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착한 사람 찾아 나서는듸" - 이자람 「사천가」

2009. 4. 10. 14:06Review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착한 사람 찾아 나서는듸"

  • 김해진
  • 조회수 547 / 2008.07.18




이자람의 <사천가>가 지난 4일(금)부터 6일(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됐다. <사천가>는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첫 번째 공연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사천의 선인(Der gute Mensch von Sezuan)>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판소리 공연이다. 판소리로 브레히트를? 혹시 졸음이라도 오면 어쩌지? 판소리는 잘 모르겠고 브레히트는 뭔가 멀게 느껴지던 어느 오후, 그런데도 공연을 보러 나섰던 것은 ‘모르겠고 멀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미지의 영역이라는 감(感)이 왔기 때문이었다. 관객으로서 본 적 없는 풍경을 탐험해본다는 것은 분명 신나는 일이다.

 

세 명의 배우가 먼저 무대에 나와 성큼성큼 크게 걸으면서도 툭툭 잠시 정지하는 리듬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마치 거인의 걸음걸이처럼 느리면서도 무게가 느껴졌다. 지상에 내려온 세 명의 신(神)을 맡은 배우들(권택기, 이소영, 이윤정)이었다. 소리꾼 이자람은 한복 대신에 다소 탁한 색감의 긴 치마와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 반짝이는 소재의 웃옷을 겹쳐 입고 올려 묶은 머리에 젓가락 같은 붉은 머리장식을 찔러 넣었다. 무대 오른쪽에는 북, 윈드차임, 베이스, 장구, 각종 타악기 앞에 선 악사들(장혁조, 이향하, 신승태)이 보였다. 악사들은 공장 작업복처럼 위아래가 하나로 붙은 청색 의상을 입었는데, 이후 식품공장의 공원으로도 활약하기 때문이다.

 

<사천의 선인>에 나왔던 셴테는 순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사촌오빠 슈이타는 남재수로 바뀌었다. 담배가게는 마음분식으로, 담배공장은 사천식품 식품공장으로, 셴테가 사랑에 빠지는 비행사 양순은 소믈리에 견식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시대는 바야흐로 시끄럽기 그지없는 21세기 한국. 중국의 사천은 이제 ‘착한사람 찾기’가 벌어지는 2008년 혼란의 도시로 점프한다. 사천을 방문한 세 명의 신이 맞닥뜨린 것은 ‘부엌 위에 부엌 있고 부엌 아래 부엌 있는’ 높디높은 탑골팰리스. 탑골팰리스를 묘사하며 미끄러지듯 귓속으로 들어오는 노래가 흥을 돋운다.

 

 

 

아닌게 아니라 <사천가>는 현재 한국사회의 곳곳을 꼬집는 노랫말로 속을 시원하게 한다. “때는 배고픈 신신자유주의, 차디찬 실용주의 시대로구나”, “아아아, 정말 아름답구나. 착한 얼굴 착한 몸매 착한 사람이 분명쿠나.”, “제 방이 쪽방이라 좁고 누추해요”, “미분양 아파트 넘쳐나도 내 몸 뉘일 곳은 없어요.”, 서로 양보한다는 내용의 자동차 보험광고를 패러디한 신들의 노래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착하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절도 새로 짓고, 교회도 새로 짓고, 세상은 아들들 꺼야~!”, “막막한 현실이야, 착하게 사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 줄이야”, “저 사람들 사상이 의심스럽구만! 당신들 배후세력이 누구야?”

 

극장 곳곳에 매달린 따뜻한 색감의 전구를 바라보면서, 막 뒤에서 와인을 마시며 춤추는 그림자들을 보며, 새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드라이아이스 속에서 우스꽝스럽게 등장하는 대책 없는 신들을 보면서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착하다는 말이 기분 나빴던 적은 없었는지. 몸매 좋아 착하고 돈 많아 착하다는 이 세상에서 태도와 마음가짐을 근거로 착하다는 말을 전할 때, 그것이 참 힘없는 말이라고 느껴질 때는 없었는지. 사회 속에서 요구하는 미덕은 경제 현실과 거리가 멀고 ‘살아야한다’는 목적의식이 팽배한 이 시대의 구호에는 살아가는 과정과 방식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다. 동전의 앞뒤 같은 순덕과 남재수의 활약은 그래서 ‘무엇으로 착함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자람은 여러 인물을 능수능란하게 바꿔가며 열연한다. 관객들은 자주 웃고 박수치고 추임새를 넣었다. 판소리 <사천가>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판소리가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 게 반가웠다. 지금도 팸플릿에 실린 공연 대본에서 중모리, 아니리, 자진모리, 휘몰이, 진양 등 여러 장단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드렁갱이, 단중모리, 엇중모리, 동살풀이 등 이름 자체만도 재미있다. 다시 그 장단들이 궁금해진다. 진득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몸의 자세, 얼굴 표정에 따라 달리 뿜어져 나오던 소리는 한번 따라 불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할 만큼 생기가 있었다. 전통 판소리의 규칙과 멜로디를 활용하면서도 기타, 쌈바 리듬 등을 접목시키고 현재 한국사회를 반영한 가사로 창작해 신이 난다. 2007년 정동극장 초연 때보다 대본과 음악이 상당부분 수정되었다고 한다.

 

 

스페이스111의 기둥도 인물로 활용되고, 이소영, 이윤정, 권택기는 느긋하게 무대 전체를 휘감다가 은근슬쩍 사라지곤 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무조건 참는 사랑이 진짜 착한 사랑’이라는 신들의 고리타분한 대사가 메아리로 울리며 웃음을 자아낸다. 신들의 허수룩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신과 인물들이 자극하는 현실감각이 실하다. 눈빛을 주고 받으며 호흡을 고르는 악사들의 연주가 판소리에 윤기를 더하는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혹자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서 왜 이자람의 <사천가>를 다루는지 심드렁한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행보가 스승에게 사사한 것(특히 그 계보의 문화가 엄격할 것이라 짐작되는 판소리계에서)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반가움을 표하고 싶다. 독립예술의 ‘독립’은 자본, 프러덕션 안의 권력관계, 공고한 가치체계, 고정된 사고방식, 획일화된 이상향, 불합리한 삶의 풍경 등 수많은 것들로부터의 독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나는 자꾸 ‘예술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게 된다. 발언하지 않는 예술, 타협하는 예술, 박제된 예술, 대화하지 않는 예술로부터 창작자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이란 어떤 것일까. 만나고 헤어지고 섞이고 가로지르는,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떠한 제약에도 저항할 힘과 의지가 있는 주체적인 비(非)-영역으로서의 독립예술이 긍정의 활기를 띠기 위해서 보다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며, 힘을 모으고 싶다.

 



 

보충설명

<사천가>를 만든 사람들

원안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천의 선인>
작/작창/음악감독 이자람
연출 남인우
드라마터지 최예정
소리꾼 이자람
배우 권택기, 이소영, 이윤정
연주 장혁조, 이향하, 신승태
무대디자인 원여정
의상디자인 강정화
조명디자인 우수정
조명오퍼레이터 이현지
조연출 김유진, 성나리
제작 두산아트센터

이자람은 <사천가> 공연을 계기로 판소리 만들기 ‘자’를 결성했다. 연출가 남인우, 드라마터그 최예정과 함께 새로운 판소리를 여럿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판소리 만들기 ‘자’의 ‘자’는 시작을 알리는 감탄사이고, 무엇인가를 함께 해보자는 말의 어미이다. 휴식을 뜻하는 자다의 어근이기도 하고, 영어표기인 ZA는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 Z에서 첫 글자 A까지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 이상 팸플릿 참고
* 사진제공 - 두산아트센터



필자소개

글쓴이 김해진은 극단‘목요일오후한시’ 단원.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re를 한다.
grippen@hanmail.net
http://blog.naver.com/su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