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명랑한 비행 시뮬레이션 - 「바람공항-꾼들의 전쟁놀이」

2009. 4. 10. 12:40Review

명랑한 비행 시뮬레이션

- 「바람공항-꾼들의 전쟁놀이」


 

  • 김해진
  • 조회수 524 / 2008.05.29
 


 명랑한 비행 시뮬레이션



극장에 들어섰는데 20673편 비행기 안이다. 속속 도착한 관객들은 비행기의 열린 기계실과 마주한다. 고개를 들면 비행기의 창문이 보인다. 배우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객석쪽으로 시선을 뿌린다. 그러면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기계실에 있는 것 같다가도 공중에 있는 셈이 된다. 공중의 감각, 공중에 떠오른 비행기, 공중을 휘젓는 상모놀이, 이륙하고 유영하고 착륙하는 비행의 감각은 지하 극장의 공간을 위로 위로 떠오르게 한다.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LIG아트홀에서 <바람공항 - 꾼들의 전쟁놀이(이하 바람공항)>가 공연됐다. 신예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LIG아트홀의 ‘팝줌(POP ZOOM)' 지원프로그램의 하나였던 이 연극은 극장 공간이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다고 상상하게 만든다. 스크린과 비행기 기계실 내부가 함께 배치돼 있고 무대 2층 오른쪽에는 악사 최영석이 자리하고 있다. 배우 문정수, 김완, 송은주는 곳곳을 부지런히 휘돌아다닌다. 무엇보다 이들이 더불어 공간을 장악했을 때 순간 극장은 마치 관객들을 데리고 정말 이륙할 것처럼 묘하고 색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추진의 원동력은 역시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배우들이 무대에 들어섰을 때 처음 눈에 띈 것은 한 배우 등에 남아있는 부항 뜬 흔적이었다. 격렬히 몸을 쓰는 공연일 거라고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우들은 달리고 점프하고 구르고 팔을 뻗고 다리를 차올리면서 쉴 새 없이 재주를 펼친다. 1층과 2층을 잇는 기다란 봉과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배우들은 계속 바쁘다. 상모놀이도 하고, 버나돌리기(접시돌리기)도 한다. 상모놀이에 쓰인 흰색 끈은 공기중에서 빠른 속도로 휘돌 때 접혔다가 좌라락 펴지는 소리가 났다. 재미난 소재였다.


돌고 돌고 또 휘도는, 휘몰아치는 이미지. <바람공항>에서 운동하는 이러한 심상은 공연에서 주요 엔진의 역할을 담당한다. <바람공항>에서 ‘이야기’는 운동하는 이미지를 적절히 담을 만큼의 얼개만을 갖추고 있는데, 바람결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요사이 비행기가 정체모를 바이러스 때문에 추락하곤 한다는 것, 쌍둥이 형제가 어릴 적부터 파일럿이 되는 게 꿈이었다는 것, 군대에서 빠른 시간 안에 기기를 정비하는 등 남달리 기계를 잘 다룬다는 것 등이다. 여기에 덧붙어 지나가는 스크린의 영상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비행설비 사진, 최초의 비행 기록, 배우들이 바닥에서 누운 채로 움직이는 모습을 천정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이재욱의 영상 등이다.(아래 비디오 클립 참고) 이재욱의 영상 속에서 마치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듯한 배우들의 움직임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아련하다. 





간략한 이야기 얼개 속에서 ‘비행기’라는 이동하는 장소, ‘꾼’들이 놀이한다는 약속, ‘놀이’의 힘, 격렬히 움직일 때마다 흩뿌려지는 땀이 생생하다.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큼 비행과 관련한 이미지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가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동시에 어머니 뱃속에서 쌍둥이가 느릿느릿 엎치락뒤치락 하는 장면도 공중을 날아가는 ‘비행기’라는 장소와 퍽 잘 어울린다.


공중의 놀이에서 전체를 가늠하고 조율한 이는 악사였다. 1층 무대에서 한참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도 자주 2층의 악사석으로 눈이 갔다. 비행기 조종사의 복장을 하고서 때때로 지나가는 인물이 되어 연기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추임새를 넣기도 하는 이 악사는 연기, 전통연희, 영상이 고루 섞이도록 서로의 속도를 살피고 있었다. 배우 송은주 역시 시원스레 노래를 부르고 맹랑하게 일인다역을 소화하며 비행의 방향을 조절했다.  


‘바이러스’로부터 보다 현실감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아서 기대를 품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놀이꾼들의 힘이 달리는 게 보일 때는, 배우들의 재주를 돕는 다른 장치들이 더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꾼’들의 놀이에 힘입어 비행기는 마침내 무사히 착륙한다. 기계실의 문을 열고 나가는데 다시 문이 닫히려고 하자 순발력있게 손으로 탁 막아세우는 배우!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놀이하는 이들과 함께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지상의 안개와 맞닥뜨렸을 때, 사내들의 성장 시뮬레이션에 기꺼이 동참했음을 알게 되었다. 한껏 놀이하다가 기계실 문 저 너머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사내들이 명랑하다. 

 

보충설명

<바람공항 - 꾼들의 전쟁놀이>를 만든 사람들

공동연출 이재욱, 문정수
출연 문정수, 김완, 송은주
음악감독․라이브 연주 최영석
무대디자인 김인남
영상디자인 이재욱
조명디자인 이동진
공동제작 LIG아트홀, 이프프로젝트

* 이상 팸플릿 참고
* 사진제공 - LIG아트홀(www.ligarthall.com)
* 동영상제공 - http://videopod.tistory.com/375

 

필자소개

글쓴이 김해진은 극단 ‘목요일 오후 한 시’ 단원.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re를 한다.
grippen@hanmail.net
http://blog.naver.com/suna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