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2월 레터] 첫 인사


인사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헤어짐 말고 만남의 인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인디언밥에 종종 리뷰를 기고했던 필자 채 민 입니다. 저의 때늦은 리뷰가 인디언밥의 1111번째의 게시물이 되었다는 소식에(이유는 알 수 없으나) 소박한 기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인디언밥의 새 해 첫 레터를 쓰는 행운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새해에 대한 저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있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2018’이라는 숫자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2019’년이 되었고, 지나간 해와 무관하게 정리되지 않은 일들ㅃ이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여전하기 때문일까요. 순환되지 않는, 익숙하고 답답한 대기 속에서 전광판의 낯선 숫자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러던 차에 연극비평집단 시선 평론집 제2<이미 선택된 좌석입니까?>가 도착했습니다. 책에는 다섯 명의 젊은 평론가들의 시선을 통해 갈무리 된 2018년의 연극계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2018 대환장 타임라인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연표가 인상 깊었는데요. 시간 순으로 나열된 사건들은 실로 대환장입니다만, 환장을 딛고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했던 기록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평론집은 미투 호외로 시작합니다. 평론가이자 연극인로서 써내려간 통렬한 자기반성을 읽으며, 어렴풋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건에 무뎌진 제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어쩌면 순환되지 않는, 익숙하고 답답한 대기기억이 아니라 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각의 뒤에는 항상 반복이 따르지 않던가요. 하여, 해를 구분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면, 그 목적은 마땅히 기억의 단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밖에도 평론집에는 한 해 동안 있었던 공연 및 페스티벌 그리고 연극인에 대한 소중한 기록과 비평 및 제안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사실 새 해보다는 혼자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혹은 소규모로 꾸려가는 작업 혹은 공간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나의 속도로 진행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는 일.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극장보다 독립서점, 독립상점에 더 드나들었습니다. 독립서점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점마다 다른 큐레이션이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연희동 어느 골목,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는 밤의 서점은 밤의 점장, 폭풍의 점장 두 명이 돌아가며 책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미로 같이 구획된 책방의 구조도, 그 의도도 마음에 들지만, 저는 책날개에 쓰여 있는 깊이 있는 책 소개가 가장 좋았습니다.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책들이 많았지만 제목을 적어오지는 않았습니다. 큐레이션을 도둑질 하는 기분이었거든요. 다 읽고 돈 모아서 다시 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밤의 서점도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디너리 아카이브는 연희동에 위치한 작은 음식점 입니다. (. 이곳도 연희동에 있네요.) 이곳에 가면 일행이 아닌 사람들과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합니다. 제철 재료로 준비된 요리를 먹으면서 요리사와 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게 맛을 표현하는 다양한 어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정도의 대답밖에 하지 못했거든요. 기실 인상 깊었던 점은(저의 일천한 경험 안에서) 코스 요리임에도 권위적이지 않고, 이탈리안 이지만 사대주의가 느껴지지 않고, 오가닉이지만 교조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갈치 시장에서 아나고 껍질 벗기는 것을 퍼포먼스처럼 보고 자란 그녀이기에 가능한 정체성 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녀는 2~30대의 무력한 경제력이 입맛을 초토화 시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과는 한 달에 한 번 기분 낼 수 있는 정도로 책정된 밥 값 이었습니다. 한 달 중 10일 동안 문 닫고 속이 쓰리도록 고민하는 요리사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 물론 무척 맛있었습니다.

자꾸 연희동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연희동에 있는 플랫폼 팜파도 떠오릅니다. 작년 팜파의 기획 프로그램이었던 <연극릴레이: 살아보고 결정해>를 보기위해 찾아간 곳이 가정집이라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이 커서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연극릴레이라는 제목을 달고, 연극과 전시 혹은 또 다른 무언가의 경계를 밟아가는 작업들이었습니다. 올해 플랫폼 팜파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작업 할 팀을 찾는 공고문을 보았습니다. 플랫폼 팜파의 운영방식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팜파지기 또한 활발하게 작업 중인 젊은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창작자로서 아쉬웠던 점, 혹은 바라는 점이 공간 운영에 어떠한 방식으로 녹아들게 될 지 궁금합니다.

제가 기웃거렸던 곳들에서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지혜롭고 다정한 친구가 곁에 있고, 그 혹은 그 공간을 사랑하며 그의 롱런을 기원하는 단골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인디언밥을 홀로 꾸려가게 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립예술을 다루는 매체로써 어떠한 지형을 그리지 못한 채 혼자서 길을 잃을까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인디언밥을 감히 중단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지요.(저에게는 그런 배포가 없습니다.) 그저 인디언밥의 훌륭한 필자들을 떠올리며 초조한 마음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저보다 대범하고, 위트 있는 동료들과 인디언밥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2월에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곳에서 동료와 필자와 독자들을 모두 만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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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필자 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