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갑고도, 따뜻한 : 차지량을 인터뷰하다

2012. 12. 18. 10:35Review

[Voice+Text interview]

차갑고도, 따뜻한

차지량을 인터뷰 하다

 

말+글_전강희

 

프롤로그 

 

▲인디언밥 http://indienbob.tistory.com/149 "스페이스 캔 옥상낭독"

 

1. 많이 들어보신 질문일 것 같은데, 차지량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본인의 이름을 좋아하시나요?

현재 나의 이름을 좋아합니다. * 알 지, 밝을 량

'밝은 것을 알아가라'의 뜻으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빛과 관련이 있는 이름의 의미가 때로는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밝기를 아는 것은 밝음과 어둠을 선택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2.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다양한 분야의 각기 개성 있는 사람들이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한 인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뉴홈>에서 그랬습니다. 직업, 취미, 옷차림새가 달라도, 어디에서 살 것인가와 같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비춰주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뉴홈>은 '도시계획에 관여하지 않은 세대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여 뉴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이므로 어떤 공통적인 사회적 함의를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젝트 참여는 먼저 (온라인)공지를 통해서, 동의-응답 형식으로 참여대상을 만나고, 이들을 (온라인)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현장으로 초대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뉴홈>의 공지는 주거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온라인)커뮤니티 및 포털사이트의 하위채널과 SNS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인디언밥 http://indienbob.tistory.com/592 "뉴 홈"

 

3. 저는 개인적으로 차지량씨의 작품을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슬퍼진다고 해야겠어요. 그런데 이 슬픔은 고전적인 연극에서 말하는 관객을 정화시켜주는 작용을 하는 카타르시스는 아닙니다. 정화라기보다는 몇 날을 더 슬프게, 우울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인지해 오고 있던 나의 현실을, 차지량씨의 작품을 경험하고 나면, 피부에 닿는 것처럼 생생하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작품을 쉽게 떠나보낼 수가 없어요. 이 작품들을 만드는 예술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 낭독회에서도 언급한 이야기지만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몇 년(3,4년)을 싸우듯 살았다. 언행이 폭력적이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속에 폭탄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함께 생존하고 싶었고, 전복시키고 싶었다.' 최근 저의 작업에서 우울한 잔상이 오래 머무는 이유는 삶도 더욱 잔혹해지고 우울해지기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살고 있는 삶은 그러한 듯합니다.

 

4. 지난 9월에 있었던 낭독 공연 <점점...사라질거야>를 보고나서 <뉴홈>과 <일시적 기업>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시스템의 틈새들. 자본주의 체제 안에는 무수한 틈새들이 있습니다. 차지량씨의 작품들은 이런 틈새들을 배경, 또는 소재로 삼고 있는데요. 어떤 때에는 이 틈새들마저도 견고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차지량씨가 생각하는 시스템과 틈새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시스템이 견고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 동시대 시스템의 프로파간다(선전물)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시스템은 그 안에 있는 내부자에겐 무조건적인 긍정의 것이며 유지해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자리한 시스템들에선 더욱이요. 시스템에겐 스스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일 테니까요. 틈새는 이러한 표면적인 읽힘이 시스템 자체의 상태나 그것이 미치는 영향과는 무관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 틈새는 시스템 내-외부자 혹은 매개자 모두가 사용 가능한 어떤 창구일 수 있겠죠. 저는 제 작업에서 시스템에 영향 받는 사용자, 내-외부자가 틈새를 찾아내고, 이 틈새를 통해서 시스템이 스스로 환기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5.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작품의 방향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참여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상처 받지 않길 바랍니다.

 

▲인디언밥 http://indienbob.tistory.com/372 "미드나잇 퍼레이드"

 

6. 저는 전공이 연극이다 보니, 완벽한 대본이 없는 상황에서 공연을 만들어 가는 것 자체가 참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공연을 기획하는 단계가 궁금해요. 오랜 시간 세심한 공을 들여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현장성이 중요하니까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고립된 시스템을 겨냥하는 개인'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2009~)하며, 참여라는 행동경험을 통해 작업 안에서 불특정다수가 묶이거나 흩어져서 스스로 발언하는 구조가 갖게 될 충돌과 변화를 함께 실험한 것 같습니다. '겨냥'이라는 말에는 공격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작업을 반발적인 화법으로만 만들어내진 않습니다. 반대로 체념적이지만 동시에 어떤 욕망을 드러낸 극대화된 시각화와, 이를 통해 드러나는 폭력성(시스템에서 영향 받은 개인)과 폭발성(지속적인 영향에 따른 내재된 개인의 상태)을 생각해 보며 아무것도 헤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여 사용하곤 합니다. 왜 그 시스템을 겨냥하고 있는가를 발견하고 대화를 나누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현장 안에서의 그 순간만일 수 있는 대화를 위해 긴 시간 기획-준비하고 예민하게 행동합니다.

 

7. 해외에 나가면 무슨 일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육체적으로는 삶(생활)의 지속성에 대해 노력하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생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하고 싶습니다.

  

▲인디언밥 http://indienbob.tistory.com/291 “세대독립클럽' 프로젝트 다이어리"

 

8. 차지량씨가 생각하는 미적인 것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원래 예쁘고, 아름다운 것, 정교한 테크닉이 뛰어난 것,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장인에게서 감동하기도 하지만, 예술가에게서 더 큰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예술가의 태도, 세상을 보는 눈, 깊은 여운 이런 것들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장인의 경지를 넘어선 예술가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소수이거나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낸 사람들이겠지요. 젊은 작가 차지량의 미적 취향, 예술관을 듣고 싶습니다.

제 삶에서 가까운 곳을 응시해 봅니다. 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일상인이자 저마다의 성향을 갖고 있는 개인. 그들의 개인성이 무너지고 불합리함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갈증은 한데 묶여 층을 이루고 있다고 할 만큼 시각화가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시적 기업>에서 취업 문제로 나오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행동, 감정들, 또는 <뉴홈>의 주거 문제 때문에 표면화되는 혹은 두드러지게 시각화되지 않았을지라도 감지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이 지점은 한국사회에서 어떤 커뮤니티화가 가능한 선명한 영역이었습니다. 다수의 산발적인 이야기들을 온라인에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적인 공간이 부족한 현대인은 현실에서 느끼는 불화를 온라인이라는 풀리지 않는 저장고에서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는 상황에서 가상성과 상상력은 발휘되기 힘든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90년대 중반부터 온라인에 일찍 노출되어 집중하고 살았던 경우였는데 이 경험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적용된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든 정체되고 구석진 불편한 영역에서 활성화된 에너지의 움직임이 지속적인 관심사인 것도 같습니다. 오프라인 상에서의 에너지의 움직임을 온라인상으로 확장 또는 변형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온라인 역사는 일상의 확장정도로 기능해왔습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 10년 기업화를 이룬 포털사이트와 인터넷실명제 덕분이었죠. 다른 질서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배제한 채 우리는 일상의 질서 안에서 온라인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 점은 일상의 확장과 연결되었고 정부의 법적조망과 사적영역이 애매모호하다는 논쟁만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온라인의 탄생은 가상세계의 가능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립된 시스템으로 굳어진 온라인의 거대한 영향력들은 상상력을 제한합니다. (환각적 서비스만 늘리고 있지요.) 저는 그 지점을 미약하게나마 차츰 넓히는 과정들을 진행했었고, 그 결과물들은 온라인이 현실세계의 확장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펼친 프로젝트들이었습니다.

작가의 역할이 도시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듯이 저의 작업 자체가 대안으로서 기능할 목적은 없습니다. 작업이 하나의 삶의 화법을 발견해 내어 이를 타인의 삶에서도 나눌 수 있는 창구로서 기능한다면, 작가는 더욱 다채로운 삶의 샘플을 제안(혹은 도발)하여 유쾌하거나 불쾌하게 대화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이 참여를 통해 유연함을 지닐 수 있기 위해서는 행동경험의 사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질 삶을 기대하게 합니다.

 

▲인디언밥 http://indienbob.tistory.com/617 "옥상과 영상전3 : 점점(..) 사라질거야"

 

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 주세요.

개인의 역할을 무겁게 하는 사회에서 동일한 화법으로 일상의 개인을 (작업을 통해)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이 없어질 만큼 삶의, 생의 평온함이 찾아올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그것을 희망해 봅니다. 하지만 잔혹한 사회의 생존경쟁 화법을 이어받아 잔혹할 수밖에 없는 인류가 멸종하는 것을 상상으로 시스템에 전해주고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라지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본 인터뷰는 전방위 문화잡지 <칸투어Contour>와 공동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사는 2012년 가을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_winnie

 소개_읽고, 보고, 쓸 수 있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