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극 페스티벌] 첫 번째 이야기 "그들만의 매력적인 게임의 법칙, 2인극을 만나다"

2009. 11. 13. 03:24Review


[2인극 페스티벌 관람기] 첫 번째 이야기

 "그들만의 매력적인 게임의 법칙, 2인극을 만나다"

글 매버릭



너와 나, 소통하거나 또는 불통하거나

베란다 수리공과 주부, 만화가와 방문 판매 영업사원, 과학자와 조수, 오래된 연인인 그와 그녀,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약을 파는 남자와 자살을 하려는 칼국수 집 배달원, 지하철역에서 만난 이미 죽었거나 죽음을 앞둔 부부.
 

                                                                                                                           <사진 강 현>

2인극 페스티벌 여섯 작품에 등장하는 ‘관계’들이다. 너와 나, 또는 그와 그, 그와 그녀는 때로 서로를 오해하고, 위협하고, 갈등하고, 불신하고, 배신한다. 때로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때로 서로 헤어지거나 죽이고 죽거나 살리고 살거나 죽음을 위무(慰撫) 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소통하거나 불통하거나. 또는 이도 저도 아니거나.


의사소통의 최소단위로 끌어가는 2인극의 무대

2인극 작품들은 ‘관계’를 말 그대로 ‘이야기’로 풀어낸다. 나머지 있을 법한 연극적 요소들은 최소화 하거나 생략된다. 그래서 2인극 페스티벌 여섯 작품을 다 보고 나니 한 권의 단편 소설집을 읽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단편 소설집을 읽으면 개별 작품마다 몰입의 정도가 다르기 마련이긴 하다. 특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게 되는 작품도 있다. ‘페스티벌’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니겠는가. 어쨌든.

‘두 사람’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 소통의 기본단위다. 2인극 페스티벌은 소통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배우가 만드는 무대에 주목한다.

"2인극은 의사소통의 최소단위만으로 극을 끌어가면서 갈등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인물의 관계나 특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는 두려우면서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매력적인 형식의 연극이다." 축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은 일종의 ‘연극운동’이라고 말한다.


‘툭 하면 제(祭), 아무거나 페스티벌’ 시대, 9회를 맞은 <2인극 페스티벌>

사실 처음엔 “2인극 페스티벌이라고? 벌써 9회라고?”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백하자면, 왜 2인극의 모음이 축제가 될 수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툭 하면 제(祭), 아무거나 페스티벌’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각개격파로 살아남기 어려운 예술이 의미 있는 철학과 모토를 가지고 축제의 형태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대강 버무린 모자이크들도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니까.

처음엔 첫 두 작품만 보려고 했었다. 참고로 2인극 페스티벌은 두 작품씩 묶음 공연으로 세 번에 걸쳐 진행됐다. 호기심도 생겼고 분위기도 궁금해서 한 번만 가보자 싶었던 터였다. 가뜩이나 10월은 예매해 놓거나 보려고 계획한 공연들이 빼곡했기 때문에 2인극 페스티벌까지 전체를 다 챙겨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해>와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을 보고 나니 ‘내친 김에’라는 생각이 들어 다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2인극만이 갖는 게임의 법칙

작품 별로 다가오는 편차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웃기지도 않는데 웃기려고만 하는’ 연극들이 대학로를 가득 메우는 요즘, 2인극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진지한 도전을 한다. 2인극 페스티벌에는 일종의 ‘게임의 룰’ 같은 것이 있다. 2인극이니 당연하겠지만 배우가 단 두 명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반드시 모든 작품에 인물이 두 명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배우는 두 명이지만 다양한 변주가 펼쳐지기도 한다.

<오해>에는 보이지 않는 경비원의 목소리가 잠깐 등장하기도 하고(극단 신기루만화경의 대표인 배우 오달수의 목소리가 깜짝 등장해 아는 몇몇은 ‘쿡쿡’ 소리 죽여 웃기도..), <잊혀진 노래>에서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1인 2역을 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각자 상대방의 또 다른(또는 숨겨 둔) ‘여자’와 ‘남자’로 등장한다는 것. <지상 최고의 명약>에서는 한 배우가, 경찰의 역할과 그가 잡으려는 범인의 역할을 함께 한다. 극 중 극처럼 재현의 형식을 빌어서.

또 다른 룰은 두 작품이 연속으로 한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 무용도, 마임도, 움직임극도, 이미지극도 아닌 그냥 ‘연극’에게는 좀 버겁지 않았을까? 무대전환은 10분 정도다. 무대디자인, 조명 등에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두 작품이 거의 같은 무대 세팅이어야 한다. 10분 안에 전환할 수 있는 변주만이 가능하다는 규칙. 치열했을 보이지 않는 고민들을 상상해 보는 것도 2인극 페스티벌 ‘전체 관람’이 주는 재미였다.

배우뿐 아니라 작가나 연출가에게도 2인극은 만만한 미션은 아닐 듯싶다. 무대는 자연스럽게 미니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극 전개나 배우들의 연기가 늘어지거나 단조로워지게 되면 관객들은 금방 심심해져 딴 생각에 빠져버릴 테니까. 몰입이 덜 되거나 감흥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작품들은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희곡 자체가 가지는 힘과 극을 끌어가는 연출적인 측면에서의 ‘호흡’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담이긴 하지만, 올해 선정된 창작 희곡은 남-남이 세 작품, 여-남이 세 작품이다. 여-여가 없다는 게 좀 아쉬웠다. 단순히 성별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 배우 두 명이 서로의 관계를 끌어가는 2인극도 매력적일 것 같은데.


9년을 달려 10년을 바라본다


2인극 페스티벌은 매년 테마가 있다. 올해는 '창작 2인극 작품전'이다. 이번 여섯 작품은 3년 전부터 공모과정을 통해 선정한 것이라 한다. 작은신화, 신기루만화경, 혼, 뚱딴지, 앙상블, 오늘 등 6개 극단이 참여했다. 여기에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공이모)’의 평론가들이 드라마투르그로 함께 하고 있다.


참고로 지난 축제들의 주제를 살펴보면, 1회에서부터 3회까지는 번역극이든 창작극이든 2인극으로 쓰였거나 2인극으로 공연이 가능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4회, 5회에서는 각각 프랑스와 러시아의 문학작품 및 연극을 다루었다. 6회는 <육담(肉談)과 골계(滑稽)>라는 제목으로 “고금소총”이란 고전설화집의 내용을 소재로 전 작품을 새롭게 창작해 공연했다. 7회는 세계 각국 2인극 작품들을 동시대 시각에 기초한 해석을 통해 재 탄생시켰다. 8회는 <특별한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젊음과 함께 노는 2인극’, ‘야외로 뛰쳐나온 2인극’, ‘뒤돌아보며 미래를 꿈꾸는 2인극'으로 나누기도 했다.

내년이면 10년이다. 또 어떤 작품들이 무대에 오를지 궁금하다. 규모가 크던 작던 하나의 예술축제를 쉬지 않고 10년을 끌어간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요즘처럼 ‘예술하기’가 ‘버티기’가 되는 시절에는 특히나.


[2인극 페스티벌 관람기] 두 번째 이야기 "여섯 작품에 대한 단상"

 
제9회 2인극 페스티벌 <창작 2인극 작품전>

■ 공연기간 : 2009년 10월7일~11월1일
■ 공연장소 : 연우무대 소극장

○ 극단 신기루만화경 <오해>(최명희 작ㆍ동이향 연출)
○ 극단 작은신화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김숙종 작ㆍ최용훈 연출)
○ 극단 혼 <잊혀진 노래>(조병여 작ㆍ김태훈 연출)
○ 극단 뚱딴지의 <칼슘의 맛>(김원 작ㆍ문삼화 연출)
○ 극단 앙상블 <지상 최고의 명약>(이강국 작ㆍ반무섭 연출)
○ 극단 오늘 <내영역에서>(강경은 작ㆍ위성신 연출)


 

필자: 매버릭 http://blog.naver.com/indiepr
maverick;〔송아지에게 낙인을 찍지 않았던 Texas의 목장주 이름에서〕 n. 《미》
1 낙인 찍히지 않은 송아지;어미에게서 떨어진 송아지
2 《구어》[종종 형용사적으로] 독립 독행하는 사람;무소속 정치가[예술가 등], 이단자, 반체제파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