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쏘아 올린 시간을 밟다 <올모스트 창천>

 

 

쏘아 올린 시간을 밟다

 

올모스트 창천 @신촌문화발전소

 

글_권혜린

 

  올모스트, ‘거의라는 말에 담긴 함의를 생각해 본다. 대부분에 해당하지만 모든 것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 그것은 달리 말하면 언제나 나머지와 여지를 잠재적으로 남겨 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모스트, 창천>에서 올모스트 옆에 붙은 쉼표조차도 섣불리 마침표를 찍지 않는,  섣불리 ‘모든  말하지 않는 여백처럼 보였다.   곳에 연극에서 다루지 않은 현재와 미래까지 자유롭게 틈입할  있었다. 덧붙여 지극히 사적인 기억들까지도. 

  공동체 연극 프로젝트로서 ‘올모스트 시리즈는 석관, 상수, 문원(과천), 단원(안산) 거쳐 3 만에 <올모스트, 창천>으로 돌아왔다. 신촌을 배경으로 하여 프롤로그, 8개의 에피소드, 미들로그, 인터로그, 에필로그로 다채롭게 구성된 공연은 세상을 변화시킬  있는 혁명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혁명 안에는 정치적인 것도, 문화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장소와 얽힌 시간성을 통해  작품은 1996년의 ‘한총련 사태 진보를 이루어 냈는지, 문학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는지, 대학생들에게 축제는 무엇인지,  안에서 여성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지 보여 준다. 여러 사건과 존재와 힘들이 부딪치면서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함께 경험할  있었다. 상황은 일견 비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유쾌하게 풀어내어 즐겁게 관람하였고, 이동형 연극이라 중간에 이동하는 부분에서도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을 밟은 느낌을 주었다.

 

그때의 존재들

 

  <올모스트, 창천> 소리로 먼저 시작한다. 한총련 사태를 진압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뉴스 소리는 조명을 받은  외롭게 놓여 있는  벤치와 어우러진다. 정작 주인공이 빠져 있는, 알맹이 없는 뉴스 보도처럼 놓인  벤치는 ‘사회적 손실’, ‘교훈’, ‘불상사 등의 단어로 지칭되는 대학생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헬리콥터까지 동원되는 상황에서 이에 저항한 대학생들의 상황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다. 운동권 선배를 중심으로  명의 배우들은 비장하게 조국의 평화와 통일, 살인 정권 타도를 부르짖고 80년대의 광주를 호명하며 <바위처럼> 부른다. 대의를 위한 참여적인 행동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생생함은 시간의 간극을 순식간에 뛰어넘는다. 역시나 운동권 선배의 주도하에 공동체적인 식사로서 작디작은 과자를  알씩 공평하게 배식하기도 한다. 관객들도 이과대 건물에 함께 갇힌 대학생들이 되어 과자를 배식받는다. 

  장면이 바뀌면 그때의  다른 존재들이 등장한다. 3 , 학기가 시작한    뒤에 뒤늦게 연극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학생회관 무악극장에  신입생  명의 대화가 이어진다. 정외과에 다니고 있으며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새미와, 건축과에 다니고 있으며 물질적인 여유가 있는 연희는 친구가 된다. 각자 빌려온 책이   2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고 ‘인천/강남’, ‘책방/다방’, ‘삐삐/휴대폰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며 데모에 관한 가치관도 달랐던  친구는 그래도 친구가 된다.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던 연희와 새미가 ‘ 친구   있었던 이유는 우연히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순간의 공유뿐이지만, 점차 가치관도 공유되면서 마음의 거리도 가까워지게 된다. 

  그다음에 나타나는 새로운 에피소드는 문학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윤동주의 「서시 비장하게 읊는 장면이 나온 뒤에 문학을 고민했던 그때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실연당한 상황에서 문학의 힘을 믿고 싶은 남자와, 문학은 힘이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문학 전공자는 대척점에  있다. 이별한 상대에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돌리고자 문학의 힘을 처절하게 믿는 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글은 아무도 바꿀  없다 말뿐이다. 문학 전공자는 영상의 시대가 온다고 하면서 문학의 종언을 자조적으로 말한다.

   말을 들은 이는 (문학의 끝에 관한 것인지, 사랑에 관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중첩적인 의미를 지닌) 절규를 하지만, 실상 문학 전공자의 말대로 문학은  사람의 마음도 바꾸기 어려우니 미시적인 혁명을 넘어선 거시적인 혁명을 이루어 내기란 요원하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예술에 관해서는  에피소드에서 바로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다. 확신보다는 고민으로 밀고 나가는 ‘움직임 여백에서 읽고 싶은 생각이  것이다. 다소 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꿈의 실현이 유예된다면, 꿈꾸는  역시 끝날 일이 없으므로  자리에서 종언을 고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랄까.

 

위로의 위로 : 수직적 감각의 

 

  다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힘들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뒤늦었지만 <올모스트, 창천> 신촌문화발전소에서 공연되었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사실 신촌을 여러   보았지만 신촌에 대한 수평적인 경험과 감각만을 지니고 있었다.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거리 곳곳을 누비며 다녔던 기억이 강렬했으므로 신촌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느낌은 신선했다. <올모스트, 창천> 통해 꼭대기에 우뚝 솟아 있는 신촌문화발전소에 가면서 지상에 있는 굴다리, 연세로, 신촌놀이터 등에서의 감각들을 넘어 수직적인 감각을 색다르게 경험할  있었다.

  <올모스트, 창천> 신촌문화발전소라는 공간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번째 에피소드 이후에 이어진 ‘미들로그에서 1996 8월에 연세대 과학관에 갇힌 이들이 대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 역시 공동체의 일원이므로  함께 지하 2층에 있는 소극장을 빠져나와 3층에 있는 ‘카페바람으로 이동하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 카페 안에 있는 새로운 무대로 입장한  디귿  모양으로 앉았다. 잠깐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극장 안에서는 있을  없을 현상으로서 사담이 이어지기도 하고 허용된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카페에서는 새로운 장소와 좌석의 배치를 통해 이전의 공간과 단절되면서   밝은 느낌이 되었다. 배우들 역시 가운데에 있는 무대뿐만 아니라 카페로 오는  통로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다채로운 공간 활용을 보여 주었다.

  후반부에서는 연희와 새미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나온다. 연고전의 농구 시합을 즐기는 연희와 달리 연고전의 역사를 읊으면서 비판하는 새미는 ‘마초맨으로 대변되는 것으로서 남자들만 대표성을 띠는 연고전을 보이콧하고자 한다. 축제에서도 ‘새로운 상상력 필요하다는 것이다. 곧이어 무대의 대각선 방향(통로)에서 한총련 사태로 구속된 운동권 선배의 변론이 이어진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조차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대에서 잘못된 시대를 향한 운동권 선배의 비장한 발언은 굴절되고 흩어지는 듯하다. 농도의 차이는 있을  있으나 그때만의 이야기는 아니어서 낯설지 않았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처방 역시 지금도 유효하다.

  이의 연장선에서 새미 역시 성정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연대 총학 선거에도 나갔으나 패한다. 실의에 빠져 있는 새미의 앞에 매일노동뉴스 기자인 79학번 고대생 선배가 인터뷰를 요청한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것으로서 젊은 노회찬인  기자와 새미는 공통적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고 ‘IF(Infinity Feminism)/YF(Young Feminism)’, ‘민주노동/국민승리 사이에서 서로에게 선택지를 질문하고 의견을 묻기도 한다. 용어의 선택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판을 가는   노동자와 여성에 관해 생각하는 , 그리고  연대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것도 과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다시 한총련 사태 때로 돌아가,  친구였던 ‘연희-새미 동질성과 달리 연희가 오랜 친구와 이질성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새미가 학교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새미를 걱정하는 연희는 신촌 노래방에서 힙합을 하는 중학교 동창과 만난다. 그리고 중학교 동창과 대화할수록 벌어지는 틈은 오히려 새미와의 거리를 인식하게 한다. 연희가 새미에게 함께하기를 요청하는 장면에서 연희에게는 이미 개인적으로 혁명이 일어났음을, 변화가 일어났음을 전달받을  있었다. 

  그다음에 나오는 ‘인터로그에서는 토익 스터디 모집 글과 새미의 낙선 인사가 공존하는 상황을 보여 준다. 토익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인적인 진보와 발전을 위한 수단이고, 낙선은 실패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낙선 인사를 담은 대자보가 훨씬  크고 당당해 보인다.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바꾸고자 하는 생각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이유가 조금은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위로 올라왔을  뜻밖의 위로를 받은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안에 있었다. 

 

덧붙임 : 그리고,

 

  여기에서 <올모스트, 창천> 마무리되는  알았으나 인터로그로 끝나지는 않으므로, 다시 한번 전환하여 마지막 에피소드와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인터-스텔라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고전과 최첨단의 만남으로서 고전음악감상실 ‘스텔라 지키고 있는 천문학과 졸업반 학생과 음악감상실에서 졸업전시회를 했던 의류학과 졸업반 학생이 대화한다.  역시 최첨단의 패션과 고전적인 클래식 음악을 대립시켜 얼핏 이분법적으로 보이지만, 베토벤의 음악이 우주로 갔다는 이야기를 통해 일정한 시대와 장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관통하는 힘을 이야기한다.

    졸업생이라 IMF 때문에 취업을 걱정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보여 주지만, 패션과 고전음악이 공존하는 ‘스텔라에서는 잠깐이나마 별과  ‘사이 공간에서 접촉이 이루어진다. 사실상 만남이라는 것은 만나는 서로에게 ‘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므로,  서로  하나 없이 맞물려 있다면 만남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이들의 만남 역시  사람의 인생에서는 약간의 변화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변화를 읽어 내는  역시 여백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미래는 다시 지속된다 목소리에서는 ‘다시라는 말이 돋을새김된다. 단선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반복되는 미래는 끝나지 않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증거가 바로 <올모스트, 창천>일지 모른다. 우주로 갔던 베토벤의 음악처럼 2019년의 신촌이 쏘아 올린 그때의 존재와 사건들은 ‘그때만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2019년이라는 미래에 다시 지속된다. 편지라면 일종의 추신처럼 보이는 마지막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는 이렇게 가능성을 덧붙이며 신입생부터 졸업생까지 이어지는 창천의 존재들을 섣불리 끝내지 않는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지속될  다른 덧붙임들은  시대를 겪거나 겪지 않았던, 신촌이라는 장소를 겪거나 겪지 않았던 관객들에게서 나올  있을 것이다. 

필자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극단 문' 소개

미술작가 임은주와 드라마작가 정진새를 축으로 배우와 연출, 디자이너를 초청하여 프로덕션을 꾸리는 컬렉티브형 연극-창작팀이다. 탈/현실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언어들을 조합하여 이야기 형식의 연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2018-2019 극단문의 표어는 “냉정과 애정사이 이다.

<올모스트, 창천>

프롤로그_1996 8

ep.1_한총련 사태 @연세대과학관 (1996)
ep.2_ 친구 @무악극장(1994)
ep.3_문학의 @동주시비앞(1994)

미들로그_대탈출

ep.4_안티 연고전 @강의실(1995) 

ep.5_법정에서(1996)

ep.6_세상을 바꾸자 @백양로 벤치(1996) 

ep.7_왕재수 동창생 @노래방 (1996)

미들로그_IMF

ep.8_인터-스텔라 @교내 음악감상실(1998)

[일시]

2019.06.14() - 06.16()

평일 19:30 / 주말 15:00, 18:00.

[장소]

신촌문화발전소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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