것입니다. 과거에 매여서 사는 저들이 실제로 욕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빈자리를 채울 무언가라면, 금전적 보상일까? 일상적 탈출일까? 삶의 안정일까? 저들은 독일에 가는 상상으로 부풀어 있지만, 실상 그 이후 아니, 지금의 삶에 대한 진의(眞意)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육체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이라는 자기애적 욕망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혹여 실수할까봐 주저하는 막내의 퇴행적 모습이 진솔하게 다가왔지요. 한편으로 그녀를 짝사랑하는 것으로 판명된 봉남의 너스레와 호기부림도 생생했구요. 이들의 중간적 삶의 양상은 경직된 다른 인물들의 모호함과는 상반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처럼 현대인은 점점 성장을 멈추고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지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사명감 때문인지 작품에서는 다채롭게 시대성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서부터 2010년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와 담론이 인물들의 말 속에서 판을 벌렸지요. “빨간 내복은 입지 않는다” 는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지구가 관광객들이 발로 굴리는 장난감” 이라는 표현의 글로벌리즘, 그리고 노마드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제시된 “나무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는 말까지 극의 지적인 측면을 확고하게 지지합니다. 상품화된 환경문제, 풀뿌리 민주주의까지 위협하는 지역개발문제, 청년 실업에서부터 증강현실의 스마트폰까지 한국사회의 여러 화두들이 빠지지 않았구요. 다만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거리두기 하려는 캐릭터들의 식자(識者)적인 언행이 오히려 공허한 잔칫말처럼 들려와 저로 하여금 몰입을 어렵게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귀 기울이게 되었던 말은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는 말러 가곡의 가사였지요. 제 나이 정도 되었을 법한 그 당시 유학생들이 조국의 닮은꼴로서 독일을 대하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래도 그들은 조국의 뿌리를 잊지 않고, 광부로서 간호사로서의 당시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통일 독일이 20년이나 지난 지금,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젊은이들의 현재는 어떠합니까. 무대 위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절절하게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지금 현실의 가혹함 때문에 옹졸해진 자신 때문일까요, 아니면 희박해진 역사의식 때문일까요.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찾았던 극장에서 오히려 소통을 외면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취업과 성공이 되어버린 현실이 서글펐습니다. 우리가 서있는 지금, 여기가 길 잃은 숲이 분명한 것이지요.
이 작품에서 제일 신났던 부분은 무대 위 인물들이 허상을 수행하는 놀이였습니다. 세자매는 실종된 오빠의 결말을 상상하며 퀴즈를 내고, 그런 오빠의 모습을 흉내 내지요. 오빠의 존재를 미화하지 않고, 금기되었던 ‘간첩성’ 을 드러냅니다. 자매의 일탈적 상상력이 곧 이들을 발랄하고, 생생한 ‘현대 여성’ 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선생님께 귀띔하자면 이들은 심각하고 진지할 때 보다는 놀고, 먹고, 수다를 떨 때 살아있는 인물 같았습니다. 더더욱 체홉의 분위기에 가까웠구요. 그리하여 이들의 여행을 박진감 넘치게 만들어주는 독일어 시간은 참 즐거웠습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지만, 한국 관광객을 수행하는 세자매에게 일시적인 해방감을, 관객들에게는 연극적인 재미를 안겨주었습니다. 택시 운전수의 삶 혹은 감자 깎는 삶으로, 앞서 언급되었던 오빠의 독일 생활이 그들의 가상 관광 속에서 연상되어 부재와 실재가 조화하는 광경이었지요.
이들의 수행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이들이 역사적으로 피해자의 유족들이면서, 동시에 회한의 삶을 사는 동시대의 ‘중년들’ 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늙는다는 것’ 은 유배된 삶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며, 고통의 과거와 결별하고 치유의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 한국사회의 중년들은 아마도 민주화와 산업화의 어두운 숲을 모두 헤치며 지나쳐 온 것일 테지요. 첫째가 요실금으로 걱정하는 모습과 독일 화장실 시설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이 산장 자리에 들어선다는 노인 휴양시설에 대한 언급은 ‘노년’ 의 실제적인 고민과 고충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이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것일 텐데 이러한 개인적인 추구와 오빠에 대한 추모가 극에서는 양립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상태로 드러났습니다. 한쪽 팔다리가 마비되고, 신경질적이고, 끊임없이 탐식하는 세자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병적인 모습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그 때문인지 병약한 주체들이 장악한 무대에서는 지난 세대의 건강한 표상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최근 남북관계 경색과 민주화 역행, 질주하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비(非)진보적인 세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극에서는 현실을 사는 인물과 인물이 사는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규명하고 보여주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작품에선 시대착오적 인식이 느껴졌습니다. ‘붉은 악마’ 현상을 경험하고, 능력제일주의 사회를 체감하고 있는 저에게 ‘빨갱이’와 ‘연좌제’ 등의 말이 아직도 유효한지 자문하게 되었고, 버버리 코트가 ‘메이드 인 차이나’ 라며 비웃는 봉남의 말에도 반응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국은 이제 초강대국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산장이 국유림에 지어졌다는 사실로 전해 듣는 대목에 이르면, 실체를 드러낸 이들의 허구적 욕망이 쓰라리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과연 정보화 시대의 ‘스마트폰’ 과 공존할 수 있는가를 의심케 합니다. 가장 컸던 의아함은 ‘이영’ 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현대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듯한 그녀의 형상화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동백림’ 을 검색하여 줄줄 읊고, 이를 자기와 상관없다는 듯이 떠들고, 아버지뻘 되는 종환의 무릎에 안겨 셀프카메라를 찍는 모습이 너무 위악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고모들의 독일행을 ‘빼앗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탐욕스런 형상화는 반성보다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표피적인 인물 구축은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할 수밖에요. 우리가 ‘동백림’ 이라는 역사를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지만, 이토록 강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소통의 단계를 앞서버린 연극의 강박적 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인물 형상화는 비단 극작의 문제만이 아닐 텐데, 선생님께 열을 내어 죄송합니다. 록펠러에게 우산을 내밀어 부자가 되었다는 소녀의 일확천금 사연까지 밝혀내는 극작가의 예리함에 감추었던 천박한 욕망의 속내가 들켜서일까요, 빈곤하게 늙어 간다는 것이 중년의 고민만이 아니라 청년의 고민 속에도 포섭됨을 한층 실감케 한 무대였습니다. 우리도 무분별한 탐욕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정받으며 살고 싶은 것이겠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종환은 가방을 바꾸고 독일로 돌아갑니다. LP판을 나이테의 비교하며, 늙은 예술가들의 저작을 읊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럽고 또 가련합니다. 그에게 카드를 건네주는 둘째의 모습도 딱하구요. 허상만을 좇으며 스스로를 유폐한 그들의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커튼콜 때 그들은 가방을 들고와 관객에게 작별인사를 하지만, 그들은 아마도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무를 것입니다.
여성의 시각에서 남성 중심으로 흘러온 역사를 되돌아보는 남산예술센터의 <공동연작 시리즈>는 여성과 중년에 대한 패배자적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 고통에 대한 슬픔을 설명했고, 트라우마를 강조했습니다. 때문에 세세히 공감하지 못한 저 같은 관객은 의문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극작가의식과 역사의식에 대한 의심은 아니오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 덕분에 여타의 어떤 작품보다 더 깊은 역사적 사유와 삶의 성찰이 가능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 혹은 전 세대들에게 동백림 사건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역사를 반영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연극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연극만세.
2010 남산예술센터 공동연작 프로젝트
2009년 <오늘, 손님 오신다>에 이은 공동창작 공연으로 올해는 최용훈 연출과 3명의 여성 극작가가 바라보는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흔적들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세 개의 다른 에피소드가 무대에 올려지는 연작 형식의 무대로 구성될 예정이다. 한국 현대사를 밀도있게 다루는 세 명의 여성 작가의 시선과 중견 연출가 최용훈의 통찰력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시대 역사의 단편들을 재구성하여 현재적 삶의 근원을 연극적으로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세자매 산장
장성희 작, 최용훈 연출
2010 1108-1111
부모가 유산으로 남긴 오래된 산장과 히말라야시다 숲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자매 (서령, 은령, 채령) 는 국비장학생으로 독일 유학중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행방불명된 오빠 창령이 돌아올 것을 믿으며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창령의 대학 후배 종환, 산장 근처에서 뽕나무 사업을 하고 있는 봉남이 그들의 산장을 찾아오고, 최근 주변지역 개발 소식과 함께 그녀들이 속한 지역의 지적도를 새로 작성하는 측량사가 산장에 묵게되며 그녀들이 살아온 땅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데 ... 40여년간 준비해온 베클린 여행, 과연 이번에는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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