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프린지, 상암에서의 순간들 - 2015 축제리뷰

2015. 8. 15. 13:52Review

 

프린지, 상암에서의 순간들

2015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리뷰

 

글_김송요

 

프린지가 홍대에서 열리던 시절 인디스트(축제 자원활동가)를 했다. 무대를 상암으로 완전히 옮긴다고 했을 때 아, 어, 그래? 했던 까닭은 홍대에서 겪은 프린지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에서 공연을 본 다음 연남동 쪽에서 동교동 쪽을 쳐다보면 내가 있는 곳과 저편의 번화가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이어진 세계임이 얼떨떨했다. 산울림 소극장은 단차가 낮지 않은 것 같은데 앉으면 앞사람의 뒤통수가 동글동글 보였고 개중엔 꼭 아는 사람이 두엇은 있어서 어색하고 수줍은 기분으로 인사를 나누곤 했다. 커피를 사서 윗잔다리 공원을 서성이다 보면 야외공연 팀을 볼 수 있었고, 페스티벌 카페에 누워서 으적으적 간식을 먹는 것도 서교예술실험센터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도, 지하에서 흰 벽에 촤르르철퍽 부딪히는 전자음악 연주를 듣는 것도 다 좋았다.

 

▲ 야외 계단에서 극을 관람하는 관객들, 홍대앞 극장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공간변화가 두드러졌다

 

상암도 상암의 매력이 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번 프린지에서 몇 개 찾았다.

하나는 <브라보, 청춘!>을 보면서 봤다. <브라보, 청춘!>은 경기장 내부가 아닌 바깥 통로에서 공연했다. 스카이박스를 찾다가 지나치기엔 요상하게 미련이 남아서 주르륵 뒷걸음질해 앉았다. 야외는 시끄러워서 백색소음이 아닌 적갈색 소음 정도를 만들고 있었고 날은 후덥지근해서 부채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난 집이 되어 그대로 연소될 것 같았다. 관객이 정해진 시간 안에 공간으로 입장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 말고도 지나가다 앉거나 앉았다가 나가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앉은 방석과 플라스틱 의자는 눈치껏 이리저리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도 이 공연이 좋았던 것은 동네 평상에 앉아 시내 어드메의 극장을 상상하는 것 같은, 오로지 전원이 합의하고 공모해야만 가능한 순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연은 주위로부터 차단되지 않은 장소의 번잡스러움과 협소함, 각종 설비의 부재를 설명하고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극장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약속을 하나 했는데, 배우이자 변사가 치켜든 손을 접으면 관객은 눈을 감고 / 눈을 감은 채로 열까지 센 뒤 알아서 눈을 떠야 하며 / 이것이 암전을 갈음한다'는 것이었다. 무대 위와 아래(애초에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 있지도 않았지만)가 신호를 공유하고 공연 틈틈이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었고, 눈을 꼭 감아 만든 어둠을 암전 삼는다는 것도 몹시 아름답게 느껴졌다.

 

▲ '셋' 의 <브라보 청춘> @3층 블루존

 

공연이 시작한 이후에도 무대 위..는 역시 아니니까, 차라리 무대 안과 무대 밖이라고 할까, 안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리 눈꺼풀 암전을 해도 여건상 무대 전환이 빨리 이뤄지지 않으니 뜨는 시간을 대화로 가라앉혔다. 그런데 이것도 좋았다. 무대 전환을 도와준 인디스트가 배우의 옷을 개며 “축축해요!”하며 지었던 ‘으’하는 표정, 암전을 실전으로 체험해 보고 “잘 하시네요!” 칭찬하던 배우의 뿌듯한 얼굴 같은 것이 생생하다. 배우가 관객에게 질문을 건넨다거나 말을 거는 건 극장에서도 흔히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쇼의 매너로 구사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대화로 쓰였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변사를 두고 마당극처럼 둘러앉아 보는 공연의 구조가 대화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매력은 <마이 리틀 라디오>(줄여서 마리오)에서 느꼈다. 마리오는 4층 스카이박스에서 공연했는데 일단 이 스카이박스라는 공간이 라디오 부스와 시각적으로 착 달라붙었다. ‘보이는 라디오’ 공개방송 스튜디오 같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공간을 연상되는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에 스카이박스는 PD가 있는 조정실로, 객석은 스카이박스 전면의 경기장 관람석으로, DJ부스는 객석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아래층으로 배치했다. 관객이 배우를 내려다보거나(DJ) 뒤돌아보아야(PD) 하는 것이었는데, 보고자 하는 것을 내려다보아야 하는 데다 그 보고자 하는 것을 볼 때 특정 위치가 ‘정면’으로 보장되지 않는, 경기장의 특징을 무대로 옮긴 셈이었다. 여기에 라디오 광고나 음악 송출 시간에는 객석에서 네 시 방향 게이트에서 퍼포머들이 뛰쳐나와 광고와 음악의 내용을 충실히 연기했다. PD가 미리 나누어 준 쌍안경으로 멀찌감치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오페라 같기도 하고, 만화경을 보는 기분이기도 하고, 라디오 속엔 작은 사람들이 들어 있어서 네모 상자 밖으로 목소리만 내는 것이라고 상상했던 어릴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랬다.

 

▲ 공연예술'부족' 의 <마이 리틀 라디오 : 마리오> @4층 스카이박스+경기장관람석

 

좋은 순간들에도 불구 ‘상암엔 상암의 매력이 있으니까 괜찮다’가 아니라 ‘상암도 상암의 매력이 있다. 끝’ 이라 쓴 건, 올해 상암에서의 축제를 ‘충분하다’ 고 평가하고 멈추고 싶진 않은 마음 탓이다. 공연 중간에 밖에서 예기치 않은 굉음이 들린다거나, 일부 구간 전체의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현장에서 리허설을 제대로 하지 못해 본 공연에서 애를 먹는다거나, 불가피하게 소극장형 공연의 외피를 장소 특정적 공연처럼 전환한다거나 하는, 그래서 생긴 문제들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난, 접근성이며 관람환경 같은 관객들을 향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인디스트들이 더워 보여서 아주 슬펐다. 마주치는 인디스트들에게는 모두 부채질을 해 드렸다. 내년에는 예외가 발생한다면 행복한 예외만 있기를, 그 예외 중 폭염이나 장마나 정전 같은 것은 없기를 바라면서, 일단은 올해 경기장 위 쿵 하고 떨어진 프린지 바위 위에 조약돌을 쌓아 올려야지. ■

 

 

  필자_김송요

  소개_제가 이것 저것 다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