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산과 들 바람의 노래 4.3 헌정 앨범 리뷰

2014. 9. 24. 16:42Review

 

끝나지 않은 핏빛 역사에서 위로를 노래하다

-산과 들 바람의 노래 4.3 헌정 앨범 리뷰

 

글_씨티약국

 

겪어보지 않고는 어떤 말도 쉽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도 쉽게 말할 수 없다. 어떤 이는 불행을 빗겨가고, 또 다른 사람은 불행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기대를 산산이 깨버리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눈앞에서 일어나면, 그때서야 우리는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때론 번민으로, 때론 힘을 가득 실은 위로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160여 일째, 어떤 사람들은 이제 세월호 이야기가 지겹지 않으냐고, ‘당신’ 에게 일어난 일도 아닌데 이제 그만 잊을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묻는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살아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우리를 빗겨간 수많은 사건들을 생각하면 안도의 한숨을 쉬이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월호를 비롯한 90년대 이후에 대형사고들에는 표면적으로는 안전 불감증이라는 문제가, 안을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자기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를 만들어진 불행 앞에서 우리는 아슬아슬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가깝게는 우리 부모님 세대 또한 아슬아슬한 숨을 쉬었었다. 언제 빨갱이로 낙인찍힐지 모르는 낮고 어두운 숨. 좌익과 우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가족 삼시세끼 먹이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빨갱이가 되어 몰살당했다. 이것이 1948년부터 54년까지 제주도민이 겪은 4.3 사건의 ‘진실’ 이다. 광복 후 민족이 분단되기까지 불어 온 피바람은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머물고 있다.

이 아물지 못한 상처를 기억한 앨범이 바로 <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앨범> 이다. 4.3 사건 당시의 역사적 흔적을 노래로 담아낸 제주문화방송의 다큐멘터리 <산 들 바다의 노래>에 수록된 곡들과 미처 수록되지 못한 곡들을 담아낸 앨범으로, 3호선 버터플라이 성기완 음악감독을 필두로 뜻있는 뮤지션들이 참여 했다.

앨범의 시작은 요조가 이기형 선생이 작곡한 ‘그리운 그 옛날’을 다시 불렀다. 원래 이 곡은 처참한 현실에 내몰린 아이들의 바람을 담아 만든 동요라고 한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절제된 기타 반주와 보컬의 목소리로만 구성된 이 곡은, 요조 특유의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곡의 슬픔을 더하고 있다.

한국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리온이 부른 ‘한숨’은 폭력에 고통 받는 자와 폭력을 휘두르는 자의 대립된 두 입장을 랩으로 표현한 곡이다. 메타와 나찰의 날카로운 노랫말은 4.3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 들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역사가 아닐 걸 역사라 부르지 마. 끝나지 않은 걸 끝이라 하지 마’ 4.3 사건을 겪은 많은 분들이 고령화되어가고 있고, 특별법 제정 시행과 피해보상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자장가 ‘웡이 자랑’ 과 안치환이 작사·작곡한 민중가요 ‘잠들지 않는 남도’를 다시 불렀다. 구덕이란 제주도에서 사용하는 요람을 말하는데, 대나무를 짜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짚을 깔고 담요를 덮어 아이를 재운다고 한다. 아이를 재울 때 부른 자장가가 바로 ‘웡이 자랑’ 이다. 남상아의 보컬로 듣는 자장가 ‘웡이 자랑’은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부르는 노래 같다. 그녀가 부르는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는 원곡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정서를 보다 짙게 느낄 수 있다.

 

<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앨범> 에는 그 외에도 흥겨운 스카밴드인 사우스 카니발이 해방의 기쁨과 새 세상에 대한 기대를 흥겹게 담아낸 ‘만세’와, 관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는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부른 ‘적기가’, 그리고 음악의 요소요소를 자신의 색채로 견고하게 탈바꿈하고 있는 밴드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가 재해석한 민요 ‘봉지가’가 포함되어 있다. 백현진·방준석이 함께한 ‘없는 노래’,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고사리 꼼짝’ 과 게이트 플라워즈의 ‘여야도흥’까지 빼놓을 것 없이 듣는 즐거움을 주는 앨범이다.

 

 

문득 ‘적기가’의 기원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시작은 독일민요였다는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독일민요가 영국의 노동가요로, 이것이 다시 일본의 민중 혁명가를 거쳐 북한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2004년 영화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은 ‘적기가’를 영화에 삽입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었다. 해묵은 ‘공산주의 섬멸, 빨갱이 타도’는 아직도 이 사회에 구천을 떠도는 영혼처럼 머물고 있다.

국가폭력의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된다. 무고한 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필요하면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 그리고 그 잘못을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회피했다는 것이다. 자기정당성을 위협받는 사건을 시인하기란 그들의 탐욕으로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정치에 ‘양심’을, ‘사랑’을 기대하는 일은 헛된 소리일까? 너무 많은 소문과 오해,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우리는 점점 ‘진실’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아무리 큰 슬픔이 있더라도 진정한 위로가 있다면, 사랑하는 죽은 사람의 손을 놓지 못하고 슬퍼하는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다. 4.3 사건의 상처를 이고 지금도 살아가고 계실 분들에게 <산 들 바다의 노래 제주 4.3 헌정앨범>은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아직 끝나지 않은 1948년의 제주도를, 1980년의 광주를, 그리고 2014년 4월의 진도 앞바다를 비롯해 기억하지 못하는 더 많은 그 때, 그 장소를 힘 있는 위로와 기억으로 만들기 위한 오늘이 계속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결코 쉽게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_시티약국

 소개_결혼과 함께 기획자생활을 접고 주재원 아내 생활을 미국에서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매일 게으름 속에서 깨닫고 있는 중. 미우나 고우나 한국이 그립다.

 

 

음반소개

(전략)....이 노래들은 제주문화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산, 들, 바다의 노래’에 수록되었던 음악들을 포함한다. 권혁태 감독의 다큐멘터리 ‘산, 들, 바다의 노래’는 제주 4.3 당시의 역사적 흔적을 노래를 통해 되짚는 뜻깊은 다큐였다. 이 다큐에 음악감독을 맡은 이는 성기완. 3호선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다. 성기완은 권혁태 감독의 제작의도를 듣고 인디씬의 대표뮤지션들에게 개별적으로 하나 하나 의뢰하기 시작한다. 이런 옛 노래들이 있는데 이 노래들을 다시 한 번 불러보지 않을래? 그렇게 한 팀씩, 한 팀씩, 합류하기 시작했다. 2014년 2월에 합정동 사우스폴 랩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 이 녹음실은 3호선버터플라이의 베이시스트 김남윤 씨가 운영하는 인디 스튜디오. 모두 10 트랙의 노래들이 나왔다. 모든 노래들이 다큐멘터리에 다 쓰이지는 않았다. 다큐멘터리는 이미 상영됐지만, 노래들을 그냥 세월 속으로 떠나 보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션마다 자신의 개성과 색깔을 살린 옛 노래의 재해석이 훌륭했고, 더구나 제주 4.3 의 역사적 자료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이 노래들은 음반으로 발매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여 어렵게 음반을 발매하게 되었다. 1000매라는 소량의 음반이 인쇄되지만, 적은 수량으로나마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 지나간 시대와 동시대의 소통을 기록한 이 음반을 하나의 기념물로 남겨놓고 싶었다. 또한 젊은 인디뮤지션들의 이 작은 시도가 제주 4.3 희생자 분들을 위한 작은 위로와 치유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뮤지션들이 공유했다. 용기를 내어 음반을 냈다.

앨범 첫 트랙은 요조가 장식한다. 차분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요조의 목소리는 이기형 선생의 ‘그리운 그 옛날’이라는 노래를 우리 바로 곁에 있는 이야기의 일부로 데려온다. 또한 그 시절의 아픔과 희망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는 시간여행의 문이다. 이 노래는 사실 귀순을 권유하는 노래로, 이른바 ‘산사람’들이 부르지는 않았던 노래지만, 이념적인 색깔은 바래고, 대신 그런 대립도 없던 더 옛날의 추억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두 번째 트랙은 한국의 대표적인 힙합듀오 ‘가리온’이 맡았다. 제주 4.3의 이야기를 거침없는 랩으로 재해석한다. 메타, 나찰이 각각 대립적인 시각의 인물들을 대변하는 것으로 설정된 내러티브는 그 시대의 역사적인 그림을 힙합의 붓으로 다시 그려낸다. 3호선버터플라이는 제주 자장가 ‘웡이 자랑’과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불렀다. 보컬리스트 남상아 특유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 색깔의 두 노래를 몽환적인 3호선버터플라이의 것으로 변화시킨다. 전자음악, 노이즈 등의 실험적 배치를 즐기는 팀 컬러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제주도 서귀포 출신의 스카 밴드인 사우스카니발은 만세(해방의 노래)를 불렀다. 해방의 기쁨과 희망을 담고 있는 이 옛날 노래는 트로피칼한 스카리듬과 놀랍게 잘 어울린다. 흥겨움과 열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트랙이다. 백현진 방준석이 함께 부른 ‘없는 노래’는 절실한 사연을 담고 있는 노래다. 이 노래는 지금은 지난 일들을 잘 기억 못하시는 김민주 할아버지(4.3 항쟁참여, 도쿄거주)가 부르신, 제목도 가사도 다 불확실한 노래였다. 김민주 할아버지가 부르신 노래를 귀로 잘 듣고 백현진이 새로 불렀고 방준석의 기타반주가 덧붙여졌다. 그렇게 새로 불렀으니 혹시 원곡과 다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래서 ‘없는 노래’다. 백현진의 의견에 따라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인디씬을 대표하는 파워 록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산사람들이 주로 불렀다는 ‘적기가’에 개러지 펑크적인 새로운 옷을 입혀 놓음으로써 노래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흡사 응원가도 같은 이 노래에는 억압의 사슬을 끊고 해방의 미래를 그리는 민중의 마음이 건강하게 잘 담겨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제주 민요 ‘봉지가’를 불렀다. ‘봉지’는 열매의 제주방언인데, ‘봉지가 진다’로 시작하는 이 흥겨운 민요를 우리식 그루브에 충만한 특유의 장단으로 전세계의 팬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구남식 신명으로 재해석한다. 이 흥겨움을 구남이 아니면 누가 전해줄 수 있을까!

젊은 세대의 얼터너티브 블루스 부흥을 이끌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싱어송라이터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고사리 꼼짝’이라는 제주 전래 동요에 구성지고 능청스러운 블루스적인 색채를 부여한다. 이 여유와 해학은 바로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그 분위기와 맥이 닿는 대목이리라. 게이트플라워즈는 제주 노동요를 택했다. 타작노래인 ‘어야도 홍’에 루츠 록 적인 스타일의 정통 록음악의 옷을 입혔다. 반복적인 ‘어야도 홍’가 주고 받는 기타의 멜로디가 노동의 괴로움을 잊는 노동요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다. 모이기 쉽지 않은 뮤지션들이 모였다. 좋은 취지와 테마를 가진 다큐멘터리 제작에 공감한 뮤지션들의 순수한 열정과 희망이 이 앨범에 담겨 있다. 제주 4.3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어제의 일이고, 그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이 만들어졌다. 젊은 세대의 인디 뮤지션들이 그 역사에 등을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대면하여 소통한 나름의 결과물이 이 앨범이다. 이 음반이 제주 4.3의 역사성을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하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주춧돌이 되기를 원한다....(음악감독 성기완)

‘산 들 바다의 노래’는 평화의 노래, 치유의 노래, 해방의 노래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통일 기원의 노래입니다. 하루빨리 남북한이 통일되어 함께 이 노래들을 부를 수 있게 되길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제주 4.3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 그리고 제주 4.3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께 이 앨범을 헌정합니다.’ - 참여 뮤지션 일동

 

 

제작정보

executive producer 제주문화방송 & 성기완 / producer 성기완 /

recorded, mixed and mastered by 김남윤 @south pole lab 20140205 - 20140331

album design 이수경 / management 윤솔지, 이혜린 / distributed by Chili Music Korea & Mirrorball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