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오늘의 연극> 극단 꼬리 달린 인간

2014. 9. 10. 21:36Review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이야기의 프랙탈

<오늘의 연극>, 극단 꼬리 달린 인간

 

 

글_K

 

어떤 사건에 대해 ‘연극적’이라는 수사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온갖 신묘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연극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정치적 음모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기극을 ‘연극적’이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이 단어는 공식적인 지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단어 ‘연극’의 소비는 광범위하다. 그러한 소비 경향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연극을 ‘눈 앞에서 벌어지는 거짓’이라고 규정하는 합의가 깔려 있다. 연극의 거짓은 눈앞에 현존하기 때문에, 인접 장르의 이름을 빌린 ‘영화적’이나 ‘문학적’이라는 표현에 비해, 훨씬 역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은 반드시 거짓말이기만 할까? 연극이 거짓말이라면, 연극을 만드는 과정은 거짓말에 대한 공정 과정일까? 201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오늘의 연극>(극단 꼬리 달린 인간)은 연극의 공정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극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체계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극단 "꼬리 달린 인간"은 연극에 관심이 많은 서울 지역의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이들은 제도권 내에서 연극을 배우는 전공자들이 아닌 비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구성은 <꼬리 달린 인간>의 작업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극단 단원들이 보편적인 연극인들에 비해 제도권의 형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은 <꼬리 달린 인간>의 약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꼬리 달린 인간>의 독보적인 장점이기도 하다. 포스트 드라마의 출현 이후 형식을 따르며 정해진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발화 방식을 고민하는 형태의 연극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연극>은 그러한 연극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섯 배우는 무대 위에서 정해진 이야기를 재현하기보다는 연극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맞게 어떤 대사를 하면 되는지, 극의 흐름은 어떻게 진행되는 게 좋을지 이야기한다. 물론 모든 토론의 과정이 완벽히 즉흥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얼핏 즉흥적으로 보이는 <오늘의 연극> 속 발화는 나름대로의 체계와 순서를 갖는다. 하지만 작업의 참신성이 반드시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본적인 형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을 때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적당한 제한과 형식은 배우들에게 특정 주제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다. 막이 오르면 배우들은 가면을 벗고 자기 소개를 한다. 재미있는 지점은 가면의 용도가 일반적인 쓰임과 정반대라는 것이다. 가면은 흔히 무용이나 연극에서 배우가 분장을 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런 경우 가면은 배우를 가상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오늘의 연극>에서 가면은 배우가 가상에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장치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는 맨 얼굴로 무대에 선다. 그들이 가면을 쓰는 건 연극이 시작되기 전과 후, 현실 세계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순간 뿐이다. 이러한 가면 오브제의 사용은 배우들의 연극에 대한 생각을 짐작 가능하게 한다. 연극이 진행되는 도중에 배우들은 종종 자신들이 연기하는 순간에 대한 의구심에 휩싸여 “어쩌면 현실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연극은 아닐까”와 같은 고백을 한다. 그런 점에서 가면 오브제는 배우들이 느낀 혼돈에 대한 물질적 알레고리가 될 수 있다. 무대 위만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은 가상이 아니라는 통념과는 다르게, 그들은 현실이든 무대든 비슷하게 가상을 공유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평범한 대화들이 날 것 그대로의 속마음을 표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처음 대사가 시작될 때 모든 배우는 “태강 역을 맡은 태강입니다.”라는 식으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소개를 진행한다. “태강 역을 맡은 태강”이라는 표현은 가상에서 현실의 역을 맡는다는 말 같지만, 현실에서 가상의 역을 맡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가상과 현실이 교차되고, 현실 역시 연극의 일환이라면, 연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현실에서도 연극을 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연극>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나름의 연구 과정을 제시한다. 앞서 말했듯 무대 위에는 가면을 쓰고 앉아 있는 다섯 배우가 있다. 소품은 매우 간단하다. 테이블과 빔 프로젝터, 약간의 화분과 전구, 그리고 천장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마리오네뜨 하나 뿐이다. 이렇게 소품이 최소화된 공간에서, 초반에는 단조로운 씬 하나가 전개된다. 빔 프로젝터는 어두운 밤의 골목길을 띄우고, 남자와 여자가 한명씩 나와 평범한 남-녀를 연기한다. 이야기는 로맨틱코메디에서 우리가 흔히 보았던 익숙하고 코믹한 패턴으로, 여자에게 집착하는 어느 남자에 대한 것이다. 이때 두 배우의 연기는 국어책을 읽듯 매우 어색하다. 마지막에 화를 내는 장면에서는 발성이 한층 자연스럽지만, 전문 배우의 매끄러운 연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어색한 연기’야말로 <오늘의 연극>이 지향하는 바와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연극과 연기와 배역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의 질문은 방법론적이기보다는 개념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기교있게 할 수 있을까?”보다는, “연기의 정의는 무엇인가?”가 이들의 고민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국어책을 읽듯 선보인 이들의 연기는 기교의 문제로 평가하기보다는 개념에 대한 고민으로 보는 게 적합하다.

 

초반의 씬 연기가 끝난 다음, 이들은 ‘토론’을 모방한 일종의 ‘연기’를 선보인다. 연출은 배우들에게 지속적으로 특정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명령한다. 이들은 그에 맞추어 자유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면 어느새 주제가 다른 것으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샐러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어느새 샐러드를 꺼내 먹기까지 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분산되는 패턴은 배우들의 가장 내밀한 욕망을 보여주는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누군가 외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하지만 여럿이 모여 하는 연극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배우에게는 언제나 흐름에 맞추어 규격화된 대사를 외치라는 숙명이 따라온다. 그렇게 해야만 ‘잘 다듬어진’ 가상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연극>은 그러한 숙명을 피해간다. 몇번이고 반복되는 연출의 명령으로 ‘커다란 가상’이 성립되려는 찰나, 누군가 다른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작은 마찰’을 일으킨다. 명령은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이야기는 마치 프랙탈(fractal)과 같은 미세한 구조로 확장된다. 프랙탈은 널리 알려진 과학 용어로 흔히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오늘의 연극>을 기하학적으로 도식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미지가 허용된다면, 프랙탈 그림을 차용해도 되지 않을까.

 

연출은 마치 함수에 명령어를 삽입하듯이 배우들에게 특정 단어를 지시한다. 그것은 <오늘의 연극>이 지향하는 큰 그림이 된다. 하지만 배우들은 여러 개의 작은 이야기로 갈라져나간다. 갈라져나간 작은 이야기들은 또 다른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거기서 다시 작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된다. 성희와 영빈이와 태강이와 유나와 진호의 이야기는 ‘사랑받고 싶거나’,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형태로 무수히 많은 문장과 함께 뻗어나간다. 확산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때 연출은 ‘그만!’을 외치며 배우들을 통제한다. 하지만 정적도 잠시, 다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정면에 설치된 빔 프로젝터는 <오늘의 연극>에 아주 적합한 무대미술이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공간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빔 프로젝터는 배우들의 발화에 맞추어 관련 이미지를 하나하나 띄운다. 유나가 달팽이 이야기를 할 때는 달팽이 사진이, 영빈이가 시를 낭송할 때는 시 텍스트가 화면에 나타난다. 이러한 이미지의 나열 속에서 조형적인 미를 찾기란 힘들다. 거칠고 보정되지 않은 질감의 사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연극>의 목적은 조형적 미가 아니다. <오늘의 연극>은 ‘연극’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배우들이 날 것의 자기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에 가깝다. 배우가 날 것의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준비된 조형적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따라서 빔 프로젝터에 뜨는 거칠고 촌스러운 사진은 오히려 <오늘의 연극>에 부합하는 즉흥적 미를 발생시킨다.

 

무대 천장에는 유나가 만든 작은 마리오네뜨가 있다. 이 마리오네뜨는 아주 위태롭고 엉성하게 달려있는데, 연극이 진행되는 대부분의 순간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연극 후반부에 화제는 유나가 만든 마리오네뜨에게로 향하고, 유나는 자신의 작품을 자랑한다. 하지만 마리오네뜨는 생각처럼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실은 엉키고 다리와 팔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유나는 연출의 명령을 따를 때는 배우의입장이지만, 마리오네뜨를 움직일 때는 다시 연출이 된다. 이 작은 갈등 속에서, 전체 구조와 작은 구조는 다시 한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수많은 의도된 거짓말은 제각기 다른 파열을 낳는다. 연극이 끝나고 이들은 다시 가면을 쓴다.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잘 짜여진’ 거짓말을 보려고 하지만, <오늘의 연극>은 그러한 거짓말의 공정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연극>은 그 어떤 연극보다 ‘연극적’이다. 짜여있는 틀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파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후반부에는 이러한 파열의 리듬이 길게 늘어져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70분의 러닝타임은 적당하다. 70분의 두배, 세배 러닝타임을 소모하고도 <오늘의 연극>처럼 신선한 파열음을 내지 못하는 ‘얌전한 연극’이 얼마나 많은가. 전문 기관에서 연극 교육을 받고도 <오늘의 연극>과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 배우나 연출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한 점에서 <오늘의 연극>은 연극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우리는 이들이 마지막에 다시 가면을 쓰던 순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언제든 이야기의 프랙탈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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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연극>
극단 꼬리 달린 인간






 작품소개

“이것은 실험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그러면서 무대 위에서의 연극 뿐 아니라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를 예술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모일 때마다 우리는 하나의 연극을 하는 셈이다. 우리의 대화는 기록되고 녹음되고 영상물로 남기도 한다. 아무개 씨가 배우를 한다면, 그는 아무개 씨를 연기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희곡이 될 것이며 연극이 될 것이다.”

 

 아티스트 소개

서울 지역의 대학생들이 모여 희곡을 공부하고, 직접 극을 쓰며 연극을 하는 연극 단체다. 공원이나 골목, 지하철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소규모로 연극을 해 왔다. 관객은 일상에서 연극을 관람한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관객이 되었다. 개성 있는 대학생들이 모여 연극을 통해 놀이를 하는 모임이다.

 

 출연진 & 제작진 소개

 출연진 : 김성희 임영빈 정태강 이유나 정진호

 제작진 : 서희윤 이주호 우규성 최준동 박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