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랑과 교육>, 김란 +박슬기+송성원

2014. 9. 10. 21:38Review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4

어떤 에너지에 대한 탐구

<사랑과 교육>, 김란 +박슬기+송성원

 

글_K

 

 

연극을 서사 덩어리로만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연극을 단순한 정통 희곡의 재현 상태로 단언하는 기존의 방법론에 기인한다. 이 경향은 포스트 드라마의 출현 이후에도 당분간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연극을 보며 사건의 인과 관계와 인물의 성격 구축을 따지기 바빴고, 그것이 상식적인 감상법이라 믿었다. 하지만 구태여 포스트 드라마의 이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연극을 플롯과 캐릭터로만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절망적이다. 연극은 시각성과 운동성, 그리고 현장성을 모두 내포한다. 작금의 연극은 서사를 해체하는 것을 넘어, 관객의 눈 앞에 생동하는 에너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14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김란+박슬기+송성원의 팀 이름으로 선보인 <사랑과 교육>은 젊은 작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랑과 교육>은 미겔 데 우나무노의 소설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 연극은 기존의 숱한 연극이 채택하던 ‘텍스트 낭독’의 형식이 아닌 호흡과 몸짓, 리듬을 통한 ‘에너지’의 형식으로 무대에 선다.

 

 

 

 

무대 위에는 작은 의자 몇개가 나열되어 있다.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것은 무대를 인식론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해석이다. 무대의 존재론적 성질에 조금 더 주목하면, 밀도 높은 연극 에너지가 온몸으로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사랑과 교육>은 관능적이다. 배우들은 야수와 같은 몸짓, 광인에 가까운 발성을 분출한다. 하지만 우리는 관능적인 상태와 게걸스러운 상태를 구분해야 한다. 어떤 연극은 관능적인 체를 하며 배우의 몸을 지난할 정도로 소모한다. 그러한 연극은 배우의 조형적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며 관객에게 구걸을 시도한다. 행인은 걸인에게 시선을 집중하지만 그것은 사디스트적 욕망의 발현일 뿐 미학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과 교육>은 다르다. <사랑과 교육>은 배우를 영매로 만들어준다. 배우는 강도 높은 신체 활용을 시도하나 그것은 절대 소모되지 않는다. 그들의 몸은 관객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주술적 의미로 활용된다. 마침 그들의 의상도 형광이거나 원색인 것이 많아 생동감이 더해지는데, 이는 단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사랑과 교육>이 가져오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사랑과 교육>에서 반복되는 대사에 주목할 수 있다. 그들의 대사 사이에는 리듬이 존재한다. 배우들은 아무렇게나 대사를 뱉는 듯 보이나, 각 대사는 규칙적인 공백을 형성한다. 어머니(김수아 분)의 자장가라든가, 아버지(이종민 분)훈계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아버지의 끊임없는 훈계는 <사랑과 교육>의 주제의식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미겔 데 우나무노의 원작 <사랑과 교육>은 현대의 기계적이고 집착적인 교육과 이성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아버지의 천재 만들기 계획’에 희생된 아이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이성’을 맹신하며 아들을 기계적 천재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성’을 맹신하는 태도는 그리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지능은 선형적 1차 함수의 형태로 누적된 값을 띠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변수가 결합하여 다중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지능의 적합한 향상을 위해서는 인간친화지능이나 신체지능, 언어지능이나 수리지능에 모두 신경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과 감성은 특정한 것이 우위를 점하는 형태가 아닌 상호텍스트적인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서구의 개발만능주의는 이성만이 독보적인 지능이라는 오해를 낳았다. 극중에서 아버지의 훈육도 그러한 개발만능주의적 논리를 따른다. 아버지는 아들이 시를 읽거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지식의 누적 과정에 방해가 된다고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대사는 광인의 발성에 가깝다. 과장된 목소리와 말투로 인해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느 순간 관객은 그의 대사가 가지는 텍스트적 의미가 아닌, 그의 대사가 빚어내는 공명에 집중한다. 이성을 끊임없이 부르짖는 아버지의 대사는 어느 순간 무서운 메아리가 된다. 미겔 데 우나무노의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발성의 형태만으로 아버지의 외침이 얼마나 공허한지 전달이 가능한 것이다.

 

 

 

 

아들(장율 분)은 끊임없이 생물의 생식에 관한 텍스트를 읽는다. 이는 아버지가 가장 우려하고 금기시하는 ‘사랑’의 문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관능적인 이웃집 소녀(박미르 분)나 남성성을 과시하는 이웃(류기산 분)의 출현 역시 마찬가지다. 이웃집 소녀는 해맑고 관능적인 태도로 무대를 헤집고 다닌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야릇하게 웃기도 한다. 미동 하나 없이 깔끔하던 아들의 삶에 강력한 에너지가 파고들어 오는 순간이다. 아들은 소녀를 만난 후 텍스트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의 증상이다. 이 지점에서 <사랑과 교육>의 미덕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연극이나 문학, 영화에서 ‘사랑’은 낭만을 부추기거나 비극을 불러오는 촉매제로만 기능했다. 그것은 서사를 전개시키는 기계적인 장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랑과 교육>은 사랑을 보다 물리적으로 해석한다. 아들이 사랑에 빠진 다음 많은 것이 변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서사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로 변하는 것은 아들의 목소리와 눈빛, 발성과 호흡이다. 물론 대부분의 기존 텍스트도 ‘사랑’이라는 변수를 접할 시 배우에게 발성과 호흡의 변화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 이야기’에 대한 부연의 장치일 뿐이었다. <사랑과 교육>은 발성과 호흡의 변화가 텍스트보다 우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그렇다면 무대 위 에너지가 극점에 달하는 순간에 <사랑과 교육>은 어떤 전략을 택할까? 남성성을 과시하는 남자 배우와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난 아들의 결투 장면은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이 장면은 ‘결투’라고 호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일반적 결투 씬에 비해 과장되고 코믹한 요소가 많다. 엄밀히 말하면 코믹극과도 차별화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아들을 때리는 순간과 아들이 아파하는 순간은 모두 묘하게 어긋난다. 남자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방향과 아들의 몸이 움직이는 방향 역시 마찬가지다. 큰 그림 안에서는 어긋남이 없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게 맞지 않다. 이처럼 <사랑과 교육>은 ‘신체 폭력’처럼 리얼리티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편집한다. 아들과 소녀, 아들과 청소 노동자가 신체적으로 교감하는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연극은 온갖 자극적인 요소를 도입하지만, 무대 위 에너지가 극점에 달하는 순간만큼은 직설 화법을 포기하고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아버지의 이성만능주의적 교육관에 대한 하나의 비판이 된다. 이성과 실재성만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감정보다는 실제로 만질 수 있는 인식론적 매개체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교육관과 이 연극이 궤를 같이 한다면, 이 연극은 가장 자극적인 장면을 적나라하게 제시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랑과 교육>은 의도적으로 그 모든 재현을 피했다. 이는 <사랑과 교육>의 주제의식을 알레고리적으로 나타낸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전략을 실험성에 기대어 읽어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이 연극이 젊은 작가들의 실험을 촉구하는 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연극의 질감 자체가 기존의 형식을 답습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한 실험의 관점에서 <사랑과 교육>을 전략을 해석할 때, 앞서 언급한 장면들은 기존의 연극 방식에 대한 저항으로도 읽힌다. 울분이나 분노를 텍스트의 순서에 맞추어 낱낱이 재현하는 것만이 ‘연극적 훌륭함’이라 믿는 어떤 경향에 맞서, <사랑과 교육>은 전혀 다른 시도를 한다. <사랑과 교육>은 관능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지는 부분에서는 더욱 관능적이기 위해 애쓰고, 가장 긴장을 높여야 한다고 으레 믿는 부분에서는 더욱 템포를 늦춘다. 이는 기존의 방식과 확연히 다르기에 ‘긴장’을 유발하고, 그러한 감정은 거대한 에너지가 된다. 어쩌면 <사랑과 교육>은 에너지에 관한 실험인지도 모른다.

 

 

*사진제공_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연극 <사랑과 교육>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Amoryypedagogia

 

작품소개
미겔 데 우나무노의 소설 <사랑과 교육>을 각색했다. 이 극의 주인공은 교육을 통해 후천적으로 천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 아버지이다. 그는 아들을 천재로 만들기 위해 인생 전반에 걸쳐 ‘공식’을 세우지만 사랑이라는 변수를 만나 그 공식은 이리저리 뒤틀린다. 결국 이 연극에서는 너무나 크고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한 변수, 그러면서도 너무도 매력적인 변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 것이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배우의 신체로 표현되는 소설 속의 아름다운 묘사들에도 주목해 보자.
줄거리
한 남자가 실험을 통해 천재를 만들어 보이려 한다. 적당한 아내를 선택하고, 만들어 놓은 교육과정에 따라 아이를 길러내면 천재가 된다는 명제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의 실험에 끝도 없이 새로운 변수들이 계속 끼어든다. 새로운 변수들이 끼어들 때 마다 아들은 사랑에 빠지고, 시를 쓰고, 노래를 한다. 이 남자는 과연 명제를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인가?
아티스트 소개
김란+박슬기+송성원은 상상한 것을 눈앞에서 펼쳐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연극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기술이나 엄청난 자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표현이 간결할수록 관객의 상상력은 더욱 자극을 받는다고 믿는다. 이들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연극을 한다.
출연진 & 제작진
출연진 : 김수아 이종민 박미르 류기산 장율
제작진 : 이회령 송성원 박슬기 강병성 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