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노뜰/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극단 노뜰/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 엄현희
  • 조회수 615 / 2007.07.25

에너지의 흥미로운 밀고 당김

- 극단 노뜰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2007. 7. 12~14)


아주 단순하게 공연예술 관람 행위를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교류 과정이라 볼 때, 극단 노뜰의 공연은 공간의 특성을 빼놓은 채 말하기 힘들다. 강원도 원주시의 문막읍에 자리한 한 폐교(구 후용초등학교)를 찾아갈 때까지의 각자의 수고는 논외로 치더라도, 푸릇한 잔디가 깔린 아담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모서리가 닳고 있는 돌계단을 밟고 올라 사람 키 높이 나무들 사이로 극단의 작업실로 쓰이고 있는 교실들을 훔쳐볼 때의 ‘순간들’은 여느 극장 밖에서의 관람대기 중과는 다른 상태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창조자로서의 예술가의 직업윤리를 순간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이것은 무대에서 제공되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완벽한 흡입을 위한 ‘비움’을 가능케 하기에 매력적이다. 


            공연<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무대 전경   극단노뜰

 

공간에 대한 보다 섬세한 인지는 ‘후용공연예술센터’를 이끄는 원영오 연출가와 극단 노뜰의 작업을 관람할 때의 하나의 지도가 되기도 한다. 야외무대를 사용해 관객과 주변의 생환경과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작품 안에서 숨겨진 공간의 폭로를 통해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동시에 장면의 상징적 의미를 키우는 방식 등은 극단 노뜰의 ‘스타일’을 지탱하는 중요한 뼈대다. 스페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노뜰 식으로 소화한 이번 공연역시 공간이 주는 재미는 크다.


객석을 ‘후용공연예술센터’ 내의 자체 극장 안에 쌓아 올리고, 무대를 극장 앞마당 야외에 마련한 이번의 시도는 공연의 경험을 결정짓는데 중대하게 기여한다. 머리 위의 지붕으로 집중력의 분산은 자제되며, 밤하늘의 별, 조명 속에서 갖가지 색깔로 선명히 돋아 오르는 풀, 학교의 조형물인 책 읽는 소녀 동상에 비스듬히 코믹하게 걸쳐진 흰 천 등은 어디를 바라봐도 지치지 않는다.  


야외무대의 장/단점에 대한 계산된 처신은 말로써 정교히 구축된 서양 고전 희곡의 효과적 무대화를 위한 노뜰식 해법이기도 하다. 지켜보는 이를 다양하게 자극시키는 연극적 에너지의 충만한 교류의 장이 만들어져, 제한적으로 수용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경험’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무대 위 에너지의 증폭은 이번 <베르나르나 알바의 집>(원영오 각색/연출) 이전의 <동방의 햄릿>, <귀환>, <보이체크>까지 서양 고전을 재료로 삼은 노뜰의 레퍼토리들에서 진작부터 발견되던 구성의 원리다. 설명적인 자잘한 묘사들을 들어내고 강한 극성을 제공하는 힘들의 충돌의 원리가 이어붙인 노뜰 공연의 장면들은 단순한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다양한 극 언어들의 병합으로써 일종의 ‘압축미’를 전달한다.  


            공연<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공연 장면  극단노뜰

 

한 시간으로 만들어진 공연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알바네 집의 딸 넷이 극 전체를 끌고 간다(원래 남자배우 한 명이 딸들 중 하나로 출현할 예정이었으나, 바로 전날 최종 리허설 때 다리 부상을 입어 당일 공연에서는 빠졌다. 여배우들만의 앙상블과는 완전히 다른 질감이 가능했을 텐데, 매우 아쉽다). “아버지가 죽었으니 그 집은 끝났어”, “미친 집구석”, “어디에도 시집 못갈 못생긴 년들”, “체면만 차리는 곳” 등의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두런두런 들리는 가운데, 네 명의 여배우들이 상복을 입은 채 무대에 다양하게 생긴 의자들을 놓는 것이 극의 시작이다. 빈 의자를 채울 누군가에 대한 여자들의 갈망이 극 전체를 관통한다. 열 오르는 몸을 식히려는 듯 신경질적으로 부채질 해 보지만, 군복처럼 투박하게 생긴 모직의 검은 자켓 아래로 쉴 새 없이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알바네 집 딸들에게는 ‘구원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돈과 아름다움 혹은 순종이란 밖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가치를 지녀야만, 그녀들이 바라는 것(결혼, 사랑 혹은 지금 상황에서의 탈출)을 성취할 수 있기에 공연에서 ‘해방’으로의 길은 원천적으로 봉쇄된 듯 보인다. 조명이 바닥을 느리게 뒷구르기 하는 배우들 뒤의 시커먼 어둠을 비출 때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들이 지금 이 곳은 출구 없는 사막이라 말하는 듯하다.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집에서 조신하게 지내야 한다는 독재자 어머니나, 결혼을 한다며 정신착란 발작을 일으키는 할머니가 알바네 집 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미래다. 그녀들이 차려 놓은 의자들이 다름 아닌 그녀들 차지가 되는 귀결이 이 극의 구조다.  


재밌는 것은 노뜰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집에 붙박이로 앉혀 지는 여자들의 이야기되, 그것이 동시 그녀들의 자유 의지가 점점 깨어나는 과정이란 지점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손님들에게 “어서오세요.”, 누군가를 껴안으며 우는 포즈, 손님에 대한 속내일 법한 침을 뱉는 동작을 반복하는 양식적인 움직임에서 출발한 극은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부과한 의무로 인한 갈등의 폭발로 상복 위에 드레스를 걸친 채 춤추는 그녀들을 보여준 후, 배우들의 몸을 온통 적시는 세찬 빗줄기를 통해 ‘더 이상 구원자는 없다’는 여자들의 차가운 인식으로 끝을 맺는다.


           공연<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공연 장면   극단노뜰 


장면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연결의 역할을 하는 장치들은 극 관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극은 난교, 아이를 낳은 처녀 등등 마을 사람들의 ‘추잡한’ 소문들을 삽입해 때론 그녀들을 부추기다 때론 그녀들을 조롱하며 알바네 집 딸들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조종한다. 소녀 동상에 걸린 흰 천 뒤에서 어린애 장난처럼 처리된 그림자극은 마을 청년들과의 집단 성교를 즐긴 유부녀 로제타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실어 나르며 딸들의 발랄한 춤을 끌어내지만, 아이를 낳은 처녀를 마을에서 집단 응징한 이야기는 알바네 집 딸들을 의자에 채 편히 않지도 못하게 한다. 위자 위에 선 채로, 혹은 잔뜩 웅크린 채 맞이하는 물은 밖을 향한 에너지를 제 자리에 응고시키며 주저앉히는데, 그것은 세상에 대한 증오를 포함한 자기 운명에 대한 바라봄이기 때문에 극이 끝나고 난 뒤의 일종의 ‘카니발’을 기대케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수철의 위태로운 장전처럼 말이다.  


각 단체가(혹은 개인이) 자기가 바라보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욕망을 포기치 않을 때, 그것을 보는 자와의 무정형의 가치를 생산해내는 ‘진정한 공유’가 가능하리라 믿는 나로선, 노뜰의 움직임이 중요한 관심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는 이를 감정적 고양에 이르게 하는 농도 짙은 에너지로써 극을 운용할 줄 아는, 이 단체의 어법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주목

 필자 엄현희가 소속해 있던 <공연과 리뷰>가 가을호 부터 휴간을 가장한 폐간을 앞두고 있는 터라 졸지에 그녀는 화려한 프리랜서의 길에 들어섰다. 그녀가 활발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여러분

들이 많은 지면을 전도해 주시길 바래                                           

그리고 사진을 제공해준 극단 노뜰이여 영원하라!

 

-편집위원 박혜강-

보충설명

참고 싸이트

후용공연예술센터 : http://www.nottle.co.kr/

필자소개

필자 엄현희는
연극에 대한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 중인 서른 한 살의 여성. 작품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가장 주관적이자 가장 객관적인 글을 낳는다는 믿음으로, 현재 <공연과 리뷰>, <컬처뉴스> , <경기일보>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E.mail: saerapi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